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북봉과 황석산 정상


백두대간에 속하는 남덕유산(1,507m)에서 월봉산(1,279m), 금원산(1,353m), 기백산(1,331m)을 지나 관술령을 넘고, 황매산(1,108m), 성현산(485m), 광제봉(347m)을 거쳐 동남방향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다 진양호로 빠지는 새로운 산줄기가 분기된다. 길이가 156.6Km에 달하는 이른바 "진양기맥"이 그것이다.

남덕유산 정상 - 옛 사진


거망산(1,185m), 황석산(1,109m)은 이 진양기맥에 속하는 "월봉산(1279m)"에서 남서쪽으로 새롭게 분기된 산줄기에 우뚝 솟은 산으로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위치한다. 황석산과 기백산 사이의 용추계곡이 유명하다.

월봉산 정상 - 옛 사진

거망산, 황석산, 금원산, 기백산 - 옛 사진


산림청은 거망산에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광활한 억새밭 등 경관이 아름답고 황석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황석산을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선정한다.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에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사람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이 핏빛이라는 전설이 있다.


2008년 11월 29일(토)
낙동정맥 종주가 끝나자, 첫째 셋째 토요일의 산행이 비게 되고, 이때를 이용하여 정맥구간 중 빠뜨린 곳을 보충하거나 명산을 찾기로 한다. 마침 산정산악회에서 100대 명산 탐방 시리즈로 황석산을 안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신청한다. 오늘코스는『유동마을-연촌-황석산-거북바위-뫼재-삼거리-거망산-지장골-용추교』로 도상거리는 약 14Km이다.


백두대간 종주 3차대에 끼어 1년이 넘게 매주 안내를 받은 터라 산정산악회는 각별히 인연이 깊은 곳이지만, 그동안 9정맥과 지맥산행을 쫓아다니다 보니 마음과는 달리 자주 찾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모처럼 참여한다. 마치 옛 고향집에라도 온 듯 편안한 느낌인데, 뜻밖에 3차대의 함상철 대원까지 만나게 되니 더 더욱 반갑다.


버스는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발을 헤치고 경유지를 지나며 대원들을 태우고, 진행을 맡아보는 박경희 대장은 예약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여부를 확인한다. 좌석 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해와 혹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른 곳에서는 불황이라고 아우성인데 좌석보다 많은 예약자들이 몰린다니 참으로 반갑다. 결국 정원보다 3명을 더 태운 버스가 산행지를 향해 달린다.


서울, 경기일원에 다소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와는 달리 대전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서도 빗발이 오락가락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산행들머리인 연촌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는 비는 그치고, 이후 때때로 햇빛도 비쳐, 날씨 걱정을 잊는다. 하지만 주능선에 가까운 지능선에 이르러 하얗게 쌓인 눈을 보고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주능선에 오르자, 간밤부터 내린 눈인지, 10 센치정도의 눈이 쌓여있고, 설상가상으로 거센 바람과 함께 싸락눈이 오락가락한다. 눈 덮인 암릉길을 걸어 황석산성에 이르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코앞의 황석산 정상 오르기를 포기하고, 위험한 우회로를 거쳐, 거망산을 1.8Km 앞둔, 삼거리에서 불당골로 탈출하여 장자벌에서 산행을 마감한다.


비록 황석산, 거망산은 오르지 못한 미완성의 산행이지만, 높은 산에서의 날씨변화가 초래하는 위험을 직접 체험하고, 이런 뜻밖의 위기 속에서도, 등반대장의 지휘 하에 모든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모두 안전하게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 하겠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18) 들머리 도착-(11:19)산행시작-(11:26)이정표<정상 4.2K>-(11:29) 임도-(11:33) 우측 산길-(11:38) 이정표<식수 준비하는 곳)-(11:52) 이정표< 정상 3.0K>-(12:08) T자, 우-(12:58) 주능선/이정표<정상 1.9K>-(12:37) 황석사 갈림길 이정표<정상 1.5K>-(12:57) 망월대-(13:09) 이정표<정상 0.6K>-(13:23~13:42) 황석산성/중식-(13:51) 갈림길<정상 50m>-(14:08) 성터길-(14:19~14:20) 거북바위-(14:21) 산내골 갈림길/이정표<거망산 4.3Km>-(14:51) 뫼재-(14:39) 1154m봉-(15:24~15:30) 장자벌 갈림길/이정표<거망산 1.8K>-(16:08) 갈림길, 우-(16:32) 청량사-(16:42) 장자벌』 중식 약 15분포함, 총 5시간 23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버스는 서상 IC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26번 국도로 내려서서 안의로 향하다가, 당본리에 이르러 왼쪽 용추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로 바꾸어 타고, 11시 18분, 산행들머리 연촌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서둘러 산행준비를 하고 11시 19분, 연촌마을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 들머리 도착

산행시작


마을길인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도로가 젖은 것을 보면, 얼마 전까지도 비가 내린 듯하지만, 지금은 빗방울이 멎었다. 11시 26분, 황석산 정상 4.2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이어 뒤돌아 흰 눈이 덮인 기백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눈 덮인 기백산


마을을 통과한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홍시가 무척 아름답다. 11시 29분, 시멘트도로에서 왼쪽 임도로 들어서고, 4분 후에는,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능선으로 진입하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연촌마을을 통과하며 본 감나무

왼쪽 임도로

오른쪽 능선으로


낙엽이 쌓인 돌 많은 계곡 길을 따라 오른다. 황석산 정상 3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11시 52분, T자 능선에 올라, 왼쪽 급경사 오르막길을 오른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하나 넘는다. 순간, 갑자기 산의 모습이 바뀐다. 누런 단풍대신, 하얀 눈이 온산을 덮고 있다.

돌 많은 계곡 길

T자 능선, 좌

눈 덮인 안부를 지나는 대원들


11시 29분, 주능선에 진입한다. 눈이 제법 많이 쌓였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갑자기 우박처럼 싸라기눈이 쏟아진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1.9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귀가 시리고, 뺨이 얼얼할 정도로 춥다. 서둘러 방풍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쓴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눈 덮인 망월대와 황석산이 보인다.

주능선의 이정표

가야할 능선


12시 37분, 정상 1.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눈발은 그쳤다 이어지를 반복한다. 설산산행을 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해, 아이젠도, 스패츠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걱정이 된다. 쌓인 눈이 깊지 않아 스패츠는 그렇다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아이젠이 없는 것은 큰 타격이다. 거센 바람과 예기치 못한 눈 때문에 아무래도 산행을 제대로 마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이 제법 쌓인 망월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망월대 오르는 길, 눈이 제법 쌓였다.


12시 57분, 망월대에 오른다. 동쪽으로 기백산을 비롯한 진양기맥 산줄기가 건너다보인다. 눈 덮인 암릉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가야할 황석산을 카메라에 담고, 지나온 망월대를 뒤돌아본다. 1시 1분, 암릉 길을 지나 봉우리 위에 서니, 바로 눈앞에 황석산이 우뚝하다.

눈 덮인 기백산과 진양지맥

암릉 길 뒤로 보이는 황석산

뒤돌아 본 망월대

눈앞에 우뚝 솟은 황석산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서서 황석산으로 향한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눈가루가 분분이 날린다. 3시 9분, 정상 0.6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안부에 내려서서 바위덩어리인 황석산 정상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들이 거센 바람에 몸부림을 친다.

갈림길 이정표

올려다 본 황석산 정상


1시 23분, 맞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황석산성를 통과한다.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산성을 따라 남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황석산이 가깝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거리가 100m라고 알려준다. 산행을 시작하고 약 2시간 만에 산성에 도착했으니, 눈보라 속의 진행을 감안한다면, 결코 늦은 진행은 아니다. 대원들이 세찬 바람을 맞으며 모여 있다. 등반대장은 바람이 너무 심해 위험하다며, 대원들의 황석산 등정을 금지 시키고, 북봉을 우회하는 위험한 사면 길을 통과해야 할지, 아니면 왔던 길을 되돌아 탈출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있다.

황석산성

이정표

남봉

황석산 정상

산성에 모인 대원들


이윽고 등반대장은 대원들에게 바람을 피해, 산성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기다리라고 당부하고, 어디론가 사리진다. 함상철 대원과 함께 성벽을 등지고 앉아, 어한주(禦寒酒)를 두어 잔 나누어 마시고, 점심식사를 한다. 바람이 한줄기 세차게 불어치면, 벗어놓은 배낭과 도시락에 금방 하얗게 눈가루가 날려 쌓인다. 마치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정하다 조난을 당한 기분이다.

점심식사를 하며 바라 본 지나온 능선


이윽고 등반대장이 다시 모습을 나타내더니, 북봉 우회로를 통과하여, 거망산으로 향하다, 상황을 보아, 적당한 곳에서 탈출을 하자고 한다. 아마도 북봉 우회로 상태를 실제로 답사하고, 통과할 만 하나고 판단을 한 모양이다. 1시 51분, 이정표가 있는 황석산 정상과 우회로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50m라고 알려준다. 정상으로 이어 지니는 급경사 슬랩에는 굵은 로프가 늘어져 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도 덮여있지 않다. 50여 미터를 남기고 정상을 포기하기가 아쉬워, 함상철 대원과 로프를 잡고 슬랩을 오른다. 절반 쯤 올랐을 때 아래에서 등반대장이 바람이 심해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소리친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행동은 금물이다. 아쉽지만, 되돌아 내려와 우회로로 접어든다.

황악산 정상 오르는 길

갈림길 이정표


우회로는 경사가 급한 사면길이다. 눈이 없어도 조심스러운 길인데, 눈까지 덮여있으니 무척 미끄럽다. 발 딛을 곳을 확실히 하고, 나뭇가지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사면길이 바위를 건널 때는 등반대장이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잡을 곳, 발 놓을 곳을 일일이 지시하며 한사람씩 건너게 한다. 여자대원들이 힘들어 하면서도 용감하게 건너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어 직벽을 로프에 매달려 내려서는 등 위험구간을 지나 북봉을 우회하고, 2시 8분, 성벽 위에 서서, 북봉을 돌아본다. 저곳에 아직도 핏자국이 있다니, 실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우회한 북봉


2시 19분, 조망안내판이 있는 거북바위에 오른다. 북봉, 황석산 정상, 그 뒤로 비쭉비쭉 암봉이 솟아있는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황석산성에서 황석산에 올랐다 우회로를 지나 거북바위에 이르는 데는 30분이 채 안 걸리지만, 오늘은 짧은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약 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거북바위

거북바위에서 본 북봉, 황석산 정상, 그리고 지나 온 능선


2시 21분, 이정표가 있는 산내골 갈림길을 지나고 1165m봉으로 오르다, 왼쪽으로 멀리 거망산을 바라본다. 1165m봉을 넘고, 위험하지는 않지만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평탄한 잡목 숲 사이로 아름다운 눈길이 이어진다. 속도를 내어 빠르게 달린다.

1165m봉을 오르며 본 거망산

아름다운 눈길


2시 45분, 이정표가 있는 뫼재에 이르러 뒤돌아 억세 너머로 북봉과 황석산 정상을 돌아보고, 억새 사이로 이어지는 눈길을 달린다. 3시 11분, 1,154m봉에 올라 거망산을 가까이 보고, 눈 덮인 암릉길을 지나, 3시 24분, 이정표가 있는 장자벌 갈림길에 이른다. 등반대장이 기다리다, 거망산 가는 길을 막고, 장자벌로 하산을 하라고 지시한다. 이제 산악회에서 지정한 하산시간 4시 30분까지는 약 1시간이 남았는데, 또 하나의 미끄러운 암봉을 지나, 이곳에서 1.8Km 떨어진 거망산까지 다녀오기는 애저녁에 그른 일이다.

뫼재

억새지대

가까이 본 거망산

장자벌 갈림길


거망산 가는 길을 한번 바라보고, 지는 해를 받고 있는 기백산을 바라본 후, 3시 30분, 눈 덮인 산죽 밭 사이로 급하게 떨어지는 미끄러운 길을 달려내려 탈출을 시도한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나무뿌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져 큰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신경을 쓰고 진행하여야 할 미끄러운 능선길이 길게 이어진다.

지는 햇빛을 받고 있는 기백산

눈 덮인 산죽 밭을 지나고


4시 8분, 갈림길에 이르러 표지기들의 안내로,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 골짜기로 내려선다. 눈 녹은 물에 젖은 낙엽이깊게 깔린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이윽고 임도로 내려서고, 4시 32분, 청량사를 지나며, 대웅전을 카메라에 담는다. 저 아래 도로변에 서 있는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뒤돌아 본 갈림길

청량사 대웅전


4시 37분, 장자벌 300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5분 후, 등산 안내판이 있는 장자벌에 내려선다. 건너편 식당에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 놀고 기다리던 박 대장이 반갑게 뛰어 나온다.

이정표

등산안내도


식당 수돗가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박 대장이 미리 부탁을 해서 따끈하게 덥혀 놓은 방으로 들어가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도 괜찮다. 산정산악회에서는 회비를 27,000원 받는 대신 식대와 술값은 각자가 부담하게 한다. 식사를 않겠다는 사람도 있어, 박 대장이 미리 식사를 예약하는데 애로가 많다고 한다.


따끈한 방에서 추웠던 몸이 녹으니, 콧물이 주책없이 흐르고 재채기가 잇따른다. 예기치 않았던 날씨 탓에 미완성으로 그쳤지만, 올겨울 첫 설산산행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한 황석산의 웅장함을 맛보았으니, 내년 초가을에는 꼭 황석산 정상에 올라, 북으로 덕유산, 동으로 진양지맥 산줄기, 남쪽으로 지리산, 남서쪽으로 백운산과 계관산을 바라보고, 필히 거망산을 올라 봐야겠다.


이윽고 모든 대원이 도착하여 식사를 마치자 버스는 6시가 조금 못되어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8. 11. 30.)





















at 08/10/2010 03:13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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