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소골의 U자 협곡

 

삼척과 울진의 경계에 솟은 응봉산(鷹峰山, 998.5m)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절승의 계곡을 품고 있는 산이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응봉산은 그 모습이 비상하려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원래 매봉이라 불렸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나름대로의 자랑거리를 지닌 여러 계곡들을 자락에 품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울진 쪽의 온정골과 삼척 쪽의 용소골이다.

 

온정골은 원래 노천온천이 있었으나 지금은 덕구온천으로 개발돼 이 지방의 명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용소골은 무인지경의 원시림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비경지대로 수온이 그리 차지 않아 산행 도중 내킬 때마다 물에 뛰어들 수 있는 매력이 크다. 우리나라에 이제 이렇게 절경이면서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심산유곡은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 몇몇 전문산악인들만 끼리끼리 찾을 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곳이지만 요즘은 교통이 편해져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용소골에는 3개의 용소가 있다. 하나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물색을 띠고 있어 쳐다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혼자서 그곳을 찾아간다면 알 수 없는 공포가 가슴 깊숙이 저며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온정골을 지나 응봉산에 오르고 용소골로 내려서려면 서울에서 당일산행으로는 무리이기 때문에 무박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 관련자료 발췌)

응봉산 지도와 산행코스

 

지난 17일(토) D산악회가 안내하는, 재량박골을 거쳐 응봉산에 오르고 온정골로 내려오는 당일산행을 신청했으나, 16일(금) 동일코스 산행에서 대원 한 사람이 9시가 넘었는데도 하산을 하지 않아, 119구조대와 함께 이 대원을 찾아나서야 하기 때문에 내일산행은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재량박골은 심마니들이 다니는 샛길이 많아 이처럼 길을 잃는 대원들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2010년 7월 29일(금)
서울동강산악회의 응봉산 산행에 따라 나선다. 『덕구온천-온정골-응봉산-용소골-덕풍마을』의 정통코스로 도상거리 약 20Km에, 산악회에서 예상하는 산행시간이 약 10시간이다. 무박산행이다. 덕풍마을에서 풍곡리까지의 약 6Km에 달하는 덕풍계곡은 덕풍마을 이장의 도움으로 트럭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무박산행은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유명한 용소골을 구경하려니 어쩔 수가 없다. 밤 10시 50분 경,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게 서초구청 앞을 출발한 버스가 마지막 경유지 복정역을 지나자 버스 안에는 빈 좌석이 없다.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휴가 길에 나선 차량들에 막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문막 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정차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휴게소는 휴가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모르는 사이에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실내등이 켜지는 서슬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5분이다. 등반대장은 취침을 방해해 미안하다며, 곧 동해휴게소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30분 동안 아침식사를 하고 덕구온천으로 이동하겠다고 한다. 3시경 휴게소에 도착하여, 산악회가 준비해온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 한밤중에 자다 깨어 일어나서 식욕이 있을 리 없지만 산행에 대비하여 억지로 먹어둔다.

 

버스는 4시 32분, 덕구온천 콘도에 도착한다. 등반대장은 4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할 터이니 산행준비를 하라고 이른다.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에 둥근달이 휘영청 밝다. 이윽고 콘도 왼쪽의 계곡을 따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아름다운 온정골은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금문교, 서강대교, 크네이교 등의 미니다리들과 이중보온이 돼 있다는 긴 온천수 송수관이 눈길을 끈다.

덕구온천 도착

 

5시가 넘자, 사위가 한결 밝아져 계곡의 모양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5시 25분, 연리지를 지나고, 1분 후, 도모에가와 라는 일본의 다리를 건너서 평탄하게 이어지는 계곡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뒤따라오는 여자대원들의 탄성이 들린다. “향기 나는 새벽공기, 중천에 높이 뜬 달, 맑은 물소리, 그리고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 가히 환상이네...” 5시 30분, 팔각정이 있는 쉼터에 도착하여 헤드랜턴을 배낭에 챙기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모습을 들어내는 계곡

연리지 안내문

도모에가와 다리

안내문

 

8시 36분, 이번에는 중국의 다리인 장제이교를 건넌다. 안내문에 의하면 중국 귀주성 귀주 협곡에 걸린 330m의 철제 트러스트교라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넌 후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원탕이다. 덕구온천을 출발한 지 약 1시간 정도 경과한 시각이다. 온천수가 뿜어 나오고, 발마사지 시설을 해 놓았다. 온천수를 마셔본다. 미지근한 것이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제이교

원탕

안내문

발마사지 시설

 

5시 54분, 정상 2.9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5시 50분, 또 다른 모양의 이정표가 있는 성우골 갈림길을 지나, 이번에는 영국의 다리인 포스교를 건넌다. 굽이굽이 감돌아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온정골에 이처럼 세계의 유명한 다리의 모형을 만들어 놓은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마지막 다리인 포스교를 지나,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며 계곡과 멀어진다.

이정표


포스교

안내문

계단길을 오르며 계곡과 작별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힘줄처럼 솟은 나무뿌리가 온통 등산로를 덮고 있고, 경사가 급한 곳에는 로프가 걸려 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북서풍이 끊임없이 불어주어, 땀을 식혀준다. 6시 8분, 동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막 떠오른 태양이 모습을 보인다.

산길

가파른 산길과 로프

떠오르는 태양

 

아름다운 적송 숲을 지난다. 응봉산의 적송은 일본인들도 탐을 내어 일제 때 용소골에 벌목용 협궤를 설치했을 정도라고 한다. 6시 25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7시 22분, 이정표가 있는 헬기장을 지나, 커다란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는 응봉산 정상(999m)에 오른다. 주변의 나무에 가려 조망은 별로다.

아름다운 적송

헬기장의 이정표

정상석

삼각점

320도 방향의 낙동정맥 줄기

 

바람도 심하고 햇볕을 가려줄 그늘도 마땅치 않아 정상을 내려서자, 바로 이정표가 있는 너른 공터에 이른다. 대원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정상주를 마시고, 떡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바람이 선들 한 것이 오싹 추위가 느껴져 배낭에서 남방셔츠를 꺼내 걸친다. 나중에 귀가하여 뉴스를 보니, 울진의 오늘 낮 최고기온이 35.7도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응봉산 정상에서 추위를 느꼈으니, 하계에서 더위에 시달리던 분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겠다.

등산로 안내

이정표

 

약 25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즐기고, 7시 48분, 다시 산행을 속개하여 부드러운 능선길을 천천히 걸어 내린다. 간간이 표지기들이 눈에 뜨인다. 7시 59분, 등산로는 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하고, 8시 2분,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는 도계 삼거리에 이른다. 용소골은 오른쪽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서야한다. 길고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등산로 변에 수명을 다하고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8시 40분, 대원들이 쉬고 있는 계곡 직전의 바위에서 약 10분간 함께 휴식을 즐긴다.

부두러운 능선 우회길

도계 삼거리 이정표

용소골 안내판

고사목

 

8시 57분, 작은당귀골로 내려선다. 상류가 돼서 그런지 계곡에는 물이 별로 없다. 10여분 쯤 내려서니 비로소 야트막하게 패인 암반에 맑은 물이 고여 있다. 9시 9분, 안내판이 있는 작은당귀골 입구에 이른다. 왼쪽은 제3용소가 있는 원골과 큰당귀골의 합수점이고 하산 길은 오른쪽이다. 왼쪽으로 들어서서 100m 정도 진행하여 제3용소에 도착한다. 10여 미터 정도의 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다.

작은당귀골의 얕은 소

작은당귀골 입구의 안내판

제3용소

 

제3용소에서 세수를 하고 잠시 땀을 식힌 후,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 본격적인 용소골 트레킹을 시작한다. 9시 20분 용봉산 5.7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돌 많은 계곡을 따라 내린다. 골짜기는 깊지만 계곡에는 생각보다 물이 많지 않아 풍성한 느낌이 전혀 없다. 간간이 검푸른 소를 지나고, 집채만 한 바위를 통과한다.

돌 많은 계곡 길

검프른 소

계곡으로 굴러내린 집채만 한 바위

 

그늘도 없는 계곡 길, 강한 햇살에 노출되어, 땀이 줄줄 흐른다. 아쿠아 슈즈라도 가져왔으면 첨벙첨벙 물속을 걸으며 더위를 잊겠는데, 사전 정보가 없어 가져오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단조로운 계곡을 따라 지루하게 내려서며 수도 없이 계곡을 건넌다. 10시 14분, U자 계곡으로 들어선다. 양쪽으로 용립한 수직암벽 사이로 계곡이 홈통처럼 이어진다. 폭우라도 쏟아져 갑자기 물이 불면 피할 곳도 없는 위험한 곳이다. 매바위라고 부르는곳이다.

매바위

뒤돌아본 협곡

홈통계곡 1

홈통계곡 2

홈통계곡 3

홈통계곡 4

 

홈통계곡을 빠져 나와 검푸른 소를 지나면 다시 단조로운 계곡길이다. 더위에 지친 대원들이 바위에 앉아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인다. 나도 더 이상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발을 물에 담근 채, 간식을 들며 약 20분 동안 휴식을 취한다. 11시 19분, 큰터골 입구를 지나고, 이어 가는 로프가 걸린 암벽을 가로질러 계곡을 우회한 후,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저 앞에 계곡을 건너, 2~3m 정도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대원의 모습이 보인다.

더위에 지친 대원들의 휴식

큰터골 입구

암벽 트래버스

계곡을 건너고, 바위를 기어오른다.

 

소가 깊은 곳은 로프가 걸린 가파른 암릉으로 우회한다. 12시 25분, 제2용소에 도착하여 밧줄을 잡고 폭포암벽을 돌아내린다. 제2용소를 지나면 다시 골짜기가 좁아져, 암벽에 걸린 밧줄을 잡고 게걸음으로 건너야한다. 계곡 건너편 공터에서 야영을 하는 젊은 여인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쫓고 있다. 부럽다.

암릉으로 우회

제2용소

계곡은 다시 좁아지고, 야영자가 물속에 앉아있다

 

1시 4분, 제1용소에 도착한다. 피서객들이 폭포아래 용소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로프를 잡고 암벽을 내려서다 폭포를 카메라에 담는다. 제1용소 아래에서 또 다시 약 10분간 휴식을 취하며 더위를 식힌 후, 계곡을 따라 내린다. 외나무다리를 지나는 등 한결 편해진 길이지만 여전히 돌이 많은 계곡이라 발목과 무릎에의 부담은 여전하다. 무릎이 부실한 사람은 용소골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제1용소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피서객들

제1폭포

외나무다리도 지나고

 

1시 40분, 이정표가 있는 문지골 갈림길을 지나고, 7분 후 덕풍산장에 도착하여 우선 시원한 캔 맥주부터 마시고 나니 비로소 살 것 같다. 용소골, 다른 유명계곡들과 달리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멋진 계곡이다. 하지만 징그럽게 길다. 용소골을 찾는 분들은 필히 아쿠아 슈즈를 준비하여, 물속을 첨벙대면서, 지루함을 잊는 것이 좋겠다.

용소골 입구

 

봉고트럭을 찾는다. 덕풍마을에서 풍곡리까지는 약 6Km,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다. 다행히 풍곡마을 이장님의 배려로 1인당 2,000원을 내고 트럭을 이용한다. 2시 경, 이장님의 아들이 봉고차를 몰고 나온다. 봉고차 짐칸에 실려 땡볕 속을 달리지만 그래도 바람이 불어 견딜만하다. 왼쪽으로 보이는 덕풍계곡에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로 가득하고, 좁은 시멘트도로에서 차선 하나를 이 분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교행이 불가능 하다. 이럴 경우, 공간이 있는 쪽에서 후진하여 길을 연다. 서너 번은 이렇게 용케 길을 열었지만, 내려가는 차, 올라오는 차들이 꼬리를 물다보니 결국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린다. 할 수 없이 나머지 1Km는 걸어서 이동하여, 3시 3분, 등산안내도가 있는 덕풍계곡 입구를 나와 10여분 후,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오지초등학교 풍곡분교장에 도착한다.

덕풍계곡 입구의 등산안내도

풍곡분교장

수돗가, 수도꼭지 대신 발판을 밟으면 물이 나온다

초등학교의 이순신 장군 동상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우선 시원한 막걸리부터 서너 잔을 연거푸 마신다. 이어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산악회가 준비한 시원한 오이냉국으로 식사를 한다. 뒤늦게 하산하여 봉고트럭을 이용하지 못한 10여명의 후미그룹은 땡볕 속의 6Km를 걸은 후, 4시 40분 경 버스에 도착하고, 이들이 식사를 마치자, 5시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10. 8. 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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