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 정부에 한국의 발전 경험을 종합적으로 전수하는 DEEP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개도국 지도자들을 교육할 기회가 자주 있는데 그들이 공통으로 묻는 것이 있다. '2000년대 이전 한국은 어떤 정책을 써서 발전했는가?'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성장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안다. 이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이런 정책들을 과거 한국 정부가 어떻게 집행했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답이라며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고도성장을 했다고 폄훼한다. 개도국 지도자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권위주의 체제와 값싼 노동력은 모든 개도국이 가진 공통분모인데 유독 한국만 발전에 성공했으니 그 비결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지도자들은 경제 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로 정책 집행을 밀어붙였다'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많은 개도국 지도자도 과거 우리 못지않게 성장 의지가 강렬하다. 그럼에도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을 현실에서 구현할 전문 관료들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은 고시 제도를 통해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관료로 선발했다. 이들을 실적으로 평가해서 승진시켰으며 정치 지도자는 이들을 각종 이해집단의 압력 및 정치적 입김에서 보호했다. 또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 정책 신뢰도를 높였으며, 정책 간 충돌이 발생하면 탁월한 조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관료들은 지도자가 제시한 방향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기업인들 역시 정부의 독려와 지원을 받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와 기술 개발, 수출 시장 개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관료의 역량, 기업인의 헌신이 삼위일체가 돼 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 것이며, 바로 이 점이 권위주의와 값싼 노동력만을 가진 다른 개도국들과 달랐다.
개도국 지도자들에게 이런 설명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 우리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일어난다. 사실 앞서 강조한 사항들은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더욱이 1960~70년대 척박한 환경에서 이를 구현하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가 개도국들에 이런 조언을 해줄 자격이 있나 자성하게 된다. 지난 10여년, 한국 경제는 앞서 강조했던 삼위일체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바뀌다 보니 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이번 추경안의 파행적 처리에서도 알 수 있듯, 중요한 경제정책이 정치 논리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게다가 실 적에 대한 보상보다는 실패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잔뜩 웅크린 관료 집단의 모습은 이제 거의 희망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정책 조정 능력 역시 의심스럽다. 가령 투자 활성화를 부르짖으며 각종 규제를 남발하는 식이다. 이런 현실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지금은 우리가 남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우리야말로 선배들에게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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