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구하느라 세상 떠난 딸에게 "잘했어, 괜찮아" 위로한 어머니
"나라 예산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아들에게 값싼 壽衣 입힌 아버지
자식에게 사람 됨됨이 가르쳐야 진정한 국가 改造의 길 열린다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로 확인된 사망자는 단원고 2학년 4반 정차웅군이었다. 자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한 후 또 다른 친구를 구하겠다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고대 안산병원에 안치된 정군은 41만6000원짜리 최하 등급 수의(壽衣)를 입었다. 400만원을 웃도는 최고 등급의 10분의 1 가격이었다. 정군 아버지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례비를 허투루 쓸 수 없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승객들을 팽개치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승무원 박지영씨였다. 박씨는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 다 구하고 나갈게"라며 단원고 학생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의로운 죽음은 해외에서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됐다. 유튜브 조회 수가 42만건이다. 박씨의 어머니는 대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왔을 때 "형편이 더 어려운 실종자 가족들을 도와달라"며 사양했다. 그 돈은 박지영씨 이름으로 다른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게 전달됐다.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딸이 인솔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책감에 3반 학생들 빈소를 돌며 머리를 조아렸다. 학부모들은 "선생님 숙소가 5층이었는데 아이들을 구하러 4층에 내려왔다가 변을 당하셨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아직 3반 학생 한 명이 실종 상태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도 진도를 오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구명복을 입혀야 한다" "학부모들과 통화해야 한다"며 어머니와 한 마지막 통화를 매정하게 끊었던 2학년 2반 담임 전수영 선생님은 사고 한 달여가 지난 5월 19일에야 시신이 발견됐다. 전 선생님의 아버지는 그 오랜 기간을 기다리며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자기 책임을 다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다"고 했다. 자신도 3년 전까지 교사였던 어머니 최숙란씨는 조선일보에 '세월호 침몰로 숨져간 딸의 메시지를 전하며'라는 글을 썼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혼자 말한다. '수영아 잘했어, 괜찮아'라고. '잘했어'는 의무와 직업윤리를 끝까지 다한 전수영 선생님을 선배 교사였던 엄마가 칭찬하는 말이고, '괜찮아'는 엄마가 딸을 잃은 슬픔을 누르며, 엄마를 걱정하고 있는 착한 딸의 영혼을 위로하는 말이다."

이 글이 게재된 6월 17일 밤 사회부 데스크들끼리 전수영 선생님 가족 얘기를 했다. "그 부모에 그 딸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세월호에서 주저 없이 의로운 선택을 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결국 어머니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세월호 100일 특집 주제는 '나라는 어머니들이 바꾼다'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부터 한 달여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엄마 100명을 접촉해 '세월호 이후'에 대해 스무 가지씩 질문을 던졌다. 그 문답을 모아 보니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2000장 남짓이었다. 100인 100색으로 제각각 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에 뚜렷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어머니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장면은 압도적으로 '팬티 바람으로 탈출하는 선장'이었다. 한결같이 '내 자식을 그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15세 아들을 둔 최모(46)씨는 "세월호 선장은 자기 직업을 그저 밥벌이로 여겼다"고 했고,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모(37)씨는 "그런 사람이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했다.

어머니들도 '나라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대통령 생각에 동의했지만, 그 일을 대통령이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특히 "해경이 잘못했으니 해체한다"는 발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여덟 살 딸을 둔 강모(38)씨는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면서 "뇌물을 건네도 거절하는 사람, 배가 기울 때 승객들에게 먼저 피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했다. 많은 어머니가 "나부터 자식을 제대로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겠다. 그래야 수십년 후에 나라가 바뀔 것"이라고 답했다.

세월호라는 국가적 비극은 대한민국 어머니들에게 '내 자식에게 사람 됨됨이부터 가르쳐야겠다'는 깨침을 줬다. 이 각성(覺醒)이 반짝했다 사그라지는 감상일지, 아니면 지속적인 신념으로 굳어질지에 이 나라 먼 장래가 달려 있다. 국가 개조의 열쇠는 5년 왔다 가는 대통령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길러낼 어머니들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