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4일(토).
아름다운 오월에 금남호남정맥의 두 번째 구간을 산행한다.
『밀목재(760m)-사두산(1,014.8m)-바구니봉재(700m)-당재(650m)-수분치(539m)-신무산(896.8m)-차고개(670m)』가 오늘의 산행코스다. 도상거리 약 11.4Km, 실제거리 약 14Km로, 산악회 기준 소요시간은 약 5시간 30분이다.

<산행지도>

실제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시 5분, 밀목재 도착- 11시 38분, 880m봉 정상- 11시 50분, 960m봉- 12시 7분, 사두산 정상- 12시 12분, 봉수대- 12시 20분, 중식- 12시 40분, 중식 후 출발- 13시 10분, 송계재-13시 37분, 당재- 13시 58분, 수분재- 14시 12분, 수분재 출발- 14시 46분, 뜬봉샘- 15시 40분, 차고개』 총 산행시간 4시간 35분, 마루금 4시간 15분, 중식 20분.

 

아름다운 5월의 토요일. 날씨도 비교적 좋은 편인데도 얼추 파악한 산행인원이 25명 정도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라 산행을 주관하는 산악회에 미안한 마음이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도로변을 스쳐 가는 산들이 온통 푸르다. 하얀 꽃을 가득히 달고 있는 화사한 꽃나무들이 고속도로변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무슨 나무인지 나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논에는 물이 가득 가득하다. 아마도 벌써 모내기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차창 풍광을 망연히 바라보며, 졸다 깨다를 반복한다.

 

비룡 분기점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 버스는 9시 20분 경 인삼랜드 휴게소에 도착, 30분간 정차한 후. 10시 30분 경 장수 인터체인지에서 내려서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향한다. 버스가 13번 국도 분기점을 지나 달리자, 대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기사 양반에게 길을 지나쳐 왔다고 알려준다. 버스는 오던 길을 되돌아, 겨우 742번 지방도로를 찾아, 11시 5분 경 밀목재에 도착한다.

 

산행 들머리에서 대원들이 갈린다. 일부는 마을로 통하는 길을 거쳐, 마루금으로 향하고, 대부분의 대원들은 지난번 밀목재로 하산했던 능선과 연결되는 부위에서, 도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을 타고 넘어,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른다. 우리 일행도 절개지를 타고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송림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등산로가 희미하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울창한 송림 속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절개지를 타고 오르는 대원들-대원 사진>

하지만 이런 기분도 잠깐, 선두 그룹이 왼쪽으로 크게 꺾어지는 희미해진 대간 길을 놓친 모양이다. 오른 쪽으로 길 없는 사면을, 잡목에 긁히며, 내려서니 냇물이 흐른다. 산을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대간 원칙에 위배된다고 대원들이 낄낄댄다. 풀 냄새가 진동한다. 왼쪽으로 길 없는 사면을 타고 올라, 겨우 마을길과 연결된 능선에 올라선다. 11시 23분, 산행 표지리본이 요란하게 걸려있는, 철쭉이 아름다운 대간길로 접어든다.

<신록의 대간길-철쭉으로 수를 놓고...>

마을을 통과하는 길과 절개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취향일 것이다. 원칙주의자는 절개지를 통해, 한 뼘의 마루금도 놓치지 말고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겠고, 도로변의 시멘트 옹벽을 타고 넘어, 절개지를 오르기보다는 마을길을 통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차대의 고래 님은 마을길을 통과했다고 산행기에 기록하고 있다.

 

아름다운 신록의 숲길이 이어진다. 곳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철쭉이 숲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길은 가팔라지고 이윽고 페어그라이딩장으로 변한 880m봉에 오른다. 조망이 좋다. 북서쪽으로 장수읍이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 팔공산이 우뚝 솟아 있다. 동쪽으로는 지난번 올랐던 960m봉 능선이 아름답게 흘러내리고, 그 발끝에 수몰민 이주마을이 보인다.

<880m봉- 페어그라이딩장으로 변했다.>

<장수읍>

<지난번 산행시 내려왔던 960m봉과 들머리가 통과하는 마을>

페어그라이딩장에서 등산로는 남으로 꺾여 내려서더니, 다시 아름다운 참나무 숲, 산책길로 이어진다. 온통 주위는 연녹색으로 가득하고, 발 밑에는 부엽토가 두텁게 쌓여, 마치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푹신하다. 이렇게 좋은 산행을 놓치다니, 함께 못 온 3차대원들의 면면이 아쉽게 떠오른다.

 

960m봉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난다. 밀목재(760m)와 사두산(1,014.8m)간의 고도차이가 약 250m 정도나 되지만, 그 사이에 880m봉, 960m이 순차적으로 고도 차를 좁혀주어 힘든 줄 모르는 산책길이 계속된다. 12시 7분 경 사두산(蛇頭山)정상에 선다. 좁은 공간에 삼각점과, 정상 표지물(밀목재 2.8K, 원수분 5.0K)이 세워져 있고, 무덤 1기가 덩그러니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1000m급의 높이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나무들이 조망을 방해한다.

<사두산 정상표지>

키를 넘는 산죽밭을 헤치고, 사두산을 내려선다. 이 키넘이 산죽밭이 끝나는 길가에 돌탑 한 개가 우뚝 서있다. 앞에는 사두봉 봉수대라는 나무목이 세워져있다. 봉수대 탐색팀이 옛날 봉수대 자리임을 알리기 위하여 세운 돌탑인 모양이다.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봉수대 돌탑>

12시 20분 경 등산로를 벗어나, 3차 대원들이 함께 모여, 낙엽 위에서 점심을 먹는다. 조총 님이 지고 온 막걸리에는 아직도 어름이 버걱거린다. 시원하다. 산행시간이 비교적 짧아서인지, 점심 도시락들이 김밥과 샌드위치 등으로 단촐한 편이다. 20분 후 점심을 마친 일행은 다시 비탈길을 내려선다.

 

1시 경 넓은 공터의 묘를 지나며, 참나무 내리막 숲길이 계속된다. 등산로는 키 작은 산죽 밭을 뚫고 이어지더니, 이 번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백두대간 길과는 달리. 이번 정맥길은 등산로가 부드럽고 순하다. 그리고 아주 아주 예쁘다. 싱그러운 5월의 숲을 한껏 즐기며 송계재 삼거리를 지난다.

<무덤을지나고...>

<송림을 걸어...

<송계재 삼거리에 도착한다>

완만한 오르, 내리막 길이 계속된다. 철쭉이 무리를 지어 우리들을 반긴다. 산행리본들이 곳곳에 걸려 있어 길을 잃을 위험도 없다. 벌목을 한 후의 잔가지들이 등산로에 어지럽게 버려져 있다. 오른 쪽으로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차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임도로 내려선다. 당재에 도착한 거다.

<당재 도착-왼쪽으로 사두산 일부가 보인다.>

임도를 건너 가파른 길을 오른다. 능선으로 들어서기 전에 나무에 가려, 잡지 못했던 사두산의 모습을 비로소 카메라에 담는다. 황토 빛 임도가 산굽이를 따라 돌고, 시멘트 전봇대가 임도를 따라 열병하듯 서 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등산로는 대간 능선으로 이어져 한번 솟구쳐 오르는 듯 싶더니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저 아래 마을이 평화롭다. 이윽고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는 19번 국도로 이어진다. 수분재(539m)다.

<수분재로 내려서면서 본 물뿌랭이 마을>

<수분재>

수분재에는 금강 발원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돌 표지, 금강 사랑본부에서 세운 수분마을 안내도 등이 서 있고, 뜬봉 기사식당, 주유소, 휴게소 등이 자리잡고 있어 제법 번창해 보인다. 우리 일행은 휴게소 앞 파라솔 아래에 앉아,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며 쉰다.

<금강 발원지를 알리는 돌 표지>

<수분령 돌 표지-대원 사진>

2시 12분 일행은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을 향하여 출발한다. 지도를 보면 뜬봉샘은 마루금을 오른쪽으로 벗어나 신무산(896.8m)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 일행은 모처럼의 금강 발원지를 구경하기 위해, 마루금 일부의 걷기를 포기하고, 금강의 첫 동네라는 "물뿌랭이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선다.

 

마을 입구 정자에서 초등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마도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아이들에게는 방문객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은 모양이다. 귀엽다고 생각했는지 우정 님이 사탕이랑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길가에는 뜬봉샘 까지 1.2Km라는 이정표와 이 마을 이름 "물뿌랭이"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뿌랭이"는 "뿌리"의 지방 사투리라고 한다. 물뿌랭이 마을에서 지나온 사두산 모습이 정면으로 보인다.

<뜬봉샘 이정표>

<물뿌랭이 마을에서 본 사두산>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른다. 1.2Km... 생각보다 먼 거리다. 동네 개들이 컹컹 짖으며 반긴다. 이윽고 시멘트 길이 끝나고,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임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뜬봉샘 입구에 도착한다. 장승 두개가 뜬봉샘으로 오르는 통나무 계단길을 지키고 서있다.

<뜬봉샘 입구의 장승>


뜬봉샘은 제법 너른 샘터다. 샘 주위를 돌로 쌓아 샘을 보호하고 있다. 샘에 고여 있는 물이 풍족해 보인다. 마치 우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시작된 물이 도도한 금강을 이루며, 서해바다 하구(河口)까지 장장 397.25Km를 흐른다니 신기롭기만 하다.

<뜬봉샘 1>

<뜬봉샘 2>

<뜬봉샘 안내판>

 

샘 주위에는 뜬봉샘 돌비석과 뜬봉샘 안내판이 서 있다. 왜 뜬봉샘 인지 아시는지? 혹시 그 이름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겠는지요? 안내판은 이 샘이 이성계의 개국설화와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신무산(神舞山) 산 중턱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던 이성계는 100일 째되는 날 새벽, 봉황이 너울너울 떠가는 속에서 "새 나라를 열어라" 라는 소리를 꿈속에서 듣는다. 꿈에서 깨어난 이성계는 봉황이 날은 곳을 찾아 나서고, 이 샘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 이 샘의 이름은 뜬봉샘이 된다.

 

"물뿌랭이", "뜬봉샘" 과 사두산(蛇頭山), 신무산(神舞山) - 같은 지역에 이처럼 대조적인 이름들이 공존하는 것이 재미있다. 민초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지어진 이름들이 자연스럽고 정겨운 반면,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들의 작명은 왠지 거창하기만 하다.

 

뜬봉샘에서는 길이 두 갈래로 나 있다. 하나는 북쪽 사면을 타고, 대축목장 울타리 문을 지나, 목장 안쪽 임도로 이어진 길, 다른 하나는 뜬봉샘 남서쪽으로 이어진 길을 택해, 대축목장 울타리를 오른 쪽에 끼고 산 사면을 타고 올라, 정맥능선에 이르는 길이다. 아마도 이 능선길은 틀림없이 신무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첫 번째 길을 택해, 임도를 따라 오르다 ,다시 개구멍을 통해, 목장 울타리를 넘어 정맥능선에 이르지만, 이 때는 이미 신무산은 지나쳐 버리고 만 후이다.

 

목장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선다. 송림이 이어지면서 등산로는 내래 막을 치닫는다. 안부에서 길이 남북으로 갈리고 양쪽에 산행 리본이 걸려있다. 하지만 왼쪽으로 걸린 리본 수가 훨씬 많다. 방향이냐? 리본 수냐? 우리들은 남쪽 길을 택한다. 반대 방향으로의 진행이라, 영 기분이 찜찜한 터에 등산로가 방향을 바꾸어, 서북쪽으로 제대로 흐른다고 앞에서 전해 온다.

<목장 임도에서 본 장수 팔공산>

한참을 달리다보니, 저 아래로 도로가 보이고, 길가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급경사면을 따라 내린다. 이 곳은 맨땅의 흙 길이라 먼지가 풀풀 인다. 3시 40분 경 13번 국도가 관통하는 차고개에 내려선다. 버스로 가보니, 아무도 먼저 내려온 사람이 없다. 아마도 신무산을 거치지 않아, 우리들이 다른 대원들보다 빨랐던 모양이다.

<차고개>

땀에 젖은 상의를 바꿔 입고, 물을 마시며, 길가 그늘에서 여유 있게 쉰다. 차고개는 수분재와는 달리 상점도 휴게소도 없다. 대성고원(大成高原)이란 돌비석이 서 있고, 작은 규모지만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있을 뿐이다. 한참을 쉬고 있으려니 선두를 달리던 팀이 도착한다. 어디선가에서 알바를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신무산은 넘지 못했지만, 산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차고개를 따라 남서쪽으로 내려선다. 우리가 먼지를 풀풀 내며 달려 내려온 봉우리 뒤로 신무산의 일부가 보인다. 아쉬운 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후미 팀이 도착하고 4시 30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버스에서 뒤돌아본 신무산>

마루금 일부를 생략하고, 신무산도 오르지 못했지만, 금강 발원지 뜬봉샘을 구경한 것을 후회하는 대원은 하나도 없다. 백두대간길과는 달리, 순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예쁜 정맥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5월의 신록을 만끽한 대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싱싱해 보인다.

 

 

 

(2005. 5. 1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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