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반도와 터키 영토(펌)                                              * 모든 사진 크릭하면 커짐

 

터키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소아시아반도)는 북으로는 흑해, 서쪽으로는 에게해, 그리고 남으로 지중해에 면해 있는 땅으로, 옛날부터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동서교역의 요충지다. 이런 연유로 이 땅은 주변 강대국들이 패권을 겨루는 곳이기도 하다.

실크로드(펌)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 전 334년 동방원정에 나서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격파하고, 이 땅을 차지한 후, 그리스와 아시아의 문화를 융합시킨 독특한 헬레니즘문화를 꽃 피운다.

알렉산더 제국

 

이어 BC 2세기부터 동부와 지중해 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로마는 BC 130년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어 330년 수도를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으로 옮겨,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한다.

로마시대

 

395년 테오도시우스황제는 로마를 동서로 나누어 두 아들에게 물려준다. 서로마는 476년 북방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지만, 동로마는 비잔틴 제국으로 1,000여년간 지속된다.

7세기 초의 서 아시아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살던 유목기마민족인 투르크족이 셀죽트르크를 선두로 1071년 비잔틴제국을 물리치고 아나톨리아에 진입하고, 1240년 오스만투르크가 서부 아나톨리아에 정착한다. 이어 1299년에 설립된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며, 이지역의 명실상부한 패자가 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동맹을 맺고 참전하여, 패전한 후에는 여러 연합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오스만 터키의 영토변화

 

이상이 복잡다단한 아나톨리아반도 역사의 요약이다. 페르시아-그리스-로마-투르크 등 동서양이 교대로 이 땅을 지배하면서, 동서 문화가 한 자리에서 서로 충돌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거대한 문화유산의 전시장으로 변한 땅. 세계사를 배우면서 아직도 귀에 익은 마라톤 전투, 사라미스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 안토니우스와 크레오파트라의 사랑, 악티움해전, 에게해, 트로이 전쟁, 보스포러스 해협, 다다넬스 해협 등의 단어들이 기억에 새로운 곳이지만 좀처럼 가 볼 기뢰가 없었다.

 

지난 812일 출발하는 운남성 북부와 사천성 서북부, 22일 트레킹에 참가를 신청했더니, 나이가 많다고 퇴자를 맞는다.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주최 측 입장에서 보면 거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체념을 하지만, 한 차례 길 떠날 생각에 붕 떠 있던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하여 여행사들의 자유여행, 패키지여행 상품들을 검색하다, 노랑풍선의 터키일주 9일 여행패키지를 발견한다.

 

인천-이스탄불(1)-샤프란불루-앙카라(1)-으흘라라-갑바도키아(1)-콘야-안탈라(1)-파묵깔레(1)-쉬린제마을-에베소-아이발릭(1)-트로이이스탄불-(1)-이스탄불-인천 의 일정으로 터키 서부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거의 커버한다.

 

항공기는 국적기인 아시아나인데 여행비용은 *1,371,400(유류할증료 포함) + 90유로(기사, 가이드 팁)이다. 카파토키아 열기구(170유로) 안탈랴 통통배(50유로), 이스탄불 야간투어(50유로) 등 선택 관광에 모두 참여해도 200만원 미만이다. (*위 가격은 한달전에 예약했을 때의 가격이고, 출발 2일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1,771,400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그리고 터키항공이 주 10회 이상 인천과 이스탄불을 넌 스톱으로 오가는 외에도, 세계 유수한 항공사의 항공기들이 한두 군데 다른 도시를 거쳐, 이스탄불과 인천 사이를 날기 때문에 운임경쟁이 몹시 심한 모양이다.

 

중국 동 티베트 트레킹 참여에 퇴자를 맞고 마음 둘 곳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집사람은 터키여행이 장거리 버스이동으로 무척 힘들고, 추석도 가까우니 자기는 집에 있겠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여행사에 룸메이트 배정을 부탁하고, 8월초에 혼자 예약을 한다.

 

2014828()

둘째 녀석 재현이가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까지 태워다 준 덕에 624분발 김포공항역행 급행에 오른다.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 안은 붐비지 않고 쾌적해서 좋다. 서울의 지하철은 세계 어느 곳의 지하철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훌륭하다.

 

열차는 30분 후에 김포공항역에 도착하고, 건너편에서 바로 인천공항 행 공항철도로 갈아탄 후, 735분경에 인천국제공항역에 도착한다. 경로우대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 먼 곳을 이처럼 빠르게 올 수 있다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72%가 나라의 앞날을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체크인 카운터 앞은 차례를 기다리는 인파로 붐빈다. 노랑풍선 안내 데스크에서 인솔자 김승주 양에게서 E-ticket을 받고, 이번 여행의 참여자가 몇 명이냐고 묻는다. 대답은 39명이라고 한다. 순간 이여행이 무척 복잡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파로 붐비는 아시아나항공 체크 인 카운터

 

자동 발권기에서 탑승권을 발급 받는다. 운 좋게도 좌석이 23J. 탑승권을 받고, 짐을 싣는데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 전에는 가기가 쉽지 않았던 터키에 국적 직항기가 뜨고, 여행비용도 비싸지 않은 편이라, 요즈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터키를 찾는 모양이다.

 

비행기에 탑승한다. 옆자리 창가 좌석에 외국인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다. 터키사람인줄 알고, 터키의 아침 인사말인 규나이든(Gṻnaydin)의 억양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자기는 터키사람이 아니고, 독일인이라며, 한국관광을 마치고, 터키를 둘러본 후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승객들의 탑승이 모두 끝나고 비행기 문이 닫혔는데도 내 옆 왼쪽 두 자리가 비어있다. 독일인에게 비즈니스 석에서 편히 가라며 자리를 옮기자, 이 친구 말귀를 알아듣고, 당케 쉔을 연발한다.

 

비행기는 1030분경 이륙한다. 이스탄불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12시간. 한국과 터키의 시간차는 6시간이다.(정상시차는 7시간이나, 현재 터키가 서머타임 실시 중이라 6시간이라고 한다) 도착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410분이라고 한다.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것은 고역이다. 5시간 정도면 참을 수 있겠는데, 12시간은 너무 길다. 비행기가 제 고도에 진입하여 순항을 계속하자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국적기의 기내 서비스는 일품이 아닌가? 착륙 2시간 전 쯤에 점심식사가 제공되고, 아침과 점심 사이에 피자 한 조각을 또 준다.

 

터키 가이드북을 뒤적거리고, 영화도 한편 보고, 음악을 듣는다. 각종 음악들이 제공되는데 유독 내가 좋아하는 우리 가곡만 빠져 섭섭하다.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왜 가곡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리가 없다며 목록에서 가요를 가리킨다. 젊은이들이 가곡과 가요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가곡이 알려지지 않아 빼 버린 모양이다. 다시 살려 놓으라고 아가씨에게 부탁을 했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음악을 듣다 깜박 잠이 든다. 깨어보니 그 사이에 시간에 제법 많이 흘렀다. 일어나서 복도의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걷는다. A섹션에는 빈자리가 눈에 뜨이지만, B섹션과 C섹션에는 빈자리가 없다. 아마도 단체로 체크인을 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나자 착륙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러고 보니 12시간 동안의 긴 비행시간을 크게 지루한줄 모르고 지나서 다행이다. 현지 시간으로 4시가 조금 넘어 비행기가 착륙한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은 인천공항 못지않게 규모가 큰 공항이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터키 항공의 허브 공항으로, 시내 중심가에서 서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공항의 명칭은 터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가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승객 수송 기준으로는 아시아에서 2, 유럽에서 18위를 기록하였으며, 승객 수송인원은 45500명으로, 그리스를 제치고 동유럽에서 최대 공항이 되었다고 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자, 인솔자 김승주 양은 일행을 한 자리에 모아, 인원파악을 한 후, 버스에 오르게 한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인 김현주 양은 오늘의 첫 방문지인 그랜드 바자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시장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소지품에 신경을 쓰고, 가방은 앞으로 메라고 한다. 뒤로 멘 가방은 남의 것이고, 옆으로 멘 가방의 임자는 반반씩이며, 오직 앞으로 멘 것만이 자기 것이라는 설명이다.

버스 타기 전 인원 점검을 기다리는 일행들, 왼쪽 끝에 80고령의 할아버지가 보이고 오른 쪽에 남방셔츠를 입은 남자분과 그 옆에 배낭을 멘 여자분은 미국인 부부다.

 

버스를 타고 그랜드 바자르로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마르마라해와 항구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점점이 떠 있는 커다란 선박들 너머로, 멀리 도시 건물들이 아련히 보인다.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싱그럽다.

차창 밖으로 본 항구

 

마르마라 해와 멀리 보이는 아시아 지역의 도시

 

버스가 신호 대기에 걸려 버스 정류장 앞에 멈춰 선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중년부부의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어 올리니,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무척이나 개방적이고 기분 좋은 사람들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광도 밝고 활기가 넘친다. 이스탄불의 첫 인상이 무척 마음에 든다.

버스 정류장에서 순간적으로 포즈를 취해 주는 부부

 

도시 풍광 1

 

도시 풍광 2

 

이윽고 그랜드 바자르 7번 게이트 앞에 도착한다. 지도를 보니, 공항에서 바자르까지는 19.1Km에 차로 28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외국인들에게는 그랜드 바자르로 통하는 이 시장은 터키 말로는 카팔르 차르쉬(Kapali Carsi)”,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파티 슐탄 마호멧이 이스탄불을 정복하고, 바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시장은 오스만터키를 대표하는 명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그랜드 바자르 7번 게이트 앞

 

당겨 찍은 게이트

 

5,000 여개의 상점이 모여 있는 터키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물산이 넘나드는 교역의 메카였다고 한다. 금은보석, 양탄자, 가죽제품, 도자기, 그릇, 옷감, 잡화 등 없는 것이 없고 회교사원과 레스토랑까지 있다고 한다.

지붕이 있는 시장

 

보석상

 

터키 전통 과자점(로쿰-입안의 행복)

 

IRANIAN CAVIAR

 

가이드는 7번 게이트에서 직진하여 맞은 편 게이트 까지 갔다가 옆길로 빠지지 말고 곧바로 되돌아오라고 한다. 만약 옆길로 빠졌다가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며, 절대로 옆길로 빠지지 말고, 소지품에 주의하라고 신신 당부를 한 후, 40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자유 시간을 준다.

최후의 만찬

 

옆길

 

나자르 본죽(Nazar Boncuk)

 

건과점

 

상인들이 무척 적극적이다. 점포 사진을 찍으면 뛰어나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코리아라고 하면,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며 건과나 과자를 집어주며 맛을 보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하고

 

도자기점, 사진을 찍으려하자 바로 반응을 보인다.

 

찻잔

 

장식품

 

향수

 

의류

 

양탄자

 

점포들을 기웃거리며 천천히 걸어 맞은 편 게이트 1에 이르러 문을 벗어나니, 그 곳에는 또 다른 노천점포들이 줄을 잇고 있고, 말다툼을 하는 상인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말 그대로 시장과 전장을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한동안 구경을 하다 왔던 길로 되돌아선다.

게이트 1

 

노천시장과 언쟁

 

집합시간 15분 전에 헤어졌던 곳으로 되돌아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환전소가 눈에 뜨인다. 바자르에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이 제일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10유로를 28.3 터키리라(TL)로 바꾼다. 1 TL은 우리 돈 약 500원 정도이고, 상점에서는 US 1$2TL로 받아준다.

환전상

 

간이매점에서 우리의 것 과 모양이 꼭 같은 떡볶이가 있는 것을 신기하게 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노천카페에서 1달러를 주고 홍차를 주문해 마시며 일행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노신사가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걸어온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반갑다며, 자기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용사라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보니, 참전용사 치고는 아무래도 이양반이 너무 젊어 보인다.

바자르 앞 광장의 간이매점

 

터키에서 본 떡볶이

 

한국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고, 나는 1941년 생으로, 그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고 하니, 자신은 1938년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2살에 참전했다는 말이 아닌가? 좀처럼 믿기지가 않아, 시간도 됐기에, 어물어물 일어서고 말았다. 하지만 나중에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당시에 10대 젊은 애들이 대거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실례를 한 것 같아 영 기분이 찜찜하다.

노천카페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일행들이 다 보이자 걸어서 식당으로 이동한 한다. 이스탄불 구시가지 거리가 아름답다. 길은 좁고, 전차도 다녀 무척 복잡하지만 전차를 보니, 옛 도시의 멋이 느껴지는 것 같아 정겹기만 하다.

식당 가는 길 1

 

식당 가는 길 2

 

식당 가는 길 3

 

식당 가는 길 4

 

이어 식당에 도착한다. 메뉴는 케밥(Kebap), 케밥은 불에 구은 음식이란 뜻이라고 한다. 종류도 많아, 오늘 우리가 먹은 것이 어떤 것인지 이름도 모르겠다. 하지만 샐러드, 닭고기, , 등이 입맛에 맞는 편이라 맛있게 식사를 한다.

식당 도착, 문 앞의 아가씨는 터키인 가이드

 

음식을 기다리는 일행들, 음식점 벽타일이 눈길을 끈다.

 

 공갈빵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한다. 버스는 1시간을 넘게 달려, 930분 경, 숙소인 ARTEMIS MARIN PRINCESS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이스탄불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53.9Km 떨어진 외곽지역에 자리한 호텔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29일 새벽 330분경이니, 집에서 새벽 6시 경에 출발 한 것을 감안하면, 21시간 30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긴 하루였다.

호텔가는 길

 

아침에 찍은 ATEMIS 호텔

 

내일은 5시 모닝 콜, 6시 식사, 7시 출발이다. 가이드 김현미 양 왈, 시차  때문에 모닝 콜이 없어도 새벽 2시, 3시면 잠이 깰 것이라고 한다.

 

(2014. 9. 8.)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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