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논설위원 

 

지난 연말 국회 예산안 심의 때 누리 과정(3~5세 무상 보육) 예산으로 3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한 것을 보고 올해는 보육 대란이 없을 줄 알았다. 정부와 여야가 올해 지방교육비 세입·세출을 추계해 그 정도 지원하면 누리 과정 예산을 짜는 데 무리가 없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진보 교육감들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있었다. 서울·경기·광주·전남·전북 등 진보 교육감들은 "예산이 부족하다" "누리 과정은 대통령 공약이니 정부가 부담하라"며 어린이집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여·야·정 3자 합의를 교육감들이 뒤집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야당 시·도의원들이 한 술 더 떠 유치원 예산마저 몽땅 삭감한 것이 이번 누리 과정 대란의 시작이었다.

이번 누리 과정 대란을 계기로 점검해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교육감 직선제 유지 여부도 그중 하나다. 교육감 직선제는 2006년 말 도입해 이듬해 2월 부산시교육감 선거 때부터 적용한 제도다. 교육 문제에 주민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자는 좋은 취지였다. 교육은 정치 중립적일 필요가 있다며 교육감 후보 정당 공천도 배제했다.

그런데 막상 시행해보니 교육감 직선제 폐해(弊害)는 한둘이 아니었다. 선거 때 유권자들이 교육감 후보를 잘 몰라 '로또' 식으로 투표하는 문제, 교육감 후보 개인이 시도지사급 선거 비용을 조달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비리가 속출하는 문제 등은 일단 논외로 치자. 가장 큰 문제는 교육감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다 보니 정치인들보다 더 보수적이거나 급진적인, 양 극단에 있는 인물들이 당선되는 것 아닐까 싶다. 현재 교육감들 면면을 보면 주요 당에서 했으면 저런 경력과 성향의 인물을 공천했을까 싶은 이가 적지 않다. 주요 정당보다는 정의당이나 옛 통합진보당 공천을 받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 인물들이 있는 것이다. 정당 공천을 배제하니 양 진영 시민단체들이 후보 단일화에 개입하는 것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중도적이거나 합리적인 후보는 설 자리를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후보들이 치우치다 보니 선거 때 정치권보다 더 튀는 선심성 공약이 나오고 교육 문제가 더 이념화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누리 과정 예산 갈등도 직선제 교육감들이 자기들 선심성 공약에 쓸 예산이 부족하니 대통령이 공약한 누리 과정 예산은 부담할 수 없다고 우기는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예산이라는 것은 충분한 경우가 없어서 항상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문제다. '누리 과정 예산은 교육청의 의무 지출 경비'라고 못 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도 엄연한 법령인데, 어린이집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는 횡포를 부리는 것은 기존 정치권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주요 야당 사람들보다 더 급진적인 교육감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민주화 투쟁할 때처럼 정부와 싸우는 것이 이번 누리 과정 대란이라고 할 수 있 다.

지금과 같은 교육감 선거제도하에서는 누리 과정 예산 갈등과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단기적인 유불리를 떠나 교육감 직선제가 진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직선제 폐지가 정 어렵다면 정당 공천제를 도입하거나 시도지사와 러닝 메이트제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교육감 직선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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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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