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언덕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지나 온 순례길- 신부차림의 순례자가 홀로 걷고 있다.
(클릭하면 사진 커짐-이하 같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남긴 메모와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 여정에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한다.
순례길 답사 후, 마드리드(Madrid), 코르도바(Cordoba), 세빌(Seville), 바르셀로나(Barcelona)를 둘러 본 후, 45일 만에 귀가하니, 집사람은 무사귀환을 반기면서도, 초췌해진 내 모습을 보고 많이 언짢아한다. 체중이 5%(3Kg) 이상 줄어, 고등학교, 대학교 때 체중으로 돌아가고, 새까매진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가하면 산디아고 순례길에 관심이 있는 친지, 동료들은 늘그막에 쾌거를 이루었다고 부러워한다.
집사람은 내 체중을 늘리려고 음식에 신경을 써주고, 나는 자기 전에 열심히 토너와 로션을 발라, 새까매진 몰골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한 달 쯤 지나니, 체중과 안색이 정상으로 되돌아오자, 집 사람 왈, “이제야 사람 꼴이 나고,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네”라고 일갈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할 때, 우리나라에도 걸을 곳이 좋은 데가 많은데, 왜 구지 스페인까지 가서 800Km를 걸어야 하느냐고 반대를 하는 집사람에게, 성지 800Km를 걸으면서,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쓸데없는 욕심, 불안정한 감정, 성급한 마음 등을 다 버리고 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것에 대한 시니컬한 반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에게, 순례길을 걷고 나니 어떻더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는 없지만, 내면에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하다.” 라는 반응이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겉으로 보아, 확실한 정도의 변화는 없겠지만, 쓸데없는 욕심이 생기거나, 화가 치밀 때, 이를 억제하는 기능이 강해지고, 여유 없는 생각이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순례길은 고난(苦難)의 길이다.
다인실의 불편한 잠자리, 익숙하지 않은 낮선 먹 거리, 연일 걷다보니 생기는 피로감과 발에 생기는 물집, 무릎 통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신도들은 성지순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 신도들은 자기성찰을 위해서, 또는 고난과 역경에 도전하기 위해, 순례길의 고난을 감수한다,
아헤스(Ages)를 지나 크르세이로봉(Alto Cruceiro-1080m)에서 명상에 잠긴 여인
하지만 순례길이 결코 고난의 길만은 아니다. 순례길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고, 귀중한 많은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 그리고 밝고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이 있어, 함께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일출
끝없는 순례길-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마을을 나와 국도를 따라 새벽길을 걷다 뒤돌아본 풍광
밀밭, 유채밭
포도밭이 있는 풍광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구시가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펌)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구시가지가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재로 등재되는 가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 윗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가볼 생각이 있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됐으면, 과감하게 우선 떠나고 볼 일이다.
이제부터는 후답자들을 위한 몇 가지 도움말을 정리해 본다.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순례길 탐방에 관련된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공부하는 것이 좋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스페인의 역사, 지나치는 마을의 역사적인 배경, 만나는 유명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공부 둥 이다.
대한민국 산티아고순례길 협회(http://caminocorea.org/?page_id=3108),
카미노친구들의 연합(http://cafe.naver.com/camino2santiago) 등에서 자료를 찾고, 선답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를 읽어, 간접 경험을 쌓는다.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선다. 거실이 무척 커 보여서 놀란다. 매일 도미토리식의 좁은 공간, 불편한 숙소에서 40여 일 동안을 지나고나니, 시각이 좁은 공간에 익숙해져서, 이런 엉뚱한 착시현상까지 생기는 모양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의(衣), 식(食), 주(住)가 아닌가?
순례길에서 우리들의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곳이 바로 알베르게(Albergue)다. 2층 침대를 배치한 다 인실에서, 남녀, 인종, 연령 구분 없이 모두 함께 잠을 잔다, 알베르게는 공용 알베르게, 사설 알베르게, 성당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등으로 운영 주체에 따라 구분되고, 요금이나 시설, 운영 면에서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알베르게가 가장 낮은 수준의 주거시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알베르게-숙소
로르카(Lorca) 알베르게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남편 호세가 고전음악을 좋아해서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청아한 ‘오페라 아리아’가 순례자들은 반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에서 고전음악(클래식 컬 뮤직)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한다.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옛날 사도 야고보 성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이 길을 걸었을 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무지에서, 마을을 만나지 못해, 황야에서 노숙하기를 밥 먹듯 했을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의 알베르게는 마치 궁전과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순례길의 속성(屬性)은 고난의 길이다.
당랑, 매일 입는 옷, 갈아입을 옷, 비옷, 신발 한 켤레, 슬리퍼 하나, 세면도구 등만 가지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은 이처럼 최소한의 것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우리들은 없어도 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스페인은 먹 거리, 볼거리가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미리 스페인의 먹 거리에 대한 정보를 섭렵한 후, 현지에서 시간과 돈을 아끼지 말고, 스페인의 유명한 먹 거리들을 즐기고,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이 좋다. 먹 는 것만큼은 다양하게 한껏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푸짐한 샐러드
뿔뽀(Pulpo-문어) 타파스
이런 순례길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배낭무게를 5Kg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60대 이상의 순례자들 중에서 배낭이 힘겨울 경우, 배낭을 메지 말고, 배송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15Kg 배낭의 한 구간 배송서비스 이용비용은 5유로, 우리 돈으로 약 7,000원 정도다. 한 달 내내 배송서비스를 이용해도 총 소요비용은 20만 원 정도이니. 부담이 되는 규모는 아니겠다. 배송서비스 이용에 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우리들이 포터 노릇하러 순례길를 걷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니어들은 배낭을 메지 않는다. 배낭은 배송서비스에 맡기고 작은 색(Sack)을 지고 걷는다.
순례길을 걷는 시기는 4월 말이나, 5월 초(또는 9월말, 10월 초)에 출발하여 6월 상순경(11월 상순경)에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 서둘지 말고, 주위의 풍광, 유물 유적, 먹 거리 등을 즐기며 유장하게 걷는다.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은 생 장 피드포르를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테라에 도착하는데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나 중년층의 사람들에게는 빼내기 어려운 긴 여정이다 보니, 단점이 되겠지만, 은퇴하여 시간이 많은 60~70대 부부에게는 긴 여정이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부부란 참 묘한 관계다. 40년~50년을 함께 살아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남편이 일을 할 때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남편이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에는 몰랐던 상대방의 단점들이 하나 둘 들어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 갈등이 쌓이다보면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져, 별거(別居), 졸혼(卒婚), 이혼(離婚) 등에 이르는 경우를 주위에서 곧잘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 부부사이가 서먹해지고 멀어진다고 느껴질 때, 부부가 함께 순례길 떠날 준비를 한 후 장도에 올라, 한 달이 넘게 서로 돕고, 격려하며 고난의 순례길을 걷다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다시 가까운 부부사이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순례길에서 나이 든 부부가 서둘지 않고 유장하게 걷는 모습이 가장 보기가 좋다. 나도 집사람과 함께라면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40대쯤으로 보이는 프랑스 부부 – 두 분 걷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니, 뒤돌아 손을 흔들며 즐거워한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아버지가 무척 순례길을 걷고 싶어 하는데, 어머니가 건강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걷지 못할 경우에, 시간이 있는 따님이 아버지와 함께 순레길을 걷는다. 이 또한 보기 좋은 모습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온 의사 아버지와 따님
알맞은 동반자가 없는 때에는 무리하게 동반자를 찾지 말고, 혼자서 걸으며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남은여생을 즐겁고 보람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혼자 걷는다고 결코 외롭지는 않다. 함께 걷는 순례자들이 모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의 저녁식사
오른쪽 검정 티에 안경 쓴 분이 캐나다 신부님인데, 2년 전 순례길을 걷고 난 후, 느낀 바가 있어, 이곳 알베르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순례길에 한국인 순례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많은 외국 순례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이 보는 한국인들 중에는 무례할 정도로 무뚝뚝해서, 인사를 해도 모른 척하기 일수 이고, 사람들 앉으라고 마련해 놓은 의자 위에 배낭을 벗어 놓아, 앉을 자리를 방해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실내, 심지어는 식당 안에서도 태연하게 신발을 벗는다고 흉을 본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순례길에서 우리들은 좋건 싫건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대표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른 나라사람들이 흉보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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