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나라 중국은 모택동이 주도한 무산자의 혁명을 겪었지만 아직은 여성이 주석(主席)의 자리에 오른 일은 없었습니다. 동양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이미 150년 전에 선진화의 길을 선택한 일본도 아직 여성 수상을 세워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서양인의 눈에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더 중국적(유교적)이다”(Koreans are more Chinese than Chinese themselves)라는 평을 받을 만큼 매우 보수적으로 비치던 한국에서 맨 먼저 여성을 대통령으로 세운 사실은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과 금년은 재난으로 이어졌는데, 세계인의 눈에는 ‘기적의 여왕’으로 비치는 박근혜 대통령이 속수무책이어서 안쓰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이나 ‘메르스’의 창궐 같은 소규모의 재난(災難)을 국난(國難)으로 키우고, 세계 앞에 한국을 부끄러운 나라로 만든 책임이 박 대통령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며칠 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던진 추상같은 질책은 이 나라 정치의 활력소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내심으로 “여자가 무슨”하는 따위의 어쭙지않은 생각에 젖었던 못난 사내들에게 일격을 가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해 박근혜는 비장한 각오로 과거에 별로 들어내지 않던 ‘철권(鐵拳)’을 한번 휘둘렀습니다. 그는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잠자는 영혼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가 “배신자들아”라고 큰소리로 외치니까 언론은 세 ‘배신자’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1위는 유승민, 2위는 전여옥, 3위는 전두환입니다.

그것은 박근혜를 몰라서하는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배신’의 뜻은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배신이 아닙니다. 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뜨거운 애국심이 없음을 질타하는 것이지, ‘복수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그런 배신’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대통령 박근혜는 ‘소인(小人)’이 아니라 ‘대인(大人)’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국민을 배신하면 죽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나를 배신하면 죽인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 화합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