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 수중암


2006년 1월 18일(수).

아침 6시 핸드 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방이 너무 덥고, 김 사장 코고는 소리에 밤새껏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제 하루 종일 트럭에 시달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잔 때문인지, 머릿속이 휘휘 내 둘리는 게, 영~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김 사장은 알람 소리에도 상관없이 여전히 코를 골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용무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딜럭스한 화장실이다. 벽면과 바닥의 타일이 고급스럽다. 커다란 샤워 부스 안에는 월풀(Whirl Pool) 시설의 욕조까지 있고, 목욕물을 연화(軟化)시키는 장치도 달려있다. 어제 밤-아니, 오늘 새벽이지, 나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발만 씻고 말았지만, 김 사장은 30분 넘게 월풀에서 첨벙거리다 나오면서 엄지손가락을 내 보였던 시설이다.


김 사장이 화장실이 급해 잠이 깬 모양이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독촉이 성화같다. 화장실을 나선다. 너른 방에는 50인치 TV, 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PC가 놓여 있고, TV 한 채널에서는 24시간 헬리콥터 영화를 상연한다는 안내 쪽지가 붙어 있다. 커피나 차를 타 마실 수 있게 돼 있고, 화장대에는 고급 스킨로션과 크림로션, 그리고 콘돔까지 비치 돼 있다. 특실이라 하지만 이런 모텔은 처음이다. 60,000원도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든다.


울산시민들의 평균 연령은 35.2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고 한다. 숙박 객을 기피하는 모텔들, 화이브 스타(Five Stars) 호텔 뺨치는, 모텔 특실의 시설들 - 역시 젊음이 좋다는 생각이 들고, 울산의 경기가 호황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현대 자동차가 조업을 단축할 때는 울산시 전역에 방송을 한다고 한다. 혹시 외출 중인 사모님들이 있으면 빨리 귀가하라는 메시지로.... 물론 웃자고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아침을 하는 식당을 찾아 시장 통으로 들어선다. 중앙시장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 상인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선다. 작은 식당에 손님은 우리뿐이다. 동태찌개 5,000원, 지방도시의 시장에 있는 식당이라, 생태거니 기대를 하고 주문을 한다. 주인아저씨가 보던 신문을 내 민다. 조선일보다.


얼추 끓여, 식탁 위 가스 불에 얹어 놓은 동태찌개를 보니, 원양에서 잡아 온 냉동동태다. 혼자서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 우스워, 속으로 피식 웃는다. 음식은 간이 맞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 주며, 숭늉을 가져다주는 주인아저씨의 서비스에는 정성이 느껴진다.


오늘은 10시 30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견학할 예정이다. 모텔로 돌아가 양치질을 하고, 짐을 챙겨 나오면, 약 1시간 30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울산 12경중의 하나인 "태화강 십리대밭" 정도는 둘러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선바위, 반구대, 작괘천, 그리고 문수 체육공원 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주인아저씨에게 태화강 주변을 둘러보는 요령, 현대자동차 공장으로 가는 길을 묻고, 식당을 나선다.


울산은 생각보다 큰 도시다. 도심을 태화강(太和江)이 흐른다. 태화강은 1970~90년대의 산업화로 중병에 걸린다. 각종 공장폐수와 생활오수가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 마구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화강이 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되살아난다. 이제는 40년 동안 사라졌던 연어도 돌아오고, 강변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삼호교와 태화교 사이에 십리대밭과 삼호섬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공원 주변, 대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 산책로가 만들어 졌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태화강변을 따라, 삼호교와 태화교 사이를 차로 돌아보기로 한다.

남산에서 본 태화강(십리대밭) - 퍼온 사진


처음 방문하는 큰 도시의 길 찾기가 쉽지가 않다. 태화강 십리대밭을 차로 한 바퀴 돈 후, 시내로 들어와 도로 표지판을 따르고, 길을 물어, 10시 15분 경, 현대자동차 홍보관에 도착한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단체와 개인의 공장견학을 허용한다. 12명 이하는 개인으로, 현대자동차 홈 페이지에서 공장견학을 신청할 수 있다. 매일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2회 실시한다.

현대자동차 문화회관


홍보관 직원에게 신청확인서를 보여주니, 자유롭게 홍보관을 구경하다가 10시 30분에 소강당으로 모이라고 한다. 크지 않은 홍보관에는 현대자동차의 발자취를 사진과 글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초창기 그림에 담담하게 웃는 모습의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과 회장의 친필 글씨가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淡淡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약 150만평 부지에 단일 공장을 세운,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정 회장의 소박한 인품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정주영 회장과 그이 친필 좌우명

홍보관에 전시된 알파엔진

홍보관의 알미늄 바디카


소규모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린이과 어린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다. 안내 여직원이 나와 간단한 인사를 한 후, 홍보영화가 상영된다. 영화는 자동차 제조과정을 보여주고, 자동차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씽씽이라는 로봇이 해설을 하는, 어린들의 눈높이에 맞춘 홍보영화다.


영화가 끝나자, 안내 여직원은 방문객들을 인솔하고, 홍보관을 한 바퀴 돈 후, 아이들에게 모형 자동차를 한 대씩 선물한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제 3공장을 견학하러 출발한다. 제 3공장은 아반떼 등을 조립하는 공장이다. 조립되는 자동차들이 이동을 하고, 젊은 작업원 들은 한 곳에 서서, 동일한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게오르그의 소설 25시가 생각난다. 힘든 작업을 하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자동차 선적장으로 이동한다. 공장 곳곳에 완성차들이 줄지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안내원이 아이들에게 자동차를 한 대 만드는데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아이들 입에서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정답은 약 24시간이라고 한다. 고급차일수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소나타를 기준으로, 약 24시간 정도가 걸리고, 그 중 약 8시간이 도장하는데 소요된다고 한다.

공장안에 늘어선 완성차


버스를 탄 채, 부두를 한 바퀴 돌고, 홍보관으로 돌아와 해산을 한다. 약 1 시간이 걸리는 견학코스다. 오늘 공장을 견학한 아이들 중에서, 꿈을 크게 갖고, 정 회장님과 같이 배포 큰 일을 저지를 놈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적을 기다리는 완성차들


두 늙은이는 다시 봉고 트럭에 올라 대왕암 송림을 구경하러, 장생포로 향한다. 105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길의 오른쪽으로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보인다. 울산은 현대의 도시다. 울산이 호경기를 누릴 수 있는 것도 현대의 공장들 덕이라 하겠다.

멀리 본 현대중공업


옛날 봉건국가 시대에는 국가에 공헌한 사람의 가문에 황제가 면죄부를 내려주어, 그 후손들이 설혹 죄를 짓더라도, 죄를 묻지 않는 제도 있었던 모양이다. 수호지에서 시진이 이에 해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대라는 하나의 기업의 힘으로 울산이 호경기를 구가하고, 온 국민이 직접, 간접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몽헌 회장을 자살로 몰아넣는 것이 오늘의 정치판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정주영 회장이 늘그막에 정치판으로 뛰어들었겠는가? 사명감이 없는 정치가는 사기꾼보다도 더 파렴치하다고 한다. 국민들이 잘못 뽑은 정치가로 인한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즉각 국민들에게로 되돌아온다. 장생포로 향하는 흔들리는 트럭에서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고 복잡하다.


대왕암 송림은 울산광역시 동구 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울산 12경중의 하나다.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호국용이 되어, 이곳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1만5천여 그루의 아름드리 송림과 기암괴석, 동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 등으로 동해안에서 해금강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절경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이라 옛날부터 동면팔경(東面八景)중 용추모우(龍湫暮雨)로 지정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공원에는 용추암, 낙화암, 탕근암 등 층암절벽과 기암들이 거센 파도와 어우러져, 제2의 해금강을 연출한다. 이곳의 울기등대는 1912년 등대를 설치하여 지금까지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상 퍼 온 글)

대왕암 송림의 산책길



울기등대


울창한 송림 숲을 유유히 걷고, 단애에 서서 푸른 동해바다를 굽어본다. 바람이 불고, 제법 싸늘한 날씨인데도 운동복을 입은 아낙네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바다로 향한 벤치에는, 방한모로 온통 머리를 감싸고, 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명상에 잠겨 있는 여인도 보인다. 평화롭고 한가한, 경치가 빼어난 바닷가 공원이다. 공원산책로 주변의 동백나무에 핀 빠알간 동백꽃들이 아름답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을 유유자적, 주위를 둘러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긴다.

대왕암 송림에서 본 울산 동구

산책로 변의 동백나무

해변의 기암괴석 1

해변의 기암괴석 2

 

해변의 기암괴석 3

공원을 나서자 1시가 가깝다. 하지만 적당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동해안 해변도로를 달리다가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포항을 향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주전동에 이르러 한적한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바닷바람을 쏘인 후, 남일 횟집을 찾아 들어선다. 식사시간이 지나 식당은 한가하다. 조용하고 깨끗한 식당이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5만원짜리 모듬회를 주문한다. 백세주로 반주를 하면서 천천히 늦은 점심을 즐긴다. 오늘 일정은 해 전에 포항에 도착하면 된다. 서두를 것이 없다.

주전동 바닷가 암석

식당에서 본 풍경


회가 신선하고, 회를 친 솜씨 또한 뛰어나다. 회와 함께 서비스되는 식사와 별미라는 미역국 맛이 일품이다. 멀리 바다로 길게 뻗은 방파제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람 그림자도 얼씬 않는다. 고요한 겨울 바다에 갈매기 떼가 한가롭다. 매운탕 까지 먹고 나니, 만복상태가 된다.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다시 트럭에 올라 북상을 계속한다. 해안선을 한 굽이 돌아서서, 검은 자갈밭으로 유명한 주전 해수욕장에 이른다. 울산 12경중에 하나다. 너른 해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한 가족이 눈에 뜨일 뿐, 검은 자갈에 부딪혀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그 뒤로 펼쳐지는 쪽빛 바다가 그림 같다.

주전 해수욕장


31번 국도를 따라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북상을 계속한다. 오른쪽으로 문무대왕 수중능이 보인다. 감은사(感恩寺) 복원지를 지나 도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언덕 위의 이견정(利見亭)에 이른다. 잠시 차를 멈추고 정자에 올라, 멀리 문무대왕암을 굽어본다. 이곳이 문무대왕암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견정

이견정에서 본 문무대왕 수중암


호미곶(虎尾串)을 찾아 929번 국도로 들어선다.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에 있어, 제일 먼저 해가 뜬다는 곳, 일찍이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고 했다고 한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强酸猛虎氣像圖) - 퍼온 사진


하지만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는 그의 저서 조선의 산악론에서 "이태리는 외형이 장화(長靴)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다.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에서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 한반도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支那)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라고 주장하고, 일제는 호미곶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한다.


고토분지로의 연약한 토끼 설에 반발한 최남선 선생은 1908년 11월에 발행된 '소년지(少年誌)' 창간호에서 "우리 대한반도는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 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이 땅의 생왕하면서도 무량한 원기(元氣)와 진취적이면서도 무한한 팽창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반박 한다. (이상 퍼 온 글)


이러한 호미곶에 이르니 비가 흩날리며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다. 서둘러 바닷가에 세운 상생의 손과 해맞이 공원을 카메라에 담고 등대 박물관을 관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등대박물관이라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짜임세가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나서니 벌써 어두움이 내린다. 트럭은 포항시를 향해 출발한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해맞이 공원

등대박물관의 해양수산관


영일만 너머로, 멀리 보이는 포항제철소의 불빛이 장관이다. 포항시내로 들어서니,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밀린다. 다행히 오늘은 헤매지 않고, 바로 죽도시장에 이른다. 시장 부근, 황토 찜질방 광고가 요란한 모텔 옆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서니,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숙박을 할 거냐고 묻는다. 온돌방이 있느냐고 되묻자, 있다고 한다. 일진이 좋은 날인 모양이다. 단 번에 숙소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저씨를 따라 방을 확인하고, 35,000원 달라는 숙박비를 30,000원으로 깎아 숙소를 정한다.

포항제철의 불빛


죽도시장은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때는 점포수가 1,200여개에 달하는, 경북 동해안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으로 발전하였지만, 최근에는 대형 할인매장의 포항 진출로,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횟집 200여개가 밀집하여 성업 중이라, 사계절 내내, 저렴한 가격으로 동해안의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죽도 어시장


어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점포를 하나 골라 안으로 들어선다. 회 15,000원, 양념 값 5,000원에 매운탕 까지 끓여준다. 과메기는 10,000원에 12마리를 준다. 듣던 대로, 엄청 싼 가격이다. 백세주를 반주로 둘이 양껏 먹어도 다 먹지를 못하고, 음식을 남겨 둔 채 일어선다.


모텔로 돌아와 나는 안 쪽 자리에서 곯아 떨어지고, 김 사장은 축구를 보겠다고 TV앞에 자리를 편다.

 


(200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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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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