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윤(全仲潤 1919~2014) 회장
지난 9월 15일은 아주 소중한 날입니다. 한국사람 모두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적어도 1963년 이후 부터는 그렇습니다. 국경일이냐고요?
당연히 아닙니다. 6.25 전쟁에서 북한에 밀리던 한국군과 UN군이 극적인 북진 기회를 잡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자 한국 라면이 첫 선을 보인 날입니다.
라면!
한국사람 누구나 먹어봤고, 저마다 추억이 있을 라면은, 정확하게 ‘인스턴트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온 요즘 젊은 세대는 꿀꿀이 죽을 모릅니다. 귀동냥으로 여러 가지 남은 음식을 죽처럼 끓여낸, 빈곤 시대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전 사장은 고민을 했답니다.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 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 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아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 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국내 최초 삼양라면(펌)
당시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어렵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줬던‘제2의 쌀’ 이던 라면은 이젠 ‘인스턴트식품’이란 이름으로 구박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6.25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던 인천상륙 작전과 국민들의 배를 채워준 라면이 선보인 9월 15일은 풍요로운 날,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서 라면을 간식거리나 맛으로 먹지만, 나이든 세대는 라면의 고마움을 알고 있을겁니다. 오늘도 고마움을 잊지않는 수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카카오 톡으로 받은 글
(2017.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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