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의 쇼팽 묘와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된 쇼팽의 심장

 

오늘은 피아니스트 안인모씨의 해설로 쇼팽의 녹턴 Op. 92를 듣는다.

쇼팽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18103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46km 떨어진 작은 마을 젤라조바볼라(Żelazowa Wola)에서 태어나고, 1849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작고한 폴란드 작곡가이다.

 

39년의 짧은 생애이지만 그는 200여곡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 170여곡이 피아노곡이라고 한다. 친구들은 돈을 벌려면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고 피아노에만 매달려 피아노를 위한 불후의 명곡들을 작곡했고, 그래서 그는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1830, 그는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유학을 간다. 이 때 그를 위한 고별연주회에서 그가 연모했던 콘스탄치아(Konstancja)가 찬조출연을 했는데, 사실은 그가 빈으로 유학을 가는 이유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던 끝에 그녀가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고, 그의 곡 중 에튀드 3'이별의 곡'과 협주곡 1, 2번은 그녀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가 빈에 도착하였을 때 러시아에 항거하는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편지를 보냈으나, 아버지로 부터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귀국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음악에 매진한다.

 

18445월 아버지가 사망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쇼팽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아,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쇼팽이 184910월 사망했으나 폴란드에서의 장례식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 탓에 그의 시신은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된다. 쇼팽의 묘에는 그가 폴란드를 떠나기 전 은잔에 담아온 폴란드의 흙이 뿌려졌고, 후에 쇼팽의 심장은 그의 유언에 따라 누이에게 인도되어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쇼팽은 항상 고향인 폴란드를 그리워하며, 가고 싶어 했지만, 1830년 고향을 떠난 후 한 번도 고향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더욱 짙어지고, 그는 이런 절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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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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