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마을 매화밭

2008년 3월 22일(토).

무주공산을 따라 호남정맥을 간다. 때는 바야흐로 매화가 만개하는 시기다. 산악회에서는 코스를 『관동마을-배딩이재-갈미봉-쫓비산-토끼재』로 잡아 매화꽃도 구경하고, 호남정맥 마루금도 걷는, 이른바 '임도 보고 뽕도 따기'를 시도한다. 들머리 약 1,2Km, 마루금 도상거리는 약 6.2Km 정도다.


관동마을의 매화꽃은 환상이다. 마루금으로 들어서서 왼쪽의 섬진강, 오른쪽의 억불봉을 보면서 걷는 산길은 호남정맥에서도 백미에 속하는 구간인데, 도중에 만나는 산수유, 진달래들로 산책길이 더욱 더 정겹게 느껴진다. 산행시간 약 3시간에 이를 위해 투자한 시간은 12시간 30분이다. 특히 비 오는 귀경길에 시간이 많이 걸려 지루하다.


만석에 가까운 대원들을 태운 버스는 논산, 천안고속도로를 달려, 탄천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이어 전주를 지나 17번 국도를 타고 내린다. 성삼재, 고리봉,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아래 자리 잡은 산동마을의 노란 산수유에 정신을 빼앗기고, 구례를 지나 19번 국도를 타고 내리면서는 섬진강 맑은 물빛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버스는 11시 20분 경, 관동마을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20) 관동마을-(11:27) 산행시작-(12:11) 주능선, 좌-(12:27~12:31) 갈미봉-(12:35) 영산신공 묘-(12:39) 안부-(12:45) 암릉길-(12:51~12:52) 전망바위-(13:06) 암봉-(13:12) 안부-(13:26) 암릉날등-(13:29~13:41) 간식-(13:49~13:50) 쫓비산-(14:02) 청매실농원 갈림길, 우-(14:19) 봉, 직진-(14:32) 갈림길, 좌-(14:34) 토끼재』들머리 44분, 간식 12분, 마루금 2시간 11분, 합계 3시간 7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산행시작 전 대원들이 모두 모여 대문사진을 찍는다. 마을 입구에서 홀로 핀 동백을 카메라에 담고 시멘트도로를 따라 매화 밭 속으로 들어선다. 고도가 높아지며 매화나무가 드물어지는 곳에 고목 한그루가 우뚝 서서 흐드러지게 지천으로 핀 꽃들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입구의 동백

길가의 홍매화?

 

매화

매화 속으로

매화밭

고목과 매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기 직전, 시야가 트인 곳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지리산을 우러르고, 섬진강을 굽어본다. 왼쪽 멀리 성제봉(1115m)과 그 오른쪽으로 뾰족한 천왕봉이 보이고, 강 건너로 평사리가 가깝다.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허위허위 쉬지 않고 천천히 오른다. 저 앞에 능선이 보인다. 12시 11분,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진행한다. 갑자기 등산객들이 늘어난 느낌이다. 아마도 백운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인 듯싶다.

뒤돌아 본 지리산 줄기와 섬진강

능선을 향한 마지막 급 오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맨땅이 누렇게 드러난 등산로가 여전히 가파르게 이어진다. 유난히 여자등산객들이 많아 보인다. 배낭도 메지 않은 여자 분이 혼자서 황량한 참나무 숲길을 힘들게 오른다. 다른 분들은 삼삼오오 모여 쉬기도 하는데 이분은 쉬지도 않고 꾸준히 오르고 있다.

쉬지 않고 혼자서 꾸준히 갈미봉 급경사를 오르는 여인


12시 27분, 갈미봉 정상에 오른다. 너른 정상 여기저기에서 등산객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즐기고 있다. 정상표지판을 카메라에 담고, 삼각점을 찾으러 이리저리 둘러봐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정상 왼쪽 끝,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있는 시멘트 기둥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삼각점을 찾는 중인데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삼각점이 무언데요?" 하며 일어난다.


비로소 여인들 엉덩이 아래에서 해방된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잠시 섬진강을 굽어 본 후, 복잡한 정상을 내려선다.

정상표지판

삼각점

갈미봉 정상에서 본 섬진강


가파른 내리막을 달려 내린다. 맨땅에서는 흙먼지가 풀풀 인다. 12시 35분, 통정대부 영산신공의 합장묘를 지나고 울창한 송림을 거쳐 바위가 듬성듬성한 안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우회한 후, 가파른 암름길을 오른다. 바위 사이로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활짝 핀 산수유는 한껏 색감을 자랑한다.

송림안부

산수유


12시 51분, 전망바위에 오른다. 점심식사를 하는 등산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위 끝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북서방향으로 뾰족한 백운산(1218m)에서 매봉(865.3m)으로 흐르는 정맥 마루금이 선명한데, 정면으로는 갈미봉이 우뚝하고 그 뒤로 매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갈미봉 바로 오른쪽으로 천왕봉이 멀리 보이고, 동북 방향으로 섬진강과 건너편 의 분지봉, 구제봉들이 가깝다. 서쪽에 올돌한 억불봉(962m)은 산행 내내 정다운 길동무가 되어준다.

백운산(좌)에서 매봉으로 흐르는 정맥 마루금

갈미봉과 매봉

멀리 지리산 능선과 천왕봉

섬진강과 분지봉, 구제봉

억불봉


전망바위를 내려서서 암릉길을 걷는다. 바위 사이로 보이는 진달래 꽃망울이 붉다. 1시 6분, 바위봉을 넘고 급 내리막을 거쳐 안부에 이르니 등산로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모두들 어디서 식사를 하는 모양인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혼자서 편한 길을 유유히 걷는다. 1시 26분, 짧은 날등길을 지나고, 1시 29분, 바로 앞에 쫓비산이 바라보이는 공터에 이르니, 송 선배와 심산대원이 간식을 들며 쉬고 있다. 반갑게 합류한다.

진달래 꽃망울이 붉다.

암릉 날등길을 걷고

쫓비산이 보이는 공터


약 10분 정도 간식을 즐기고, 쫓비산으로 향한다. 1시 48분, 정상에 오른다. 정상석과 정상표지판들이 보이지만, 나무에 가려 조망은 별로다. 묘한 이름의 산이다. 한자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인 것 같은데, '왕비를 쫓았나? 노비를 쫓았나? 공비를 쫓았나?' 집에 돌아와 어원을 찾아보지만 용이치가 않다. 

쫓비산 정상

정상석


2시 2분, 청매실 농원 갈림길에 이른다. 등반대장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정맥꾼들은 오른쪽 토끼재, 꽃구경 나온 대원들은 왼쪽이다. 오른쪽 토끼재로 향한다. 토끼재에 이르는 능선길이 환상이다. 업 다운도 심하지 않은 편한 산책길이다. 빽빽한 참나무 숲길에는 낙엽이 수북하여 가을 속을 걷는 느낌이고, 유난히 푸른 울창한 송림 여기저기에 진달래와 산수유가 곱다.

청매실 농원 갈림길

소나무 숲 산책길

유난히 푸른 소나무

산수유


고도가 낮아지면서 활짝 핀 진달래들이 모습을 보인다. 기껏해야 200m정도의 고도차인데도 이렇게 다른 것이 무척 신기하다. 2시 34분, 느랭이골 휴양림 입구에 내려서서, 토끼재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회장님이 막걸리 잔을 들고 마중을 나온다.

활짝 핀 진달래

토끼재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따끈한 카레로 때 이른 식사를 한다. 토끼재로 하산하는 대원들이 속속 도착한다. 1/3 정도가 토끼재로 하산하고, 2/3는 청매실농원으로 꿏 구경을 간 모양이다. 버스가 이들을 맞으러 출발한다.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본다. 도로를 건너 불암산(431.3m)에서 토끼재로 흘러내리는 호남정맥 마루금을 뭉텅 잘라 대지로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포클레인이 트럭 한 대에 흙을 실어주면, 트럭이 이 흙을 어딘가 버리고 와서 다시 싣고 가는 작업이 한가하게 진행되고 있다.

호남정맥 마루금을 뭉텅 잘라 만드는 대지, 뒤에 보이는 산이 불암산


무슨 공사인데 정맥 마루금을 이처럼 처참하게 훼손하나? 도로 변에 세워진 공사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허가관청도 허가번호도 명시되지 않은 공사안내다.  

 

- 건축주 : 박혜숙 (전화 011-9606-3445)

- 대지위치 : 광양시 다암면 신원리 산 123-1외 2필지(124-5, 124-10)

- 대지면적 : 6795m²

- 주용도 ; 동, 식물 관련시설(버섯재배실)

- 건축면적: 953.6m²


요컨대 박혜숙이라는 건축주가 호남정맥 마루금을 훼손하여 확보한 약 2,000평의 대지 위에 버섯 재배실 등 동식물관련 시설 약 300평을 짓는 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하고 있는 작업은 건축 공사가 아니고 여전히 대지조성공사다. 안내판 옆에 세워 놓은 경고판이 무척 위압적이다.

공사안내와 경고문


도로와 면한 마지막 흙덩이를 뭉개버리면, 왼쪽으로 수어지가 내려다 보여 조망도 빼어나게 좋을 터이고, 게다가 느랭이골 휴양림의 진입로를 마주하는 입지이고 보니, 가히 요지 중의 요지라 할 수 있겠다. 이상하게 여긴 대원들이 대지를 구경하려다, 심한 소리를 하며 쫓아내려는 포크레인 기사와 시비가 붙는다. 결국 자신들의 작업을 방해했다는 명분으로 경찰에 연락을 하여, 백차가 동원되고, 버스 출발이 지연된다.

오른쪽 흙더미를 뭉개버리면 바로 도로다.

수어지, 도로에 면한 앞의 초지에도 출입금지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등산객들이 허가 없이 공사장에 들어갔다고, 포크레인 기사가 위아래도 없이 막말을 해가며 욕설을 퍼붓고, 백차까지 부르는 까닭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트럭 운전수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포크레인 기사는 단순한 작업자는 아니 모양이다. 떳떳치 못한 공사를 하느라고 과잉방어를 하는 건 아닌가?                                                                                                      

백차까지 불려오고


호남정맥을 하는 맥꾼들 만이라도 토끼재에 이처럼 훼손된 정맥 마루금이 향후 과연 동, 식물 관련시설로 사용되는지의 여부를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일이다. 
 

5시 13분, 경찰관이 차에 올라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인사를 한다. 귀경길은 하행길의 역순이다. 19번 도로가 심하게 정체되고, 전주를 통과하면서 러시아워에 걸린다. 서울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 넘는다.

 


 

(2008. 3. 24.)
















at 05/17/2011 07:11 am comment

흙으로 빚어져 흙이 되어 가는 인생..그래서 산이 좋을까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행복하세요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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