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봉에서 본 남쪽 조망-뒤로, 화채봉, 대청봉 , 귀떼기청봉,가운데 황철봉
신선봉과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흐르는 능선
미시령에서 진부령구간은 백두대간종주의 종점구간이다. 무박으로 미시령을 출발, 신선봉, 대간령, 마산을 거쳐, 다음 날, 일찍이 진부령에 도착한다. 진부령의 거대한 표지석 앞에 모여 환하게 웃으며 졸업사진을 찍고, 근처 식당에서 떠들썩하게 완주 자축파티를 갖는 것이 관례처럼 되 버렸다.
2005년 3월 11일(금), 산정산악회 3차 백두대간종주 팀은 이날 무박으로 진부령구간 산행을 시도하지만, 아침부터 내린 눈으로 미시령의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이른 새벽에 용대동 박달나무 쉼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대간령에 올라, 마산을 거쳐, 진부령에 도착, 졸업사진을 찍고, 자축파티를 한 적이 있다. 하늘이 말리는 바람에, 미시령-진부령 구간의 절반만 산행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숙제로 남겨두게 된 것이다.
대간종주를 마무리하여야겠는데, 남은 숙제 풀기가 쉽지 않다. 다른 종주 팀을 따라 땜방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하산 후 남의 자축파티에 끼어드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무박산행으로 놓치게 되는 신선봉에서의 조망이 무척 아쉽다.
산악회 가이드를 받지 않고, 개별산행을 할 경우에는 교통편과, 입산금지구역의 산행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이 구간산행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급기야 대간완주에 이 반 구간만 달랑 남게 된다.
2005년 11월 9일(수).
남은 숙제를 풀기위해 심사숙고해서 잡은 날이다. 동반자는 조 고문님이다. 조 고문님도 이 곳 남은 구간만 마치면 대간종주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흔쾌히 모험 한번 해 보자고 동의해 온다. 6시 10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6시 25분 발 무정차 속초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미시령을 통과하지만 그 곳에서 정차를 해줄지는 기사 마음에 달렸다.
속초까지 3시간 30분에 달리는 우등버스다. 요금은 16,800원. 제법 비싸다. 조 고문님은 기사 바로 뒷좌석에 앉고, 나는 오른 쪽 입구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첫 차라서 그런지 승객은 모두 7-8명뿐이라, 지정된 좌석에 앉지 않았다고 시비하는 사람도 없다. 이윽고 버스 기사가 나타나 승차권을 회수하고, 버스가 출발한다. 기사양반 인상이 크게 까다로워 보아지 않아 일단 마음이 놓인다.
버스는 남한강 줄기를 거슬러 달린다. 강에는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홍천을 지나, 44번 국도로 접어들자, 추수가 끝난 논에 서리가 하얗다. 어제가 입동(立冬)이다. 오늘 강원도 산간지역의 최저기온은 영하 2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을 것이라고 예보한다. 단풍철도 지났으니, 산행객들이 많이 줄어, 감시원들의 감시도 소홀할 터이고, 더 추워지면 산행이 어려워질 듯싶어 오늘을 디 데이로 정한 것이다.
버스는 홍천강 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는 홍천강의 아침풍광이 아름답다. 화장실을 들른 후, 버스 문 앞에서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버스 기사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등산하러 나왔는데, 미시령 휴게소에서 잠간만 내려주세요. 미안합니다." 기사양반은 우리들을 한번 흘끗 쳐다보더니, 말없이 버스에 오른다.
홍천강의 아침
승객의 편의를 생각하는 기사 입장에서는 미시령에서 잠시 멈추어, 승객을 내려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승객들 중에는 무정차 버스인데, 왜 정차를 하느냐고,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어, 운이 나쁘면 속초까지 내쳐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사전에 준비해 두어야 한다.
기사양반의 침묵을 묵인으로 이해하고, 예비했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아마도 기사양반은 배낭을 들고 앞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부탁하기 전에, 이미 상황을 짐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감시원의 눈을 피하는 일뿐이다.
버스가 미시령에 접근한다. 조 고문님은 열심히 왼쪽 산세를 살피고, 나는 오른쪽으로 감시소 위치를 눈여겨본다. 버스가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조 고문님이 씽긋 웃는다. 뭔가를 찾았다는 신호다. 9시 8분 버스가 미시령 정상에 멈춰 선다. 기사양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안녕히 가시라고 답례를 한다. 버스에서 내려선다. 강한 바람에 모자가 휘익 날린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08 미시령도착-9:12 능선-9:55 샘-10;39 성봉-11:17~11:20 화암재-11:42 신선봉 갈림길-11:51~11:57 신선봉-12:15~12:50 중식-13:30 알바 인식, 마가목 채취-16:08 대간령 하산길-16:17 마장터-17:03 박달나무 쉼터> 중식시간을 포함하고, 길을 잘못 들어 마가목을 채취하며 1시간 이상 헤맨 시간까지, 약 8시간 동안 산행을 한 셈이다.
미시령 휴게소가 한가하다. 조심스럽게 휴게소로 접근한다. 감시원이 나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재빨리 출입금지 팻말을 지나, 가파른 절개지를 뛰듯이 달려 오른다. 바람이 사나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3~4분 쯤 허겁지겁 달려, 능선에 올라서도 내쳐 달린다. 누가 뒤쫓아 오는 기색은 없다. 비로소 한숨 돌리고 주위를 조망한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다. 차갑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다. 강한 바람에 가스가 모두 날려갔는지, 멀리까지 시계가 트였다. 나무들도 잎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만 앙상하여 조망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면으로 저 멀리 삼각형 바위덩어리 모습을 한 성봉이 우뚝 솟아 있다. 오른쪽으로는 성봉에서 흘러내린 암봉들이 울퉁불퉁 험상궂은 형상을 하고 골짜기로 달리고, 그 아래 협곡 사이로 속초시와 푸른 동해 바다가 보인다.
성봉 오르는 길
성봉에서 흘러내리는 암봉
몸을 돌려 남쪽을 향한다. 왼쪽으로 역광 속의 울산암 옆모습이 그로테스크하다. 신흥사 쪽이나, 중봉 정도에서 볼 때의 부드러운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마치 악마의 성처럼 으스스하다. 정면으로 미시령 고개가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는 황철봉의 웅장한 모습이 버티고 서 있다. 시계가 무척 맑아, 황철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뚜렷하고, 정상 부근의 너덜지대도 확실히 보인다.
울산암
황철봉, 미시령, 뒤로 대청, 중청
오늘의 산행시작은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모험 이였지만, 운 좋게도 최선의 방법으로 신성봉이 우리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제는 아무리 늑장을 부리며 여유 있게 산행을 하더라도 4시 경이면 하산을 할 수 있겠다.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능선을 오른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지만, 이런 바람에도 익숙해진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등산로에는 바람에 날려 낙엽도 머물지를 못한다. 샘터에 이른다. 두세 개 야영장이 있는 비교적 넓은 공터 한 귀퉁이에 분명히 샘터가 있어야 하는데, 샘터가 보이지 않는다. 샘터 자리라고 짐작되는 곳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걷어 내니, 비로소 샘이 모습을 보인다. 플라스틱 관을 통해 적지 않은 물이 흘러내리는 데도, 샘이 낙엽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것이다. 차지 않은 물맛이 한 없이 부드럽다.
낙엽에 묻혔던 샘
10시 9분 바위 전망대 위에 선다. 남쪽으로 황철봉이 자세를 조금 낮추어 누어있고, 황철봉 뒤, 왼쪽으로는 대청봉과 중봉이, 오른쪽으로는 귀떼기 청봉이 보인다. 미시령을 통과하는 56번 국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북쪽으로 가장 깊게 휘어진 도로 끝에서 우리가 걸어 온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골짜기가 뚜렷이 보인다. 조 고문님이 차창을 통해서 이 골짜기를 발견하고, 씽긋 웃었던 것이다. 확실한 개구멍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에 명랑호, 청초호가 뚜렷하고, 속초시의 건물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저 멀리 동해 바다가 푸르다.
속초-영랑호, 청초호가 뚜렷하고, 그 뒤로 동해가 푸르다
등산로는 암릉으로 이어지고,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주위는 진달래 군락지인 모양이다. 봄철에 진달래가 만개하면 장관이겠다. 눈앞에 성봉이 가깝고, 성봉 위에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오늘 대간 길에서 유일하게 본 사람 모습이다. 성봉 옆으로 신선봉이 남성다운 거친 모습을 나타낸다.
성봉-정상에 두 사람이 보인다.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신선봉
너덜지대를 지나 성봉으로 오르는 길가에 새롭게 만든 참호가 눈에 뜨인다. 성봉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이 서 있고, 그 아래 바위에 누군가가 붉은 스프레이로 성봉이라고 써 놓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조망을 즐긴다. 발아래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험한 암릉길이 이어지고, 그 뒤로 황량한 모습의 신선봉이 우뚝 서 있다. 신선봉 뒤로 동해가 푸르고,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흐르는 능선이 장엄하다. 곳곳에 너덜지역이 보인다.
성봉 정상의 돌탑
성봉으로 이어지는 너덜길과 무명봉
성봉에서 본 동쪽 조망-운봉산과 문암
성봉을 내려서서 화암재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다. 그 늘진 사면이라 돌 위로 흐른 물이 두텁게 얼어붙어 있는 곳도 있다. 눈 쌓인 겨울철에는 위험한 곳이다,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보는 암릉길의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기암 사이로 보이는 동해가 한 없이 푸르다. 이윽고 너른 화암재에 도착하여, 과일을 들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화암재는 동쪽으로는 화암사로, 서쪽으로는 마장터로 이어지는 네거리이다.
상봉 하산길에 본기암들과 동해바다
화암재
신선봉으로 향하는 황량한 오름길을 오른다. 잎이 다 떨어진 참나무 지역을 지나고, 관목지대를 통과한다. 심한 바람에 시달려 키를 낮추고 이리저리 굽은 오래된 관목들이 눈에 뜨이고, 키 작은 나뭇가지에 걸린 빛바랜 표지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어김없는 고산 풍경이다.
뒤돌아 본 성봉
온갖 풍상에도 꿋꿋한 고목
신선봉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신선봉, 왼쪽으로 내려서면 대간길이다. 바닥에 눈에 익은 비닐 표지판이 돌에 눌려 있다. 복원대 표언복 교수가 놓고 간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이다. 표 교수가 이곳을 지난 것이 2005년 7월 22일로 돼 있으니, 교수님도 어쩔 수 없이 불법산행을 한 모양이다.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
오른 쪽 신선봉으로 오른다. 관목지대가 끝나고 너덜지대가 신선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신선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작은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 한 귀퉁이에 군(軍)에서 세운 경고판이 서 있다. 참호, 교통호 등 군사시설을 손궤하지 말라는 경고판이다. 아마도 이 지역이 군사 훈련지역인 모양이다.
신선봉 아래 헬기장-뒤로 성봉, 멀리 대청봉도 보인다.
11시 50분 경, 신선봉 정상에 오른다. 너덜바위가 얼기설기 얽힌 좁은 공간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표지리본들이 심한 바람에 몸부림을 친다. 거시기 팀이 1,204M라고 고도를 표기한 작은 판자 토막이 바위 사이에 끼여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본다. 사방이 탁 트이고 시계에 막힘이 없다. 안개가 많다는 이 지역을 이런 날씨에 오르다니, 실로 축복을 받은 느낌이다.
신선봉 정상
북쪽으로 광활한 토성면이 내려다보인다. 북서쪽으로 마산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뒤로 향로봉 능선이 아련하다. 서쪽으로는 대간령 쪽으로 흘러내리는 광활한 관목 숲, 그 사이사이에 머리를 내민 암봉들, 그리고 너덜지대들이 가히 장관을 이룬다. 황량하고 거친 남성적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는다. 남쪽으로는 지나온 성봉이 날카롭고, 동쪽으로 속초에서 고성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뚜렷하다. 동해 바다는 마냥 푸르기만 하다.
뒤돌아 본 신선봉 정상
마산과 향로봉
신선봉에서 본 서쪽 사면
울산암과 화채봉
바람이 거세어 정상에서 5분 정도 머물다가 아쉽지만 서둘러 하산한다. 갈림길을 지나 대간길로 들어서서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에 앉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마지막 봉우리라는 신선봉을 우러러보며 점심식사를 한다. 북설악 광대한 지역에서 조 고문님과 단둘이 앉아 호젓하게 하는 이 점심식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식사하며 바라 본 신선봉(우)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신발 끈을 고쳐 맨 후 대간령으로 내려선다. 올돌하게 홀로 떨어져 솟아있는 암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길을 걷는다. 뚜렷한 능선길을 누군가가 나뭇가지로 가로 질러 막아 놓았다. 나뭇가지를 치우고 계속 능선길을 내려선다. 하지만 새롭게 만든 참호에 이르러 길은 끊어지고 참호 아래는 벼랑이다. 아마도 능선 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 군인들이 참호를 만들면서 생긴 길로 내려선 모양이다. 주위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본다.
황량한 하산길
오른쪽으로 너덜지대가 보이고,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눈에 뜨인다. '어, 이건 또 무슨 횡재인가?' 동성 대원의 마가목주를 맛 본 후, 마가목만 보면 욕심이 생긴다. 조 고문님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내려 온 길을 되 집어 올라가, 나뭇가지로 길을 막았던 곳에 회귀하여, 오른 쪽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가목 아래에 선다.
철 지난 마가목 열매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나무에 기어올라, 바싹 마른 마가목 열매를 채취한다. 조 고문님이 무척 흥겨운 모양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열매를 따면서, "올해는 마가목 구경을 못하고 넘어 가는가 했더니, 알바를 한 덕에 마가목 구경을 한다."고 마냥 즐거워한다.
마가목 열매를 채취하고 길을 찾아 나선다. 오른 쪽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암봉이 보인다. 산 사면을 가로 질러, 암봉 위에 오른다. 암봉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조망한다. 오른쪽으로 또 다른 능선이 흐르고, 그 능선 저 아래 구조물이 보인다. 아마도 헬기장인 모양이다. 맞은 편으로 마산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향로봉이 뚜렷하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암봉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서기가 쉽지 않겠다.
반대로 왼쪽을 본다. 서남쪽으로 용대동으로 짐작되는 마을이 멀리 보이고, 참호가 있던 벼랑을 내려선 능선이 부드럽게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완만한 산 사면을 가로 질러, 그 능선에 이르기가 쉬워 보인다. 원칙은 능선 분기점으로 회귀하여, 오른쪽 능선길을 찾아야 하겠지만, 한동안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려니 슬그머니 꾀가 난다.
조 고문님과 상의를 한 후, 왼쪽 사면으로 내려서서 참호가 있던 벼랑을 돌아, 부드러운 왼쪽 능선에 오른다. 이 때 시간이 3시 경이다. 서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길이 뚜렷하고, 나뭇가지에 간간이 산행리본도 매달려 있다. 낮은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며 능선은 계속 서쪽으로 흘러내린다. 오른쪽으로 대간능선이 뚜렷이 보이고, 대간령이라고 짐작되는 안부도 눈에 뜨인다.
갑자기 능선이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왼쪽으로 다른 능선이 보인다. 길을 버리고 골짜기를 지나 왼쪽 능선에 올라, 능선을 타고 내린다. 이윽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른 골짜기를 지난다.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저 아래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물 흐르는 계곡에 내려서니 바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화암재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이다.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내려선다. 침엽수 조림지역에 이르고, 4시 8분 경 대간령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침엽수들은 노란 잎들을 모두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다. 숲에는 억새가 무성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내려서서 마장터에 이른다. 지난 3월에는 눈 속에 파묻혀, 비어 있던 집 앞마당에서 두 사람이 억새다발을 만들고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이방인들을 경계한다.
잎떨어진 침엽수 군락지
마장터
마장터를 뒤로하고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하산을 계속한다. 5시 경, 훈련장에 도착하여, 개울을 건너, 박달나무 쉼터를 지난다. 56번 국도는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S자로 휘어진 구 도로를 따라 용대동 삼거리에 이르러, 불을 환하게 밝힌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마당에 강원도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다. 넓은 음식점에는 손님이 없다. 남자 두 사람과 식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마주 나온다.
용대동 개울가의 갈대(?)
"인제에 가야하는데, 이곳에서 넉넉하게 식사를 하고, 기름 값을 드릴 터이니, 태워다 줄 수 있나요?" 라고 묻자, 남자가 "몇 사람인데요?" 라고 되묻는다. 두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아주머니가 미안 한 듯, 태워 다 드리고 싶지만, 술을 마셔서 안 되겠다고 한다.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특산물을 판매하는 매장을 갖춘 식당에는 역시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인제로 나갈 차편을 묻는다. 여직원이 6시에 버스가 있다고, 친절하게 버스 정류장 위치를 알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캔 맥주 2개를 사들고 나온다. 5시 40분경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갠 맥주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다. 6시 조금 지나 원통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후 원통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서울 가는 막차시간은 7시 40분이다. 7시 25분 차표를 산다. 요금은 13,300원. 완행이라 조금 싸다. 표를 파는 아가씨에게 근처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소개 받은 식당에 들어서서, 음식을 주문하고, 백세주 한 병을 부탁한다. 조 고문님은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 술 한 잔이 없다면 너무나 썰렁하다. 단출하게 2명뿐인 졸업생이 백세주로 완주를 자축을 한다. 식당 음식은 맛이 좋고, 양도 풍성하다.
7시 25분 원통을 출발한 버스는 홍천, 용문, 양평을 거쳐, 10시 35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200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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