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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아래 한낮의 에페소 - 선 그라스의 클레오파트라 후예들
2014년 9월 2일 (화)
4;30 기상, 5;30 식사, 6:30 출발-강행군의 연속이다. 6시 30분, 파무칼레를 출발하여 에페소로 가고. 이어 쉬린제를 들렀다, 9시가 다 되어, 아리발릭 Ida Kale Resort Hotel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숙박한다. 버스 타는 시간 약 10시간을 포함, 총 이동시간이 약 14시간 30분다.
이른 아침 6시 27분 호텔을 나서는 일행
버스는 여명 속에서 붉게 물든 들판을 지난다. 멀리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보이고 조금 더 지나, 지열발전소가 맹렬하게 수증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명 속 붉게보이는 밭과 멀리 히에라폴리스 유적
지열발전소
가이드 김현미 양이 터키의 전통 결혼풍속을 소개한다. 터키 처녀들의 결혼 적령기는 20살~25살이라고 한다. 결혼 적령기의 딸은 둔 집에서는 신랑을 구하기 위해 지붕에 병을 올려놓는다. 딸이 날씬하고 몸매가 좋으면 날씬한 병, 뚱뚱하면 허리가 불룩한 병, 그리고 키가 작으면 작은 병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에페소 가는 길
결혼할 생각이 있는 신랑후보는 새총으로 지붕 위의 병을 쏘아 깨뜨리고, 부모와 함께 신부 집을 찾아가 상견례를 한다. 이때 신부가 신랑이 마음에 들면, 정성껏 맛있는 차를 끓여 대접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에 소금을 넣어 내 놓는다고 한다. 상견례 자리에서, 소금 맛이 나는 차를 마신 신랑 측은 군소리 없이 물러서고, 터키에서는 이처럼 옛날부터 여자 쪽에 선택권이 있었다고 한다.
신부가 신랑감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하게 되면, 신랑 측에서는 데려가는 신부의 노동력의 대가로, 신부 집에 지참금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고, 결혼식 하객들은 축의금을 금으로 내 놓았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남아 있고, 이혼은 쉬운 편이라고 한다. 요즈음에는 현대식 결혼이 성행하여, 전통식 결혼풍속은 서서히 사라져간다고 한다.
아이발릭 가는길
버스는 2시간이 넘게 E87번 고속도로를 달린다. 에페소(Efes)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9시 15분 경, 가죽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나투엘 2000(Natuel 2000)에 도착하여, 우선 화장실부터 들른 후, 쇼룸으로 들어선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나자, 남녀 모델들이 번호가 적힌 가죽제품을 입고 나와 패션쇼를 벌린다. 마음에 드는 옷의 번호를 적어 두었다가 매장에서 제품을 확인하고 구매하라는 뜻이다. 끝 무렵에는 우리 일행 중 지원자들에게도 옷을 입혀 패션쇼를 벌리게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나투엘 2000
쇼 1
쇼 2 (좌우 모텔은 우리 일행)
가죽이 무척 부드럽다. 실크가죽이라고 한다. 여자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남녀재킷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옷들을 선보이는데. 양면가죽이 특히 눈길을 끈다. 외국인이 구매할 경우, 8%의 VAT가 면제되어, 이들 제품에 명품 브랜드를 달았을 때 가격의 절반이하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여자 분들이 약 US$ 700~800정도에서 마음에 드는 옷들을 구매한다. 가죽집에서 쇼핑을 마치고 약 20분 쯤 이동하여 에페소에 도착한다.
재봉실
에페소는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연결하는 에게해의 중심도시로 BC 5세기 경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고, 이어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를 거쳐, 로마 때에는 아나톨리아반도에서 가장 큰 항구로 번성하여, 한창 때는 인구가 25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7세기에 들어 강에서 유입되는 토사가 바다를 메워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자 급속히 쇠락하게 된다.
에페소 도착
우리들은 남문으로 입장하여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바리우스(Varius) 욕장을 지나 북문 쪽으로 이동하며 유적들을 살펴본다.
바리우스 욕장 : 1세기에 건설된 목욕탕. 1283년 복원, 온돌과 유사한 난방 시스템
바실리카 거리 :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설한 길. 바리우스 욕장에서 헤라클레스 문까지의 거리
오데온(Odeon) : 2세기 안토니우스가 세운 소극장
시청사 자리 : 3세기에 완공된 에페소의 행정업무를 관장하던 곳
날씨는 덥고, 내려쬐는 햇살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 속을 인파에 떠밀려 다니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유적들을 대강 대강 카메라에 담을 뿐, 안내문을 주의 깊게 살필 여유도 없다. 아치에 오디세이의 일대기가 조각되어 있다는 폴리오(Pollio) 샘과 기독교 박해로 악명 높았던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신전을 카메라에 담고, 이어 맴니우스(Mamnius) 묘를 지난다.
인파
폴리오 샘(좌)과 도미티아누스 신전 :
맴니우스의 묘
저 앞에 푸른 나무 한 그루가 보이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은 사람들과 유명한 니케(Nike) 여신상 앞에 모인 사람들이 뒤섞인 모습이다. 인파에 밀려 유명한 헤라클레스 문은 확인하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나무 그늘
승리의 여신 니케 ; 왼손에 월계관 , 오른손에 밀 다발을 들고 있다.
옛 에페소의 번화가 큐레테세(Curetes)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이어 트리아누스(Trijanus) 샘, 스콜라스티커 욕장(Schcolastika’s Bath), 하두리아누스(Hadurianus) 신전, 고금주택가, 공중화장실 등을 둘러보고, 셀수스(Celsus) 도서관 쪽으로 내려선다.
트리아누스 샘 ; 2세기 초 로마황제 트리아누스에 헌정된 샘.
스콜라스티커 욕장 ; 3층 목욕탕. 2세기에 만든 것을 4세기에 들어 스콜라스트커라는 여인이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대폭 증축
하두리아누스 신전 : 2세기경의 신전, 아치에 행운의 여신 티케와 지혜의 여신 메두사를 조각
두 번째 아치 위의 메두사 조각
모자이크로 장식한 고급주택가의 바닥
공중화장실 : 5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
에페소의 대표적인 건물인 셀수스 도서관은 당시 소아시아의 총독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이 아들이 117년에 지었다. 12,000여권의 장서를 소장했던, 셀수스 도서관은 로마제국 최대의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은 262년 고트족의 침입과 지진에 의해서 완전히 파손되었다가 1978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셀수스 도서관
2층 구조의 이 건물은 화려하게 조각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아름답다. 입구 벽면에 있는 4개의 여인 석상이 눈길을 끄는데, 왼쪽으로부터 ‘지혜, 덕, 판단, 학문’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진본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있고, 현재 것은 짝퉁이라고 한다.
석상
셀수스 도서관 옆에 상업 아고라로 들어가는 마제우스(Mazeus)와 미트리다데스(Mitridates)의 문이 눈길을 끈다. 상업 아고라(Commercial Agora)는 에페소의 중앙시장으로, 항구에서 가까워,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문물들은 물론, 노예까지 거래 됐다고 한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데스의 문
상업 아고라
셀수스 도서관 건너편에 유곽이 있고, 도서관에서 대극장까지 대리석을 깐 길을 대리석 거리라고 한다. 안토니우스를 찾아온 크레오파트라가 이 대리석거리를 거닐며 쇼핑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곽
여인의 얼굴과 족적, 발 크기가 족적보다 커야 유곽에서 놀 수 있다는 표시라 한다.
대리석 거리, 왼쪽이 상업 아고라다.
대리석 거리를 따라 걷는다. 길가 여기저기에 유물의 파편들이 보인다. 대극장이 가까워지자, 발굴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문을 보니, 오스트리아 고고학회에서 작업을 맡아하고 있다.
유물 파편 1
유물 파편 2
발굴 공사
대극장(Great Theathre)은 BC 3세기 헤레니즘시대에 지은 것을, 로마시대에 들어와 대폭 중축했다고 한다. 피온(Pion) 산 경사면을 이용해 건설한 이 대형 원형극장은 최대 수용인원이 24,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시대 때는 검투사들의 대결까지 벌어졌다는 이곳은 지금도 1년에 한 번 특별공연을 갖고 있는데, 특히 음향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대극장 1
대극장 2
대극장에서 본 대리석 거리
에페소 관람을 마친 일행은 근처의 작은 한국 식당으로 이동하여 모처럼 우리 음식을 즐긴다. 연세가 많은 식당 주인 할아버지는 세월호참사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으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세월호참사 이후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키 한국식당
세월호참사 여파는 국내 뿐 아이라, 해외의 우리 교민들에게도 이처럼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더 이상, 반체제세력들이나 불순한 정치세력에 이용당하지 말고, 하루 빨리 자신들의 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터키속의 그리스 마을이라는 쉬린제(Şirince)로 이동한다. 버스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 사면이 온통 올리브나무 천지다. 1시 50분 경, 쉬린제 마을에 도착하여, 포도, 무화과, 석류, 등 과일 주를 시음하고, 여자들에게 좋다는 석류 주룰 10유로에 산다.
쉬린제 마을 가는 길
창박은 온통 올리브 나무
쉬린제 마을
과일 주 매점
쉬린제에서는 식당과 매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잠시 둘러보고, 마을은 먼 발치로만 바라 본 후, 2시 15분 경, 버스에 올라, 약 380Km 떨어져 있는 아이발릭으로 향한다. 버스는 3시 17분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약 한 시간 후에 용무를 보라고 휴게소에서 정차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휴게소, 빵 굽는 여인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현지 가이드 김현미 양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 해준 후, 영화 “트로이”를 틀어준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영화 “트로이의 헨렌(Helen of Troy)”을 본 적도 있고, 브레드 피트가 아킬레스 역으로 나오는 이 영화도 본 터라 창밖도 보았다, 영화도 보았다 한다. 창밖으로는 잠시 바다가 가까워졌다 사라진다.
영화 “트로이”
6시 25분, 두 번째 휴게소에 들러 약 2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더니, 도시가 가까워 지고, 7시가 넘자, 버스는 황혼 속을 달린다.
두 번째 휴게소
휴게소 안의 아타투르크 초상
황혼
저 아래 도시가 내려다보이고, 점점이 불빛이 반짝인다. 이어 버스는 도시로 들어서고, 버스는 9시가 다되어 Ida Kale Resort Hotel에 도착한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짐을 로비 한 귀퉁이에 모아 놓고, 저녁 식사부터 한 후, 방을 배정받고 투숙한다. 호텔은 바다를 면하고 있다. 샤워를 하고 잠시 호텔 주위를 둘러본다. 리조트라 일반 호텔과는 달리 숙방동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수영장이 있고, 바닷가 카페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바다 쪽에서 본 본관 건물과 좌우의 숙박동
잠시 아름다운 밤풍경을 즐긴 후, 내일 아침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2014.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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