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억불봉 능선


2009년 3월 25(수).

5시 30분 모닝콜 소리에 잠을 깬다. 어제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니 8시간 이상 숙면을 한 것이다. '천지민박'은 외화마을 지계교를 건너 첫 번째 집이다.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에는 찾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외화마을에는 민박집들이 여럿 있지만, 천지민박 주인이 젊은 사람이라, 편하게 느껴져서인지, 홀대간꾼들이 자주 찾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도 작업인부들을 불렀다고 하면서도, 일찍 식사를 마련해 주고, 관동마을사거리 근처까지의 험한 길을 차로 데려다 준다. 올해 39세인 정영석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임야를 농지로 개간하여, 고사리, 둥굴레, 고로쇠, 매실 등을 경작하느라고 바쁜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헌데 이 양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산악회라고 한다. 산악회를 따라온 20명~30명의 등산객들이 고사리 밭을 밟고 지나면, 그해 고사리 농사는 끝장이 나고, 둥굴레 같은 것은 남아나지가 않는다고 한다.


둥굴레를 심었다 등산객들이 망쳐놓는 바람에 둘러엎고, 고로쇠나무 묘목을 심어 놓았다는 농장 끝까지 차로 올라, 아쉬운 작별을 한다. 이어 희미한 길을 따라 약 7분 쯤 오르니, 이정표가 있는 관동삼거리 주능선이다. 지난번 관동마을에서 40분이 넘게 급경사 오르막을 거쳐 올랐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구름아래 검게 보이는 산이 백운산이다


 

주능선, 관동마을 갈림길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06:45) 농장 임도-(06:52) 관동삼거리-(07:00) 외화재-(07:26) 430m봉-(07:33) 천황재-(07:43) 512.3m봉-(08:13) 이정표<고사마을 갈림길>-(08:47) 이정표<항동마을 갈림길>-(08:54~08:57) 매봉정상-(09:50) 960m봉/헬기장-(10:00) 무명봉-(10:18) 1115m봉/헬기장/묘-(10:37) 전망바위-(10:41~11:07) 백운산 정상-(11:17~11:38) 중식-(11:41) 이정표<정상 0.3Km>-(11:48) 신선대-(11:55) 전망바위-(12:07) 난간 길-(12:23) 헬기장-(12:29) 헬기장-(12:45) 한재-(12:31) 헬기장-(13:37~13:39) 따리봉-(14:15) 참샘이재-(14:20) 헬기장-(14:48) 철계단-(14:52) 전망바위-(14:59~15:03) 도솔봉-(15:25) 무명봉, 우-(15:48) 890m봉/성불사 갈림길-(15:59) 새재/성불사 갈림길-(16:26) 성불사』들머리 7분, 중식 21분, 마루금 8시간 46분, 날머리 27분, 총 9시간 41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산속이라 아직도 어둑한 느낌이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비교적 맑은 날씨에 바람이 거세다. 꽃샘추위로 봄 같지 않게 춥게 느껴지는 산길을 혼자서 터덜터덜 걷는다. 위잉~위잉~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소리에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7시 정각, 외화재 사거리 깊은 안부에 내려서서 직진한다.

외화재


햇살이 능선을 비치자 분위기가 비로소 밝아진다. 참나무사이로 뚜렷하게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 곳곳에 연분홍 진달래가 화사하고,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섬진강물이 반짝인다. 큰 기복이 없이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능선을 따라 아침산책을 하듯 유장하게 걷는다. 7시 23분, 고도 약 430m정도의 봉우리를 넘고, 10분 후, 천황재를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햇살이 비친 봉우리, 진달래가 곱다.


7시 42분, 너른 헬기장에 삼각점이 있는 512.3m봉을 지나고, 5분 후, 안부에 내려선다. 왼쪽 내화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북서쪽으로 오르막 능선이 꾸준히 이어진다. 240도 방향으로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억불봉을 당겨서 찍는다.

512.3m봉

삼각점

당겨 찍은 억불봉


능선 하나를 왼쪽으로 우회하고, 8시 13분, 이정표가 있는 고사마을 가림길을 지난다. 해가 오르면서 바람이 다소 잦아드는 느낌이지만 표지기들의 몸부림은 여전하다. 능선 하나를 왼쪽으로 우회한다. 고도는 600m대로 변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사이로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도를 700m대로 높인다. 가까이 선회하면서 울어대는 까마귀가 기분 나쁘다.

고사마을 갈림길

꾸준히 고도를 높이는 황량한 능선 길

8시 47분, 이정표가 있는 T자 능선에 올라 왼쪽 매봉으로 향한다. 이정표는 매봉까지의 거리가 0.3Km라고 알려준다. 오른쪽은 항동마을이다. 8시54분, 매봉 정상(867.4m)에 오른다. 도상거리 약 4.5Km, 그리고 약 500m의 고도차가 나는 구간을 1시간 54분 만에 오른 것이다. 넓은 헬기장이지만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별로인데. 왼쪽으로 백운산의 흰 머리가 빼꼼하게 보인다. '눈이 남았나?' 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보니 상고대다. 헬기장 복판에 삼각점이, 그리고 나뭇가지에 정상표지판들이 걸려있다. 

항동마을 갈림길

삼각점

정상표지판

하얗게 보이는 백운산 머리


이제 동서로 이어진 백운산의 주능선에 진입한 것이다.

 

"상봉이라고도 불리는 백운산은 해발 1,218m 높이로 전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웅장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백운산은 광양인의 기상이요, 영원한 고향으로 지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백운산은 남해안 지방에서 보기 드물게 장엄한 산세를 가졌고 능선이 잘 발달되어 있다.

 

정상인 상봉에서 동으로 매봉, 서로는 따리봉, 도솔봉, 형제봉에서 이어지는 해발 1천 미터에 달하는 주능선 16km를 가졌으며 남북으로는 각각 20km에 달해 4개면(봉강, 옥룡, 진상, 다압)을 경계 지으며 능선이 광양만을 향해 뻗어 내린다. 능선을 따라 각각 10km에 이르는 4대 계곡(성불사계곡, 동곡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펌)

도솔봉에서 본 따리봉, 상봉, 매봉 줄기


매봉을 왼쪽으로 내려서서 백운산으로 향한다. 맨땅이 들어난 능선은 얼어서 딱딱하고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는 갈색 꽃망울을 달고 있다. 바람결에 반장갑을 낀 손끝이 시리다. 황량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9시 50분, 헬기장인 960m봉에 오른다. 한 귀퉁이에 쓰러져 있는 이정표가 백운산까지의 거리가 3.0km라고 알려준다.

얼어붙은 능선길

쓰러진 이정표


10시 18분, 1,115m봉, 묘가 있는 헬기장에서 정면으로 백운산을 바라본다. 우뚝 솟은 정상과 오른쪽 신선대로 이어지는 암릉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 금을 긋고 있다.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 푸른 산죽이 모습을 보이고 죽은 나무가 길을 막는다. 백운산을 향한 마지막 오름길을 오른다. 암릉을 지나, 10시 37분, 전망바위에 서서, 백운산에서 억불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을 굽어보고, 섬진강 너머로 남해의 금오산을 본다.

가까이 보이는 백운산

백운산 가는 길

섬진강과 남해 방향


10시 41분,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백운산 암봉을 바라보고, 암릉길을 지나, 10시 47분, 정상석이 있는 암봉에 오른다. 사방이 트여 조망이 일품이다. 지나온 능선, 가야할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성불사계곡, 동곡계곡, 어치계곡에 물을 갈라주는 두 개의 지능선이 힘차게 흐르는가 하면, 북으로는 지리산 줄기가 뚜렷하다.

백운산 암봉

 

정상석과 뒤로 보이는 도솔봉

지나온 능선

지리산 방향

암봉 위

암봉 아래에 등산로와 이정표가 보인다. 낮선 길이라, 암봉을 내려서서 이정표 앞에 선다. 이정표를 보니, 이 길은 억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임을 알 수 있겠다. 이정표 주변에 상고대가 피어있다. 산 중턱에는 진달래가 활짝 폈는데, 산꼭대기는 상고대다. 과연 큰 산이다. 로프가 걸린 암릉길을 지나, 신선대로 향하며, 돌탑과 거북바위를 굽어보고 암봉을 돌아본다.

정상 이정표

상고대

 

돌탑과 거북바위

뒤돌아 본 정상


11시 10분,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신선봉으로 향한다. 오른쪽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다. 인근 주민인지 배낭도 메지 않은 등산객 한분을 반갑게 만난다. 11시 17분, 바람을 막아주는 돌길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11시 38분, 키 작은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며 뒤돌아 정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11시 48분 이정표가 있는 신선대에서 오른쪽의 한재로 내려선다. 왼쪽은 진틀로 가는 길이다.

철계단

뒤돌아 본 정상

신선대


11시 55분, 전망바위에서 따리봉과 도솔봉을 카메라에 담고, 북쪽으로 지리산능선을 바라본다. 이어 암릉길을 지나며 공깃돌 같은 바위를 보고, 산죽길, 난간길을 지나, 12시 29분, 헬기장에서 따리봉을 가까이 본다.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능선 하나를 왼쪽 사면으로 우회하고, 급 내리막은 철계단을 따라 내린다. 12시 45분, 이정표가 있는 한재에 내려선다.

따리봉과 도솔봉

가까이 본 따리봉

한재 이정표

한재


도로를 건너 따리봉 오르막길을 오른다. 고도차 약 270m를, 도상거리 1.3Km 구간에서 극복하여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군데군데 로프가 걸려있다. 1시 31분, 헬기장에 올라, 왼쪽으로 진행하고, 6분 후,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는 따리봉 정상(1,127.4m)에 오른다. 조망이 좋다.

로프가 걸린 가파른 오르막

정상석

따리봉에서 본 백운산

도솔봉, 마루금은 오른쪽, 왼쪽은 남쪽으로 흐르는 지능선

논실, 동곡 계곡을 만들어 주는 지능선


1시 39분, 따리봉을 서쪽으로 내려선다. 철계단을 지나며 고도를 낮추고, 뒤돌아 능선에 도열한 회색빛 나무들과 따리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2시 15분 이정표가 있는 참샘이재에 이르러 직진한다. 왼쪽은 논실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 2시 20분 너른 헬기장에 올라 도솔봉과 따리봉을 바라보고, 철계단을 올라 능선에 서니, 왼쪽에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이 유장하다. 등산로는 잡목 사이로 이어지고, 저 앞에 도솔봉 정상에 걸린 철계단이 보인다.

능선에 도열한 회색빛 나무들, 큰 산이다

뒤돌아 본 따리봉

참샘이재

도솔봉

따리봉

마루금 왼쪽, 남으로 흐르는 능선

도솔봉에 걸린 철계단


2시 59분, 헬기장인 도솔봉 정상(1,123.4m)에 오른다. 이정표와 정상표지석이 보이고, 삼각점은 누군가가 파헤쳐 놓아 땅에 뒹굴고 있다. 왼쪽으로 상봉과 억불봉을 바라보고 가야할 마루금을 카메라에 담은 후, 3시 3분, 도솔봉을 내려선다. 이제까지 신작로 같던 등산로가 일변하여 산길로 모습을 바꾼다. 이제부터는 정맥꾼들이 주로 다니는 마루금이다.

도솔봉 정상

정상석

상봉과 억불봉

가야할 정맥 마루금


3시 25분, 무명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3시 48분, 이정표가 있는 890m봉을 지나, 3시 59분, 새재에 도착하여 왼쪽 성불사로 내려선다. 지난해 11월, 송암산악회를 따라 새재에서 죽정치까지 마루금을 걸었으니, 이제 죽정치에서 한치재까지의 도상거리 약 55.5Km를 걸으면, 호남정맥 종주가 완성된다.

890m봉

새재


4시 26분, 성불사에 도착하여, 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절에서 2Km 떨러진 하조마을까지 내려가야 한다며, 지금가면, 5시 40분차를 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성불사 입구에서 성불사 사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지만, 운행시간이 지나, 지금은 다른 교통수단이 없다. 할 수 없이 아스팔트도로를 터덜터덜 내려선다. 몸은 지쳤지만, 호남정맥 끝머리를 무사히 해 냈다는 성취감으로 기분은 상쾌하다.

성불사 일주문


5시 10분, 하조마을에 도착한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마을에는 어리친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새마을 회관 경로당을 두드리니 할머니들이 내다보며 버스정류장을 알려준다. 바람 피할 곳을 찾자고, 혹시 마을에 상점이 없느냐고 묻는다. 바로 옆이 공판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공판장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할 수 없이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등지고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어한주를 아껴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다. 5시 35분, 버스가 도착하고, 5분 후 광양으로 출발한다. (요금 1,000원) 버스는 6시 조금 지나 광양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나는 6시 30분 발, 동서울 행 버스표를 산다. (요금, 우등 32,100원) 저녁을 사 먹을 시간도 없다. 화장실에서 땀에 젖은 상의를 바꾸어 입고, 슈퍼에 들러 우유와 맥주를 산다. 차가 출발하면, 남은 행동식, 떡으로 저녁을 때울 심산이다.

 


(2009. 4. 1.)















at 05/07/2010 06:17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감사하며 담아갑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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