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조약을 비준한 건 1992년이다. 이 조약이 발효된 때가 1975년이니 꽤 늦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앞서 각각 1988년과 1985년에 비준했다. 일본은 분담금을 얼마나 낼지를 놓고 유네스코와 씨름하다 늦었다는 얘기가 있다. 지각생으로 들어갔지만 여하튼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기금(基金)을 내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두겠다는 심산일까. 그 후 일본의 욕심은 남달랐다.

▶비준 이듬해 한꺼번에 세계유산 네 개를 등록하더니 지금까지 열아홉 개를 목록에 올렸다. 아시아에선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국·인도에 이어 셋째로 많다. 일본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홍보용으로 우려먹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썰렁한 폐(廢)광산 이와미긴잔(石見銀山)을 세계유산에 등록해 굴지의 관광지로 만든 게 8년 전이다. 그때 자신이 붙었는지 우리에겐 강제 노동의 한(恨)이 서린 폐탄광까지 올해 목록에 추가했다. 덕분에 관광객이 몇 배 늘었다고 한다.

[만물상] 일본의 유네스코 협박
▶정치적 활용도로 따지면 1996년 등록된 세계유산 '원폭(原爆) 돔'을 능가할 유산이 없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뼈대만 남은 히로시마 중심지의 상징적 건물이다. 등록 당시 미국은 "피해만 강조하고 가해는 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평화의 상징'이라며 밀어붙였고 미국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는 유엔 정신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을 통한 일본의 '피해국 분칠'은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8일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마이즈루(舞鶴) 생환' 기록은 2차대전 때 시베리아에 끌려간 일본인의 억류 수기 570점을 가리킨다. 이 중엔 민간인도 있었지만 주로 중국을 침략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끌려간 일본군들이다. 등재에 성공한 일본은 만세를 불렀고 러시아는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도 러시아는 내색하지 않았다. 유엔 정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같은 날 중국 '난징(南京) 학살' 자료도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중·일 전쟁 때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지른 만행과 그 참상을 담은 중국 측 사료(史料)들이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낯빛을 바꿨다. 자료에 담긴 피해자 숫자를 문제 삼아 "극히 유감"이라는 날 선 반응을 내놓았다. 스가 관방장관은 한술 더 떠 "유네스코와의 협력 방식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큰소리쳤다. 자민당에선 "유네스코 예산을 백지화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한다. 돈깨나 낸다고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아베 정권이 막가는 듯싶더니 이렇게까지 격(格)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선우정 논설위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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