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먹거리여행-신월 삼거리 안내판>

 

김광현 사장이 지난해처럼 올해도 먹거리 여행을 떠나자고 강력히 제안해 온다. 2월부터는 다시 나무들을 돌봐야 함으로 시간이 없으니 1월중에 3박 4일 정도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다. 삼목회 김석근 회장도 반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번 먹거리 여행의 캐스팅 보드는 내가 쥐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난해 먹거리 여행을 다녀 온 후에는 다시는 이런 여행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3박 4일 일정 중, 첫날만 계획에 따르고, 그 이후는 너무 많은 곳을 보려는 김 사장을 따라 이리저리 차만 타고 다니는 것이 내 기질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두대간을 한답시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섣달 그믐날에도 집을 떠나 산 속에서 보낸 후라 요즈음 집사람 입이 많이 부어 있다. 먹거리 여행 이야기를 꺼내 놓고, 넌지시 집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의외로 먹거리 여행에 대한 집사람의 반응은 관대하다. 산처럼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 일정을 2박 3일로 단축하고, 행선지도 엄선하여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자고 두 김씨에게 메일을 보낸다. 김 회장은 쌍수를 들어 이 제안을 환영하고, 3박 4일쯤의 일정으로 여기 저기 다니고 싶은 김 사장은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동의한다.

 

2005년1월 25일(화).

지하철 분당선 정자역 3번 출구를 빠져 나온 시간이 9시 45분 경이다. 일산에서 오는 김 회장은 아직 인 것 같고, 김 사장의 트럭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까지는 무척 춥더니,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다. 그래도 한데서 떨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시 역으로 들어가 새들을 구경한다. 정자역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말라고, 제법 커다란 새장에 여러 종류의 새들을 모아놨다.

 

다시 역을 나온다. 길가에 작년에 신세를 졌던 <경기 94 다 6201 호>, 4WD 타입, 기아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 김 사장의 어부인, 김선인 여사는 봉고차를 타고 천하주유를 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상과대학 출신들의 실용주의를 간과했던 모양이다. 기름이 디젤이라, 승용차에 비해 기름 값이 절반이고, 좌석이 높아 조망이 좋을 뿐 아니라, 4륜 구동도 가능하여 오지에서도 거칠 것이 없을 터인데, 왜 우리가 승용차를 타겠는가?

<우리가 타고 다닌 봉고 트럭>

 

10분쯤 늦게 김 회장이 도착하고 이어서 2차 먹거리 여행이 시작된다. 운전은 김 사장의 몫이다. 체력도 좋지만 본래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거기다 자기 애마(愛馬)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도 꺼리는 눈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바이오 네비게이터"역을 자청하며, 작으나마 이 번 여행에 기여할 거리를 찾는다.

<평일 오전, 정자역 앞의 분당 거리는 한산하다.>

<날씨는 잔뜩 흐려 눈이 내릴 것 같다.>

 

이번 먹거리 여행은 처음부터 속 편하게 큰 프레임만 정하고, 구체 여행계획이 없이, 운전수 마음대로 가도록 맡겨두기로 한다. 김 사장은 남해에서 옛날 회사 친구를 만나 볼 생각인 모양이다. 12시 조금 넘어 비룡 인터체인지에서 35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평일이라, 고속도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다.

<우리는 35번 고속도로를 탄다>

산청에서 점심을 먹고, 웅석봉과 지리산 능선을 멀리서나마 보자고, 59번 국도로 하동을 거쳐 남해로 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은다. 산청의 별미는 3가지 정도란다. 더덕구이, 추어탕, 그리고 한정식이다.

 

산청 인터체인지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산청 관광 팜플렛을 달랬더니 길가 고속도로 관리소로 가 보란다. 관리소에는 산청군에서 발간한 "智異山과 東醫寶鑑의 고장 山淸"이라는 훌륭한 팜플렛이 비치돼 있다. 팜플렛을 얻고 내친김에 직원들에게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더덕구이는 철이 아니고 추어탕이나 한정식을 하려면 안내를 하겠단다.

 

식당 이름과 위치만 가르쳐 주면 족하다해도, 마침 군청에 가야할 일이 있다고, 친절한 여직원이 앞장을 선다. 세 늙은이가 봉고차로 여행하는 것이 신기한가 보다. 소형차가 앞장을 서서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더니, 이윽고 "고향 한정식" 앞까지 안내해 준다.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고향>

<산청 "고향"에서 점심 식사>

<산청 추어탕>

 

2시가 넘은 시각이라 식당에는 손님도 없이 휑∼하다. 큰 소리로 사람을 찾으니, 안 주인인 듯 싶은 여인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온다. 아마도 설거지를 하던 중인 모양이다. 방으로 안내를 받는다. 비교적 정갈하게 정돈된 방이다.

 

추어탕을 주문하고, 이 지방의 좋은 술을 추천하라고 부탁하니. 가격은 좀 비싸지만 산청 복분자 술이 좋다고 권한다. 추어탕은 5,000원, 복분자 술은 10,000원이다. 상이 차려지고 음식이 나온다. 주문하지 않은 파전이 한 접시 놓여있다. 세 늙은 여행객을 위한 서비스인 모양이다.

 

산청 복분자 술은 스위트한 것이, 뒷맛이 개운하다. 지리산 복분자 술도 마셔봤지만, 그 맛과는 달리 가볍고 개운하다. 갈아서 만든 추어탕도 특색이 있다. 고사리, 숙주, 그리고 우거지 등 야채를 많이 넣고 끓여 국물이 시원하다.

 

눈길에 조심하라는 식당 안 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오른다. 산청의 따듯한 인정과 후한 인심, 그리고 좋은 술과 특색 있는 추어탕에 흡족해진 우리들은 골목길을 돌아 나와 59번 국도로 접어든다. 여전히 싸라기눈이 흩날린다. 봉고는 힘들게 밤머리재를 오른다. 도로에는 눈이 제법 싸이고, 우리의 기사 양반은 4륜구동으로 기어를 바꿔 넣는다.

 

싸라기눈이 바람에 불려 휘날린다. 밤머리재 꼭대기, 넓은 공터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차를 세우고 도로 건너편 웅석봉 산행 들머리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웅석봉은 지리산의 동부능선, 주능선, 서부능선을 연결하는 70.5Km에 달하는 지리산 태극종주의 기점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6.25 때는 토벌대에 쫓긴 빨치산들이경호강을 건너고, 달뜨기를 넘어, 웅석봉으로 잠입, 지리산에 웅거한 곳이기도 하다.

<밤고개재 오르는 길>

<밤고개재 정상 - 웅석봉 들머리>

 

눈이 내려, 웅석봉의 올돌한 모습이나,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은 보지 못하지만, 도로를 따라 심산의 설경을 구경하는 것도 또한 별다른 재미다. 눈 쌓인 도로를 서행하여 진주로 연결되는 20번 국도로 내려선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한참을 달려 내려오다 보니 하동으로 통하는 59번 국도 도로표지판이 오른 쪽으로 보인다.

<차 창밖 풍경 1>

<차 창밖 풍경 2>

 

청학동 알림판이 보이지만 우리 기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신월 삼거리에 이른다. 요즈음 구설수에 오른 유흥준의 나의 문화여행 답사기에서 발췌했다는 <당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라는 팻말 붙어 있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아름다운 길이란 소리다.

 

삼거리를 왼쪽으로 돌아, 섬진강 변의 음식점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를 세운다. 짙은 안개에 가려 섬진강이 회색 띠처럼 걸리고. 그 위로 눈이 떨어져 녹아 버린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바람도 쏘이고, 사진도 찍는다.

<눈 내리는 섬진강>

 

하동에서는 19번 국도를 타고 남하한다. 벌써 5시가 넘어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남해대교를 건넌다. 마주 오는 차들이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행한다. 남해로 들어서서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 이락사(李落祀)에 도착한다. 눈발은 여전히 드문드문 내리고, 시각은 5시 30분이 넘어, 사방이 어둡다.

<눈 내리는 남해대교를 건너..>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으로 후퇴하려는 고니시 유끼나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500여척의 왜선들과 명,조 연합함대가 벌인 해전이 노량해전이다. 1598년 11월 19일 새벽2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이순신 함대는 왜선 200여척을 격파한다. 왜선 50여척은 도망을 가고, 나머지 왜선들은 관음포에서 퇴로가 차단되어 최후의 발악을 한다. 이 와중에서 이순신 장군은 퇴각하던 왜군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한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 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웠다. 이 것이 1973년 6월, 사적 제232호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된다.

 

나는 어둑어둑한 이락사를 둘러보고, 김 사장은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관음포 이락사 - 어두워 사진이 않좋아 퍼온 사진으로 대체>

<이락사 충구몽의 유언비 - 퍼온 사진>

 

차는 다시 방향을 돌려 대교 앞, 노량으로 향한다. 양식업을 하는 김 사장의 친구가 있는 곳에는 모텔이 없어, 노량에 있는 모텔을 소개받고, 오늘은 그 곳에서 숙박하기로 한다. 베니스 모텔에 도착한다. 김 사장 친구 덕에 1층에 5명은 족히 잘 수 있는 넓은 방을 얻는다. 이윽고 김 사장 친구가 도착하고, 부근 횟집으로 이동한다.

<베니스 모텔>

 

회를 잘 아는 김 사장 친구 분이 잡어 회를 주문한다. 김석근 회장이 게블을 먹고 싶다해서, 게블 한 접시를 따로 청한다. 생선 맛이 서울에서 먹는 맛과 다르다. 김 회장이 가져온 매실주를 마시며 남해의 신선한 회를 즐긴다.

 

김 사장 친구, 김 진호씨는 우리보다는 한 두 살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수산대학을 나와, 두산 상사에서 양식업 부문에서 일을 하다 독립하여 자신의 양식장과 부화장을 운영하는 분이다. 양식업과 관련,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학구파라고 한다. 젊잖고 친절히다. 운전을 해야 한다고 술은 사양하면서, 대신 남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식사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온다. 눈은 이제는 가랑비로 변했다. 모텔 방에서 다시 김 진호씨와 어울려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11시가 가까워진다. 김 진호씨는 내일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다. 11시가 넘어 김 진호씨는 양어장으로 돌아가고, 우리 세 늙은이도 발 닦고, 잠자리에 든다.

 

 

(2005. 2. 10.)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거리 여행(6) - 통영  (0) 2012.11.30
먹거리 여행(5) - 남해  (0) 2012.11.30
먹거리 여행(3) - 여수  (0) 2012.11.30
먹거리 여행(2) - 강진  (0) 2012.11.30
먹거리 여행(1) - 진도  (0) 2012.11.30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