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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9.10 백두산-남파, 서파(2) 2
  3. 2015.09.03 백두산-남파, 서파(1)
  4. 2015.09.02 백두산-북파

장백산을 오르면 평생 평안하다.” 하산지점의 축하 메시지

 

 

2015817()

4시 모닝콜, 4시 반 식사, 5시 출발이다. 서파에는 관광객들이 많아, 매표소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서둘러야하기 때문이다. 510분경에 출발한 버스는 6시경에 서파산문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관광객들이 꽤 많이 보인다.

 

현지 가이드가 일행 중, 3사람의 여권을 대표로 회수하여, 단체 티케팅을 하러가고, 대원들은 한자리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은 후, 각자 흩어져 주위를 둘러본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서파산문

 

단체사진

 

매표소

 

백두산 화산 국가지질공원 돌 표지와 안내판

 

장백산 관광안내판

 

620분 경, 가이드가 입장권과 환보차 승차권을 나눠주고, 이어 줄을 서서 입장한 후, 환보차 승강장으로 이동하여 탑승한다. 가이드는 길이 많이 구불거려, 앞 보다는 뒷좌석이 편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차안에는 가족단위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검표

 

환보차 승차장으로 이동

 

승차장

 

630분 경 승차완료, 차가 출발한다. 우리 일행들은 대부분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앞자리는 중국 분들 차지다. 환보차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요동을 치며 달린다. 차창 밖으로 사스래나무들이 있는 초원이 보이고, 초원 안에 언뜻언뜻 사람들도 보인다. 또한 멀리 천지의 외륜 같은 높은 봉우리가 보이는가 하면, 주위의 많은 부드러운 능선들이 눈길을 끈다.

뒷자리 우리일핼

 

앞자리 중국인 가족

 

초원과 사스래나무, 그리고 사람들

 

천지의 외륜인가?

 

부드러운 능선

 

환보차는 장백산 국제천연스키공원을 지난다. 천지가 가까운 모양이다. 마천우(2,459m)와 천지로 오르는 계단이 모습을 보인다. 뒤를 돌아본다.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흡사 제주도의 오름 같은 부드러운 봉우리 사이로 도로가 구불부굴 이어진다. 도로만 빼놓고 보면, 눈 아래 전개되는 부드러운 풍광이 제주도와 아주 흡사하다. 아마도 같은 화산(火山)이기 때문인가 보다.

  장백산 국제천연스키공원

 

천지로 오르는 계단

 

부드러운 구릉과 그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715분 경, 주차장에 도착하여, 화장실부터 들른 후, 휴게소 앞 작은 주차장에서 가이드를 만난다. 가이드는 천천히 천지에 올라, 충분히 백두산을 즐긴 후, 840분까지, 자기가 기다리고 있는 이곳으로 하산하라고 한다.

  주차장

 

휴게소 앞 주차장, 우리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있다

 

계단으로 향한다. 왼쪽에는 음료수나 간식을 파는 간이 점포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오른쪽에 고혈압 심장병 환자는 천천히 걷고, 상비약을 준비하라는 경고판이 보인다. 717, 첫 계단을 오른다. 오른쪽에 안내판이 보인다. 계단높이가 높지 않아 천천히 오르면 누구나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겠다.

계단입구,

 

안내판 첫 계단, 오름 900m, 1442 계단

 

오르막, 내리막 양방향 계단

 

뒤돌아 본 주차장,

 

서서히 가팔라지는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계단 오르는 요령을 알리는 안내판들이 곳곳에 보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 옆, 부드러운 능선 사면에 야생화 범 꼬리가 가득하다. 계단 위에 덮개로 씌운, 덮개계단을 지난다. 계단에 쓰인 숫자는 505, 이제 1/3 정도는 오른 셈이다. 왜 이지점의 계단에 덮개를 했을까?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계단 수가 많으니 천천히 조심해 걸어라

 

층계가 가팔라진다

 

안내판-고도 2,000m, 힘들면 10보 걷고 잠시 쉬고, 100보 걷고 한동안 쉬어라

 

부드러운 능선 사면을 가득 메운 범 꼬리 야생화

 

덮개 계단

 

안내판-1/3 등정, 꾸준하면 승리!

 

계단 옆으로 천지의 물이 흘러내린다. 금강대협곡으로 흘러드는 모양이다. 가파른 계단을 쉬지 않고 꾸벅꾸벅 오른다. 왼쪽 평지에 범 꼬리가 가득하다. 안내판이 보인다. 천지가 가까워지나 보다, 천지의 웅장한 외륜이 모습을 보인다.

  천지 물이 흐르고 1

 

천지 물이 흐르고 2

 

범 꼬리와 안내판

 

천지 외륜

 

높은 곳에서 뒤를 돌아본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암봉들 과는 달리 지금 내려다보는 하계는 평전이 아니면 부드러운 구릉이다. 한 없이 부드럽다. 천지 주변의 웅장함, 신비함과 대조를 이루는 부드러움이다. 백두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뒤돌아 본 하계- 부드럽다.

 

하계 2

 

747, 1,000번째 계단에 오른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른 후, 30분이 걸렸다. 산악회 아주머니 2분의 기념사진을 찍는다. 8시 천지에 오른다. 이른 시간인데도 관광객들이 꽤 많아, 무척 시끄럽다.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이다.

천지 접근

 

경계비

 

경계비 왼쪽(중국 땅)

 

경계비 오른쪽(북한 땅)

 

천지

 

옥주봉, 그 뒤로 백운봉이 일부만 보인다.

 

장군봉

 

동영상

 

15분 동안 천지주변을 둘러보고 하산 길로 들어서다, 천지 안내판을 만난다. 내려가며 보는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시간이 지나며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계단 오르기가 힘든 양반이 가마를 타고 올라오는 모습도 보인다.

  천지 안내판

 

천지는 화산호(火山湖-Crater Lake)이다. 호수표면 높이는 2,194m,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370m, 호수면적은 거의 10Km²에 달한다. 중국에서 가장 높고, 큰 화산호로, 송화강, 두만강 및 압록강의 발원지이다.”

내려가는 길

 

가마탄 사람

 

내려가면서 야생화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야생화 철은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 있다. 제철에는 그야 말로 천상의 화원이겠다. 840분 경, 계단을 다 내려선다. “장백산을 오르면 평생 평안하다.”라는 안내판이 축하를 해준다.

  야생화 밭 1

 

야생화 밭 2

 

야생화 밭 3

 

하산한 후 뒤돌아 본 층계 길

 

9시경 대원들이 모두 하산하자, 다시 환보차에 올라 산문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930분 경 환보차에서 내려, 다음 행선지인 금강대협곡으로 이동한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나무들이 아름답다.

 

입구에 “1,000년 전 장백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금강 계곡에 쌓였던 돌과 화산재가 시간이 흐르면서 금강의 침식작용으로, 200~300m, 깊이 80~100m의  지형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계곡이 형성됐다.”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보인다.

  차창 밖 풍광 1

 

풍광 2

 

대협곡 가는 길 1

 

대협곡 가는 길 2

 

금강대협곡 안내판

 

실시간 환경수치를 보여주는 안내판을 지나, 943, 협곡산문 안으로 들어서서 데크 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걷는다. 총 길이는 약2Km. 마땅한 안내도가 없어, ‘안전방화책임조직도로 대체한다.

  실시간 환경수치

 

안전방화책임조직도

 

관리원 책임구

 

입구

 

데크길

 

야생화

 

764 이정표

 

특이한 나이테(奇特年輪)를 만난다. 1901, 미국 아리조나주 임업장에 근무하는 더글라스라는 사람이 1901, 이곳에서 발견한 나무 밑둥치라고 한다. 나이테에 의하면 1749년에 태어나 262년 동안 살았던 나무로, 백두산 역사의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안내판

 

나이테

 

곳곳에 나무를 설명한 안내판이 보인다. 금강협곡을 굽어볼 수 있는 첫 번째 전망대에 이른다. 이후에도 이런 전망대를 여러 차례 만난다. 각기 다른 곳에서 보았던 협곡의 모양을 한자리에 모은다.

  나무 안내문

 

전망대

 

협곡 1

 

협곡 2

 

협곡 3

 

협곡 4

 

협곡 5

 

협곡 6

 

협곡 7

 

안내판을 따라 조교도 건너고, 여기저기에서 수명을 다한 고사목들을 만난다. 출구 500m를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고, 이어 홍송왕 팻말이 붙어있는 멋진 나무를 본다.

안내판

 

조교

 

고사목 1

 

고사목 2

 

 흑웅와창(黑熊臥倉)

 

향장(香楊)

 

홍송, 홍송왕

 

홍송왕

 

남파에서 보았던 송화련(松樺戀)’과 다시 만나다. 장백산에서는 소나무 뿌리와 사스래나무 뿌리가 서로 얽혀 있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소나무와 사스래나무의 사랑이라고 표기하여, 금혼식을 맞는 노부부를 상징하고, 사람들의 사념(思念)과 상상력을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송화련

 

안내판

 

다시 발걸음을 옮겨, 잠시 기념품 판매점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늙어서 얻은 자식(老來得子)이라는 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1020분 경, 대협곡을 나와 서파 산문으로 이동한다.

기념품 판매점

 

노래득자

 

노래득자 1

 

노래득자 2

 

1117, 서파산문에 도착하여 백두산 모형과, 장백산 송화련 우체국을 잠시 줄러본 후 버스에 올라, 1125분 경, 심양으로 출발한다.

백두산 모형, 

 

장백산 송화련 우체국

 

송강하 가는 길

 

북파 트레킹에 많은 기대를 했던 참여자들이 $200을 강탈당한 채, 북파는 구경도 못하고, 남파, 서파관광으로 끌려 다닌 이번 백두산 나들이는 이것으로 끝난 셈이다. 이하는 사진 중심으로 마무리한다.

  강원도 식당-중식, 가이드가 쏜 블루베리주가 일품이다

 

송강을 지나고

 

통화 시에 도착하여 금화미식에서 저녁 후 발 맛사지 집으로

 

통화시 만통대반점에 투숙

 

호텔 건너편의 통화역

 

통화역 거리

 

통화시 시민들의 아침운동

 

2015818()

8시 경 호텔을 출발하여 심양으로 출발한다. 통화시를 통과하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버스는 만주벌판을 달린다. 오늘도 좋은 날씨다. 앞자리 특석에 앉아 만주벌판의 풍광을 한껏 즐긴다.

  통화시를 지나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묘령의 여인이 앉은 자리-저 곳이 내 자리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꿈나라로, 하지만 특석의 나는 만주의 풍광을 즐긴다.

 

한쪽은 옥수수 밭, 한쪽은 논-의외로 논이 많다.

 

구릉 경작지

 

휴게소에 머물고

 

심양 47Km

 

화력발전소

 

서탑가-코리안 로드

 

리안 로드 1

 

코리안 로드 2

 

코리안 로드 3

 

삼성 휴대폰

 

만두집-점심식사 한 곳

 

심양 시가지

 

심양 톨게이트

 

심양공항

 

비록 사기를 당했어도 여행은 즐겁다.

 

 

(2015.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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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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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주차장에서 본 천지 외륜

 

2015816()

새벽 430분 모닝콜, 550분 식사, 6시 출발이다.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늦다. 집에서는 보통 5시면 일어나다 보니, 중국시간 새벽 4시에 잠이 깬다. 40여분 동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카메라만 달랑 들고 밖으로 나온다.

 

우리가 묵은 용강빈관은 송강하 중심지에서 외각으로 떨어진 준 3성 호텔로 길가에 있다. 호텔을 나와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며 주위풍광을 둘러본다. 가까운 곳에 임하어경(臨河御景)이라는 큰 호텔이 보이고, 도로 표지판은 직진하면 장백현, 오른쪽이 송강하라고 알려준다.

  임하어경, 제법 규모가 큰 호텔이다

 

도로표지판, 주유소, 그리고 동북빈관이 보인다.

 

길가 중국인들의 거주지역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아직은 이곳까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길가에 걸린 현수막을 보면 송강하가 속한 푸송현(撫松縣)이 장백산 여행의 핵심이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태 관광지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것을 보면 백두산이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에서 중국의 주요 관광지로 변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 피부에 와 닫는 느낌이다. 

길갓, 지붕이 우리나라 너와집과 흡사하다.

 

전봇대에 줄줄이 걸린 현수막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6시가 조금 넘어 남파로 출발한다. 이어 버스는 푸난린장(撫男林場)으로 들어서고, 10분 쯤 더 달리려, 이도백하 갈림길에 이른다. 산악회의 당초 계획은 송강하에서 저녁을 먹고, 이도백하로 이동하여,일박한 후, 다음날 일찍 북파관광을 하거나 옵션으로 북파트레킹을 하기로 했던 것인데, 현지에 와서는 옵션이 필수로 변해, 송강하에서 일박하고, 이도백하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남파로 향한다.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나마 날씨가 나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푸난린장 산문

 

이도백하 갈림길

 

버스는 낡은 시멘트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달린다. 오른쪽으로 맑은 계류가 흐른다. 이도백하 갈림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진다. 오늘 백두산 일대의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 오후에 구름 많음.’이었는데, 예보가 맞는 모양이다. 714, 버스는 ‘‘장백은 당신을 반겨 맞습니다.“ 라고 쓰인 낡은 환영아치 아래를 지난다.

  낡은 시멘트길

 

장백 환영아치

 

아치를 지나자 도로포장공사가 준비 중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말끔한 아스팔트도로가 이어지며, 도로 양변을 노란 꽃으로 장식해 놓았다. 백두산 쪽에서부터 거꾸로 도로정비를 해 오고 있는 모양이다.

포장공사 준비

 

아스팔트도로

 

735, 장백산 남경구 16Km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을 지나고, 이어 장백산 남경구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인데도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우리버스는 장쑤산 산장 앞에서, 도시락을 받기 위해 멈춰 서고, 작업장의 인부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장백산 남경구

 

건축공사장

 

도시락을 싣고

 

83, 남파 주차장에 도착한다. 커다란 장백산 화산 국가지질공원돌 표지와 안내판이 우리들을 반기고, 저 안쪽으로 산문이 보인다. 우리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각자가 자필 서명을 한 후, 산문 안으로 들어가, 820분 경, 환보차(환경보호차)를 타고 천지로 향한다.

지질공원 돌표지

안내판

 

산문

 

기념사진

 

이 회장, 1호차 가이드, 그리고 군인들, 아마도 이들이 멋대로 코스를 바꾼 주역들인 모양이다.

 

입장

 

환보차 타고 출발

 

졸지에 코스를 바꾸어 놓고도, 남파 코스에 대한 개념도 한 장 마련해 오지 않고, 남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 생전 이런 안내는 처음 받아 본다. $200 내고, 군소리 말고 따라오라는 태도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산악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호언을 하는 좋은 사람들 산악회의 지기 나현후라는 양반의 민얼굴이란 말인가?

 

환보차는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린다. 천지 아래 남파 주차장까지 환보차로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문에서 천지 주차장까지 거리가 60Km에 가까운 모양이다. 5분 쯤 달려 환보차가 화장실 앞에서 정차한다. 도로 오른쪽으로 냇물이 흐르고 철조망이 쳐있다. 철조망과 냇물이 중국과 북한의 경계이고, 냇물은 천지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한다.

  화장실 앞에서 정차

 

철조망과 냇물

 

다시 차가 출발한다. 길가 오른쪽에 야생화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환보차는 압록강대협곡을 지나, 고산림습지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세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사스래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고산림 습지로 내려서고

 

부드러운 산세

 

사스래나무

 

모르는 사이에 길은 시멘트도로 변하고,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환보차는 지금 너른 분지 같은 곳을 지난다. 부드러운 구릉의 허리를 가르고 도로가 이어진다. 북파에서 보는 백두산의 웅장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길은 시멘트도로로 변하고 멀리 천지 외륜이 보이는 것 같다.

 

너른 분지를 지나 낮은 구릉 허리로 이어지는 도로

 

산문을 출발하고 30분 정도 지난 시각, 환보차가 정차하더니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 걸어서 진행하라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대원 한 사람이 도로에서 두어 발자국 도로 밖으로 내려서고, 이를 본 환보차 기사가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현지 가이드를 잡고 무엇인가 심하게 다그친다.

차가 멎고, 이제부터는 걸어서 간다.

 

현지가이드는 대원들을 모으더니, 이곳은 환경보호와 국경문제를 고려하여, 도로 이탈을 엄금하고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뿐 이곳이 어디쯤이고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일체 없다. 주위는 야생화들로 가득한 평전이다. 아마도 이곳이 천상화원인지도 모르겠다.

  천상화원

 

야생화 1

 

야생화 2

 

야생화 3

 

야생화 4

 

백두산 양귀비

 

길가에 중국어와 한글로 표기된 경고판이 보인다. 시멘트도로를 걷지만, 차를타고 달리 때와는 기분이 다르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것, 시멘트도로를 걷는 것 모두가 트레킹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천상의 화원을 걸으며 백두산의 또 다른 멋,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보니, 기분이 많이 밝아진다.

  경고판

 

화원과 도로

 

천상화원을 걷는 대원들

 

날씨가 흐려지며 운무가 서서히 내려온다. 저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를 향해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주위가 온통 신비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다시 사방이 밝아지며,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보차들이 장난감 같아 보인다. 대원들은 긴 행렬을 이루며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운무가 내리고 앞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도로

 

길게 이어진 행렬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앞으로 계속 오르막이라는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 고도가 높아지며, 주위의 풍광이 거칠어진다. 야생화들도 물기가 많은 오목한 곳에 모여 있다.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도로가 구불구불 발아래 펼쳐지고, 중국과 북한의 경계가 되는 깊은 도랑이 이어진다.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자, 힘들어진 대원들이 환보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꾸벅꾸벅 걷는다.

  연속상파(連續上坡)

 

오목한 곳에 모여 있는 야생화들

 

뒤돌아 본 지나온 길

 

도로 옆 깊은 도랑, 북한과 중국의 경계

 

거칠어진 주위 풍광

 

도로는 정면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한다. 멀리서부터 보였던 봉우리인데, 북한 땅에 속하는 모양이다. 거칠고 척박한 북한 땅이 가깝고, ‘조선 34’ 라고 표기된 경계석이 보인다. 길가에 서있는 공안차를 지난다.

도로는 정면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고

 

북한 땅 1

 

북한 땅 2

 

조선 34 경계석

 

물 없는 골짜기

 

길가에 서 있는 공안차

 

수목한계선을 훨씬 지난 이 높이에도 야생화는 여전히 무성하고, 지질학적으로 재해발생 위험이 높은 곳이니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보인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보니, 제일 후미로 쳐져 혼자 걷는다. 환보차 한 대가 마주 내려와 멈춰서더니, 가이드가 차에 타라고 소리를 지른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계속 걷겠다고 하자, 차에서 내린 가이드가 다가온다. 북한 땅 어디에선가 감시자가 지켜보고 있고, 혼자 걷다보면, 납치될 위험도 있으니 빨리 타 라고 인상을 쓴다. 겁이 더럭 나 두말없이 차에 오른다. 이때의 시각이 1020분경이니, 1시간 30분 정도 걸은 셈이다.

야생화와 경고판

 

차에 올라 10분 쯤 달려 너른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한쪽에 천지 돌 표지가 보이고, 주차장 오른쪽에는 쇠줄이 쳐져있다. 아울러, 변경을 넘지 말라는 경고판도 보인다.

  너른 주차장

 

천지 돌 표지

 

쇠줄과 경고판

 

천지 돌 표지를 카메라에 담고, 천지로 향한다. 안개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지만 천지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따라다니던, 중국 사병한 명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따라 붙는다. “부용(不用)! 부용(不用)!” 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길이 아랫길, 윗길로 갈린다. 아랫길로 내려서려고 하니, 윗길로 가자고 이끈다. 윗길로 따라가니 바로 천지가 내려 보이는 곳이다. 시각은 좁지만, 천지를 바로 위에서 굽어 볼 수 있는 멋진 장소다.

  천지 가는 길

 

북한 땅과 천지

 

사진을 찍고 길을 따라 진행하니, 아랫길과 만나 경계비 있는 쪽으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윗길은 경계비 가기 전에 천지를 볼 수 있는 숨은 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병에게 좋은 길 안내해주어 고맙다고 하니 웃는다. 웃는 모습이 앳돼 보여,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20살이라며, 내 나이를 묻는다. 나이를 알려주자, 놀랍다고 쳐다보고, 언덕길을 오를 때는 옆에서 부축해 주려한다.

경계비

 

경계비 쪽에서 본 천지

 

북한 쪽의 장군봉(2,749m)과 해발봉(2,719m)

 

지금 우리가 서있는 36호 경계비는 관모봉과 제비봉 사이의 안부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북한 땅인데, 북한의 양해를 얻어 중국이 사용하고 있다고한다. 중국병사가 쇠줄을 넘어, 북학지역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경계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선다. 안개가 내린다.

관모봉, 오르지 말라는 팻말이 보인다.

 

제비봉 방향, 쇠줄 안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다.

 

경계비 앞에서

 

주차장 가는 길

 

주차장에서 다시 천지 쪽을 되돌아본다, 중국 측의 청석봉(2,664m)의 날카로운 모습이 보인다. 도시락을 받아들고, 식사할 곳을 찾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주차장 남쪽 아래에 있는 건물로 들어서서. 일행 몇 사람과 함께 빙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뒤 돌아 본 천지 쪽

 

심식사를 한 건물

 

식사를 마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온다. 날씨가 많이 좋아져, 천지를 다시 보려고 천지 쪽으로 향하는데, 우리들을 인솔하고 온 중국군인 대위가 앞을 막는다. 천지에는 이제 우리 일행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이라,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어, 주차장으로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다, 1215분 경, 환보차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한다. 창밖으로 사스래나무 숲이 보인다.

  주차장의 군용차

 

군용차가 선도하는 하산 길

 

환보차는 135분 경, 악화쌍폭(岳樺双瀑-사스래나무 폭포) 앞에 정차한다. 이곳에서 폭포를 구경한 후, 걸어서 압록강 대협곡까지 이동하고, 그 이후는 차를 타고 하산하라고 한다. 물론 필요한 사람들은, 압록강 대협곡까지 이동 중에도, 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악화쌍폭 돌표지

 

쌍폭정

 

안내판

 

안내판의 내용을 요약한다. 장백산은 풍부한 수원지로 유명한 곳이다. 악화쌍폭주위에는 무성한 사스래나무 숲이 있다. 쌍폭 중, 첫째폭포의 높이는 10m, 둘째폭포의 높이는 15m이다. * 岳樺는 사스래나무의 중국식 표기이다.

 

차에 배낭을 벗어 놓고, 데크 길을 따라 폭포로 향한다. 길가에 야생화가 지천이고, 건너편에 사스래나무 숲이 보인다. 하지만 쌍폭을 본 일행들은 에이~하며 크게 실망한다. 땅 넓은 중국에서 이정도의 폭포를 자랑이라고 내 놓는 거냐? 라고 묻고 싶은 모양이다.

  데크길

 

사스래나무 숲 1

 

사스래나무 숲 2

 

야생화 1

 

야생화 2

 

야생화와 찍사

 

쌍폭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백두산 남파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백두산 남파의 하이라이트는 금강분지와 금강폭포라고 하는데, 군인들이 허가를 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 남파의 백미를 제쳐두고, 악화쌍폭을 구경시킨데 대한 무의식적인 실망의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야생화 3

 

야생화 5

 

야생화 6

 

야생화 7

 

야생화 8

 

야생화 9

 

야생화 10

 

1250분 경, 차로 돌아와 배낭을 찾아 메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가의 야생화가 곱다, 백두산 야생화는 7월 중순이 피크라는데, 한 달이나 지난 지금도 이처럼 지천이니, 피크 때 왔으면 그야말로 장관이었겠다.

  길가의 야생화 1

 

야생화 2

 

岳樺(Yue Hua)폭포 안내 목

 

야생화 3

 

야생화 4

 

야생화 5

 

야생화 6

 

혼자 걷는 사람, 여럿이 걷는 사람, 뒤로 걷는 사람, 다양한 모습의 일행들이 햇볕이 내려 쪼이는 아스팔트도로를 걷는다. 다행히 다양한 야생화와 아름다운 주위풍광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땡볕 속 아스팔트도로

 

꽃밭

 

열매

 

평전

 

고사목

 

야생화

 

쌍폭을 출발, 30여분을 걸어내려, 송화련(松樺戀)이라는 표지목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무슨 소리인가? 물어볼 곳도 없다,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부근이 소나무와 사스래나무가 자생하는 경계지역이고, 그러다보니, 소나무 뿌리와 사스래나무 뿌리가 한데 뒤엉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소나무는 키가 크고 건장한 신랑을, 자작나무는 우아하고, 사랑스런 신부를 연상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송화련 표지목-소나무와 사스래나무가 얽힌 모양

 

 

송화련() 1

 

송화련() 2

 

이쯤에서 차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땡볕 속을 걷기가 힘들고 지루한 모양이다. 나는 모자에 물을 뿌려, 열기를 완화시키면서, 땡볕 속을 뚜벅뚜벅 걷는다. 중국 아이들이 외제 오픈 카를 타고, 음악소리를 빵빵 울리며 지나간다. 모두 중국의 고관대작들의 자녀들로, 이런 특권층만 남파관광이 가능하다고 한다.

야생화

 

침엽수림

 

25, 침엽수림 경관대, 그리고 고산 산림습지 안내판이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물고기를 잡는지 중국인들이 습지를 헤집고 있다. 223, 압록강 협곡 입구로 들어선다. 길게 이어지는 압록강 깊은 협곡이 미국의 콜로라도강 협곡을 떠 올리게 한다.

  습지

 

침엽림 경관대 안내판

 

고산 산림습지 안내판

 

압록강 협곡

 

계류

 

협곡 면 1

 

협곡 면 2

 

협곡 면 3

 

대협곡 동영상

 

238, 압록강 대협곡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환보차에 올라, 316, 남파 산문에 도착한다.

압록강대협곡 안내판

 

되돌아 온 남파 산문

 

(2015. 8. 30.)

 

사족(蛇足)

$200의 용도를 생각해 본다.

입장료, 환보차 사용료(일부는 북파 것과 중복)

산악회, 중간 책(이 회장), 현지 가이드의 몫

군인과 공안의 몫.

 

용도가 다양하다.

다수인의 공모작(共謀作)이다.

 

하지만 중국 장교의 호위를 받으며 남파를 걸었으니

크게 억울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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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중국에서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길은 북파, 서파, 남파 3곳의 관광지이다. 중국의 관광지가 다 그렇듯이 산길을 걷기보다는 환보차를 타고 이동하고, 잘 정비된 돌길, 시멘트길, 계단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산행도, 트레킹도 아닌, 단순한 관광일 뿐이다.

북파, 서파, 남파 관광코스

 

처음 백두산에 왔다는 중국인 천씨는 퉁화 시내에서 380위안(76000) 하는 창바이산 1일 여행상품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창바이산의 절경을 보니 결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백두산에 중국인이 몰려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수학 여행단이나 일부 중산층의 관광지 정도로 알려진 백두산이 이제는 웬만한 중국 서민들도 찾을 수 있는 친숙한 휴양지로 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백두산이 중국의 대표적인 국민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관련 자료 발췌)

 

하지만, 관광이 아닌, 백두산 트레킹이 산꾼들을 유혹한다. 서파 트레킹코스와 북파 트레킹코스가 그것이다. 모두가 허가되지 않은 비공식 루트로, $200의 별도 가이드 비용을 요구한다. 관광회사가 아닌 군소 산악회에서 모객을 하기 때문에, 트레킹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백두산 트레킹 1()

 

백두산 트레킹 2()

 

서파트레킹 코스 : 서파산문 ~ 5호 경계비 주차장 ~ 5호 경계비(북중 국경) ~마천루 ~ 청석봉(2,662m) ~ 백운봉(2,691m) ~ 녹명봉(2,603m) ~관일봉(2,520m) ~차일봉((2,596m)안부 ~ 옥벽폭포 능선길 ~ 소천지 ~ 북파산문까지 약 13Km~15Km 구간

 

북파트레킹 코스 : 소천지~장백폭포 뒷길~옥벽폭포~용문봉~녹명봉~용문봉~옥벽폭포~소천지의 원점회귀 코스 약 12Km~13Km

  백두산 트레킹 코스- 붉은 선(펌)

 

2013년 이후, 빈번한 사고와 산불 때문에, 지린성정부가 서파 트레킹코스에 공안(公安)을 배치하고, 엄격히 통제를 하는 바람에 트레킹 길이 완전히 끊겼다. 대신 북파 트레킹코스를 안내하는 산악회들이 야금야금 늘기 시작하더니, 금년 6월부터는 매주 트레킹 팀이 출발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좋은 사람들 산악회에서 홈 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34일 일정(815~818)의 백두산 트레킹 참가자 모객 공고를 223일에 낸다. 반년 가까운 이른 공고다. 아마도 참가자들의 반응을 보고, 실행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사인 모양이다.

 

“8월 초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라 해서 비 올 확률이 적은 날짜로 해서 빠른 날짜를 잡았습니다.

 

서파와 북파를 하고 백두산 트레킹 코스를 옵션으로 추가합니다.

 

가격은 최소로 노 팁 노 쇼핑 모두 포함 109만원에 트레킹 옵션 200달러입니다. 가실 분 예약금 29만원 입금하세요. 입금 순으로 마감하겠습니다.“

 

6월 초, 3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신청을 한다. 이 정도면 출발이 가능하겠다고 판단이 되어 611, 참가 신청을 하고 계약금 29만원을 송금한다. 이후 시간이 지날 수로 참가 신청자는 늘어나는데 마감은 하지 않고 계속 신청을 받는다.

 

트레킹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산악회에서는, 25명 내외의 인원으로 마감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상하다. 그뿐만 아니라 여권사본 접수, 방 배정 등의 일처리 솜씨가 서툰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신청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으나, 계약금 환불 문제도 신경이 쓰이고, 한번 결정한 것을 부득이한 사정도 없는데, 취소하는 것도 문제라 그냥 믿고 진행하기로 한다..

 

2015815()

540분 경, 인천국제공항 3A카운터에 도착한다. 산악회 대장 한 분이 산악회 리본을 나눠주며 배낭과 짐에 매달라고 한다. 참여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자, 모구 61명이라는 대답이다. 대부대다. 우선 단체비자 인원분류부터가 큰 문제이겠다.

 

이윽고 6시가 되자, 이사장이라는 양반이 나타나, 산악회 대장 두 사람에게 참가자들의 여권을 모으라고 한 후, 34일 일정표를 나누어 준다. 이윽고 여권이 모아지자, 이사장은 발권을 하겠다며, 체크인 카운터 쪽으로 사라진다. 우리들이 탈 비행기는 KE831, 출항시간은 810분이고, 740분부터 탑승이 시작된다는데, 7시가 넘어도 우리들의 발권이 끝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사장은 KAL 여직원이 혼자서 처리하느라 늦어진다고 툴툴댄다.

 

이윽고 이사장이 여권 다발을 들고 와 호명을 한다. 여권을 받아 보니, 여권 앞에 C18이라는 번호가 붙어있고, 탑승권이 들어있다. C18은 단체비자 C18번째가 내 비자라는 소리다. 아울러 이사장은 심양에 도착했을 때 타야할 버스 1호차와 2호차의 탑승자 명단을 불러준다. 이사장 일처리 솜씨가 매끄럽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국내 군소산악회와 현지 현장관리자를 연결하는 중간 책인 모양이다. 

  이사장이라는 양반과 산악회 대장들

 

이제 탑승권을 갖고 빨리 짐을 부쳐야 하는데,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단체로 움직이라고 한다. 나는 마일리지 체크를 해야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스카이패스 카운터로 가서 마일리지 체크를 하고, 짐을 부친다. 새벽같이 일어나 바삐 움직이느라, 중요한 아침 용무도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화장실을 들를 여유도 없다.

 

인천에서 심양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1시간 40분이라고 한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제 고도에 진입하자, 바로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부리나케 서둘러 식사를 하고, 화장실이 붐비기 전에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바지를 까고 앉으니, 만사가 해결된 듯 개운한 기분이다.

 

드디어 비행기가 심양공항에 도착하고, 단체비자로 이미그레이션 체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짐을 찾고 나서도, 버스 타기위해 2호차 탑승자 전원이 나오기까지 기다린다. 잘못 왔구나! 후회스런 느낌이 강하게 스쳐간다.

  심양도착

 

오랜 시간동안 기다렸어도, 개인행동을 할 수 없는 터라, 심양공항 사진 한 장 못 찍고, 2호차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독특하다, 좌석을 2층 높이에 배치한 단층버스다. 나는 사진도 찍을 겸해서 높직하게 마련된 제일 앞 자석을 차지하고 앉는다.

우리가 타고 다닌 버스

 

940분 경, 버스가 출발을 하자, 현지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한다. 1호차에도 현지 가이드가 있다고 하니, 참여자들이 많아 우리 일행은 현지 가이드 2명의 도움을 받는 모양이다. 인사가 끝나고, 오늘 일정을 설명하고 나더니, 내일은 북파 트레킹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불가피하게 남파 트레킹으로 코스를 바꾸게 됐다며 양해를 구한다.

 도선 톨게이트, 앞의 버스가 1호차,

 

중국에서 최근에 남파 관광단지를 개발하여 오픈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남파 트레킹코스가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트레킹 시간은 어느 정도이고, 비용은 얼마나 되냐고 묻는다. 트레킹 시간은 7~8시간, 트레킹 비용은 $200이라고 한다. 남파가 개발되어 개방이 됐다고 들었는데, 왜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드느냐고 묻는다. 남파를 개발하여 개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손님들이 없어 문을 닫고, 출입을 금하기 때문에, 남파를 가려면, 북파 트레킹비용과 같은 비용이 든다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손님이 없어 문 닫은 곳을 가기 위해 $200을 더 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일순 차안이 조용해진다. 모두들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잠시 후, 승객 한분이, 트레킹을 안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가이드는 호텔에서 기다려야한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차안이 웅성거린다. 그러자 산악회에서 나온 대장이 트레킹을 안 할 사람의 수를 파악하여, 버스 1대로, 북파 관광을 검토해보겠다고 무마한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버스는 달린다. 버스는 겉모습과는 달리 좌석등받이 조정이 안 되고, 심지어는 안전벨트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앞 유리창, 옆 유리창이 모두 지저분하여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가이드에게 유리창을 좀 닦아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고약하다.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버스는 선양-길림 간 (G1212)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다.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노란색 관목이 눈길을 끈다. 버스는 30분 쯤 달려 G1212고속도로를 버리고 편도 2차선, 202국도로 들어선다. 차선이 줄어서인지 교통량이 많아진다.

G1212 고속도로

 

버스는 국도로 들어서서, 1시간 30분쯤 달려, 대원들의 용무를 위해 휴게소에 잠시 머문 후, 계속 쉬지 않고 달리지만, 도중 도로공사 때문에, 상하차선 한쪽을 완전히 막고, 남은 쪽으로 차량들을 교차 통행시키다보니 정체가 무척 심하다.

휴게소

 

정체구간을 지나자 버스는 속도를 높여 늦어진 시간을 커버한다. 과속측정 방식이, 우리와 달리, 구간 소요시간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늦은 만큼 속력을 내도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버스는 적백령(赤柏岭) 터널을 통과하여 통화에 접근 한다. 무척 큰 도시인 모양이다. 어젯밤 밤차로 연변에서 심양까지 오느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현지 가이드는 잠을 자는지,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말 한마디 없다.

적백령 터널

 

통화에 접근한다.

 

통화

 

수정대교

 

통화시 지역 면적은 15,195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 226만명, 조선족도 많이 살고 있다. 중국 10대 명산인 장백산으로 통하는 2갈래의 관광노선 중의 하나가 여기를 경과한다. 중국의 10대 관광도시 중의 하나다.

 

통화시는 지린성의 제3대 도시로(장춘 및 길림시 다음), 예전부터"인삼의 고장" "중국 한약의 고장" "우수한 쌀의 고장" 으로 불리워졌으며, 고구려 유적지가 있는 지안(국내성)도 통화지구에 속하기 때문에 통화시는 "고구려 유적의 고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버스는 147, 금화식당에 도착한다. 아마도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백두산 관광 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모양이다. 음식이 거의 한국식이고, 한국 돈으로 술이나 과일을 사는데 조금도 불편한 점이 없다.

금화미식

 

참이슬 6,000

 

한국인 입맛에 맞춘 음식들

 

식당 건너편 풍광

 

30분 동안 식사를 하고, 220분 경, 다시 버스에 올라, 190Km 떨어진 송강하로 향한다. 통화시를 벗어나자, 전형적인 중국의 옛 가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빗줄기가 거세진다. 오늘 일기 예보에 백두산 일대에 비가 온다더니, 중국 일기예보가 꽤나 정확한 모양이다.

중국 가촌풍광

 

비가 쏟아진다.

 

현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코스변경으로 불쾌해진 기분이, 쏟아지는 비를 보니, 더욱 암담해진다. 내일과 모레에도 이처럼 비가 내린다면 관광이고 트레킹이고 모두 엉망이 될 판이 아닌가? 5시가 조금 넘어, 용무를 보라고, 버스가 잠시 길가 상점 앞에 머문다.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길가 상점 앞에 머문 버스

 

가촌 풍광

 

대원들이 용무를 마치자 버스가 출발하고, 빗줄기가 다시 굵어진다. 창밖으로 강이 보인다. 송강인 모양이다. 여전히 가이드는 말 한마디 없다.

 송강인가?

 

건설평 산문

 

해질 무렵, 차창밖 풍광

 

용강빈관

 

버스는 630분이 넘어, 숙소에 도착한다. 다행히 비는 멎었다. 60여명이 넘으니, 방 키를 나눠주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나는 독립군이라, 산악회 대장 두 분과 함께 3인실을 쓰도록 배정되었는데, 이 호텔에는 3인실이 없어, 2인실 2개를 주는 바람에, 추가 비용 없이, 독방을 쓰는 행운을 얻는다.

 

730, 저녁식사를 하러 모두 식당에 모인다. 이사장이 10사람씩 앉은 테이블에 고량주 한 병씩을 돌린다. 식사가 얼추 끝날 무렵, 이사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코스변경 사유를 설명한다. 그동안 며칠째 백두산일대에 비가 많이 와서, 북파트레킹코스 일부에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출입이 전면 통제 되어 버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남파트레킹 길을 뚫을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자기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몇몇 분들이 북파관광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연휴라 한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져, 북파 산문에서 환보차 차례를 기다리는데 만 반나절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모처럼 여러분들 모두가 백두산 트레킹을 즐기러 오신 바에야, 자기를 믿고, 모두 함께 남파 트레킹을 해보라고 강권한다.

 

여러 사람들이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지만, 이사장의 능숙한 대응에 속수무책이고, 남파 트레킹에 참여 안할 경우, 마땅한 대안도 없이 호텔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잠잠해진다. 하지만 이 양반들 하는 꼴을 보면, 나라도 앞장서서, 북파관광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모아, 별도로 행동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가 없어, 씨근벌떡 화만 삭이고 앉아있다.

 

한 밤중에 현지 가이드와 산악회 대장들이 함께 각 방문을 두드리며 트레킹 비용 $200을 걷어간다. 북파트레킹이 불가능해지자, 남파관광으로 코스를 바꾸고, 전원이 이에 참여토록 한 결정은, 산악회의 동조, 또는 묵인 하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산악회도 공범자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겠고. 이번 사태에 대해 당연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2015. 8. 25)

 

사족(蛇足)

 

1.귀국하여 알아보니, 산사태로 북파트레킹길이 완전히 끊겼다는 이사장의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그 동안 북파트레킹 모객을 해오던 산악회들이 일제히 모두 모객을 중단했다.

 

2, 이틀 후 서파관광을 하던 중에 만난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어제 큰 문리 없이 북파관광을 마쳤다고 한다.

 

3. 2013, 백두산 관광객 수는 1572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71.3%(1122천명)가 북파 코스를, 27.5%(433천명)가 서파 코스를 찾았고 남파 코스 입장객은 1%(17천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4. 좋은 사람들 산악회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번 참여자들이 백두산의 백미인 북파는 구경도 못하고, 한밤중에 $200을 강탈당한 후, 천지와 쌍폭지역을 제외하고는 줄곧 환보차를 타거나, 도로 위를 걷기만한 어처구니없는 남파 트레킹으로 끌려다니면서 느꼈던, 당혹감, 좌절감, 배신감으로 산악회에 대한 원성이 높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믿음을 악용한 산악회는 아래와 같은 사과문 공지를 내고 끝이다.

 

[공지] 좋은사람들 나 현후 2015.08.25. 11:29

 

사과드립니다.

올해 좋은사람들이 해외여행 거래선을 바꾸었는데

회원 여러분께 민폐를 드렸습니다.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다른 거래선으로 바꾸겠습니다.

다시는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악회를 믿고 따른 사람들이, 산악회의 고의인지 아니면 단순 실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산악회로 인해 1인당 $200씩 강탈을 당했는데도, 그중 일부라도 변상하겠다는 이야기는 일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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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북파

백두산 2015. 9. 2. 14:44

백두산 천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1962년 북한과 중국 간에 체결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의해 백두산과 천지가 분할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백두산의 북서부는 중국에, 남동부는 북한에 속하게 되고, 천지의 54.5%는 북한이, 45.5%는 중국이 점하게 됐다.

 

 

백두산 북파, 서파, 남파, 동파(펌)

 

백두산은 상단부가 직경 5km, 깊이 850m의 거대한 칼데라에 의해 함몰된 성층 화산이다. 이곳 칼데라는 969(±20) 화산분출로 인해 형성되었으며, 물이 차서 천지(天池)를 이루고, 이 천지(天池)는 쑹화강(松花江)의 발원지가 된다. 백두산은 쑹화강 외에도 백두산 산정(山頂) 남쪽에서 압록강이, 무두봉(無頭峰-1,930m)의 북쪽 기슭에서 두만강이 발원한다.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병사봉(兵使峰-2,749m)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이라고 한다. 김정일이 19638월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 백두산의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이라는 소리를 듣고, "수령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 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조선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 학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겠는가? 중국 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백운봉으로 높이는 2,691m이다. (관련자료 발췌)

 

백두산엘 가려면 중국 쪽으로 가는 길 밖에는 없다. 중국은 백두산에 북파(北坡), 서파, 남파, 세 개의 관광지를 개발했으나, 지금은 북파와 서파만을 개방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여행사들은 백두산 북파, 서파 관광객들을 모객 하여, 안내를 하고 있다. *()는 중국어로 언덕, 비탈을 뜻한다.

 

나는 회사 일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중국 청도를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청도맥주에 병을 공급하던 회사가, 청도맥주가 자체 병 공장을 차려 수요를 충당하자, 판로가 없어진 병 공장은 로에 불을 끄고, 새로운 수요처를 찾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병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애를 먹고 있던 때라, 중국 측에서 시설을 투자하고, 우리 측에서는 공장 재가동을 위한 자금을 투자한다는 기본방침을 정하고, 합작계약서 작성을 비롯한 구체내용의 합의를 위해 자주 청도 병 공장을 방문해야 했으나, 청도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홍콩에서 매주 수요일 1회 뿐이고, 좌석 확보도 어려워 애로가 많았다.

 

초기 계약서를 검토할 때에는 중국 측에서는 공장요원, 청도의 관리, 그리고 당의 요원들까지 참석하여, 중국 여자통역의 통역으로, 영문계약서 조항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고 든다. 하지만 일단 계약이 체결되자, 북경 대 출신 조선족이, 중국여자 영어통역과 교체되어, 그 이후는 우리말을 사용하게 됐다.

중국 측 협상 파트너와 기념사진, 여자 분이 중국인 영어통역

 

1990년 들어, 드디어 공장이 재가동 되고, 생산된 병의 국내반입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그해 9, 마지막으로 청도를 방문하고 귀국할 때 잠시, 시간을 내어, 백두산을 들러 보기로 한 것이다. 마침 조선족 통역의 고모가 연길에서 살고 있어서, 고모의 도움을 받는다.

 

199099()

청도에서 기차로 북경으로 이동하고, 북경에서 쌍발기에 탑승, 연길(延吉)로 향한다. 쌍발기 프로펠러소리가 요란하다. 쌍발기는 낮게 나르고, 저 아래 구불구불 이어지는 만리장성이 아련히 내려다보인다. 장관이다.

북경, 쌍발기

 

비행기는 중간 급유를 위해 봉천에 내린다. 비행기에 급유를 하는 동안 승객들은 공항청사를 둘러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급유를 마친 쌍발기는 다시 이륙하여 연길로 향한다.

봉천공항에서

 

이윽고 비행기는 연길에 도착하고, 조선족 통역 고모의 영접을 받아, 고모네 댁으로 향한다. 고모부는 골수 공산당원이라 꽉 막힌 양반이지만, 고모는 의사이고, 한국에도 두 차례나 왔었다고 한다. 고모네는 남매를 두었다. 따님은 똘똘한데, 아들은 얼뱅이라며 군대에 보내 사람을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들을 환영하는 자리에, 백두산에 함께 갈 젊은 부부,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몇 분을 초대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고모님 댁의 환영, 맨 왼쪽이 고모부, 그 옆이 고모, 맨 오른쪽이 아드님, 한사람 건너 따님

 

교민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묻고, 우리들은 연길 조선족들은 생활과 북한실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큰 사발에 고봉으로 담아준 밥이 많아, 밥을 덜 그릇을 달라고 했더니, 고모부 왈, 밥도 먹어 본 사람이 먹지, 얼마나 못 먹었으면 그 밥도 못 먹느냐고 핀잔을 주는데, 고모는 웃기만하고, 따님이 펄쩍뛰며 모르는 소리 그만 하라고 아빠를 윽박지른다.

 

식사가 끝나고, 상을 치우고 나서도, 술잔은 계속 오간다. 취기도 오르고 초면의 스스러움도 가시자, 마루방이 무도장으로 변한다. 25년 전의 일이지만, 이분들의 소박함과, 친절함, 그리고 생활을 즐기는 멋 등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흥이 많은 분이 먼저 일어서고

 

무도장

 

다음 날 아침, 고모와 젊은 부부를 태운 랜드로버가 호텔로 와서 우리들을 픽업한다. 기사는 中國 龍井市 人大常務委員會 소속 현()기사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백두산 안내를 하게 되어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차도 좋고 기사양반도 베테랑이다.

 

고모와 함께 온 젊은 부부는 고모 네와 한 집안 식구처럼 가까이 지나는 사이라고 한다. 부모님들이 함께 연변으로 건너와 살다보니 한 집안 식구처럼 돼버렸다고 한다. 연변에 살면서도 백두산에는 가볼 기회가 없었는데, 모처럼 랜드로버에 좌석 여유가 있어, 고모님이 젊은 부부를 불렀다고 한다.

 

우리들은 9시에 연길을 출발하고, 이어 용정에 도착하여, 용정 지명의 기원지우물, 용정고등중학, 용문교, 혜란강 등을 둘러본다. 그리고 현기사가 안내한 농촌 마을을 보고, 주변산세나, 농촌풍광이 어쩌면 우리나라 농촌과 그렇게도 똑 같은지 가슴이 찡해온다. 이역만리 고향을 등지고, 쫓겨서 새 땅을 찾아 나서면서도, 고향을 닮은 곳을 찾아 정착한 조선족들의 애환이 피부로 느껴진다.

 

용정

 

안내문

 

용정고등중학

 

아파트

 

소달구지

 

 

용문교

 

혜란강

 

우리나라 농촌과 너무나도 흡사한 용정 농촌

 

친절한 현기사의 안내로 용천주변을 둘러본 후, 이도백하를 지나, 송강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으로 단고기 집이 어떻겠느냐고 기사양반이 묻자, 연변 분들은 모두 좋다는 반응이다. 단고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고모님이 개고기라고 알려준다. 함께 온 강부장도 좋다고 하니, 개고기를 꺼리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현기사가 적어준 이동경로

 

기사양반이 안내한 단고기 집에서 보신탕이 아닌 단고기 무침의 맛을 본다. 육개장 고기처럼 가늘고 길게 자른 고기를 고추장 등 양념에 무친 것이다. 그 맛을 보니, 6.25, 아주 맛있게 먹었던, 고기 맛과 똑 같은 것이 신기하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개고기였다.

점심식사를 한 조선족 식당

 

송강의 노천시장 풍경

 

어머니가 불교 신자라, 개고기는 삼가라는 말씀을 자주하셔서, 보신탕집을 멀리 했으나, 회사에서 동료들이 보신탕집엘 가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 탕은 사양하고, 6.25때 먹었던 고기 맛을 기대하며, 수육을 무쳐 달래서 먹어보지만, 옛날 맛이 아니라, 먹을 때도 그랬지만, 먹고 나서도 속이 거북해서, 그 이후로는 보신탕집에 끌려가더라도 삼계탕을 먹곤 했다.

 

송강의 단고기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던 옛날 개고가 맛과 똑 같은 것이 하도 신기해, 그 이야기를 했더니, 고모님이 웃으며, 연변의 조선족들은, 만주벌판의 혹독한 추위에 견디려면, 단고기를 먹지 않을 수가 없다고 설명을 해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 백두산으로 향한다. 안도현 삼도진을 지난다. 백두산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도로를 정비하는 차량과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스팔트도로 보다 더 말끔하게 정비된 황토길 위로 차가 부드럽게 달린다. 이윽고 백두산 입구를 알리는 산문 앞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도로공사 

 

포장도로보다 더 매끈하게 정비된 황톳길

 

장백산 입구. 강 부장과 함께

 

랜드로버는 백두산 경내로 들어서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텅 빈 오르막길을 오른다. 기사양반이 오른쪽 창밖의 흑풍구를 가리키면서 저곳은 바람이 강한 곳이라 심할 때에는 사람이 날려갈 정도라고 한다. 230분 경, 기상대를 지나, 차에서 내려, 바로 눈앞의 천지로 향한다. 헌데 오랫동안 차를 타서 그런가? 몸이 무겁다. 무거운 몸을 끌고 100여 미터 남짓한 오르막을 오르다 홀연히 깨닫는다. ! 고도 때문이로구나.

  천지 1-천문봉에서 본 건너편 남파

 

천지 2-천문봉에서 본 건너편 장군봉(좌)

 

기념사진

 

북한과 중국의 경계 말뚝

 

2,670m의 천문봉에서 천지를 굽어보고, 주위의 풍광을 둘러본다. 이처럼 높은 곳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주위의 바위들 모양이 신비롭다. 과연 영산(靈山)이다. 언제 올라 오셨는지, 통일을 기원하는 산신제 준비를 하시는 분들을 반갑게 만난다. 백두산 정상은 날씨 변화가 심해, 천지를 보기가 어렵다는데, 이처럼 천지를 볼 수 있다니, 큰 축복이다.

  통일기원 산신제

 

기암 1

 

기암 2 (팜프렛 사진)

 

천지주변 안내도

 

한동안 천지를 둘러 본 후, 왔던 길을 내려서서, 소천지를 구경하고, 숙소인 빙장초대소(氷場招待所)에 도착하여 일박한다.

소천지 1

 

소천지 2

 

 

초대소

 

축배-정면 현기사

 

1990911()

아침에 일어나 초대소 주변을 산책한다.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에는 아직 햇살이 미치지 못하고, 사방이 괴괴한데, 먼 하늘에 새벽노을이 은은하고, 초대소 뒤 암벽이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형상이다. 인적이 없는 적막한 산속, 사방에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깊은 골짜기에서 본 새벽노을

 

아침햇살을 받고 불타는 초대소 뒤 암벽

 

오늘은 온천을 둘러보고, 장백폭포 옆 등산로를 따라, 천지에 올라, 천지 물에 손을 담가보고, 주위 조망을 둘러본다고 한다. 관광객 하나 보이지 않는 호젓한 천지물가를 걸으며 백두산의 정기를 듬뿍 받는다. 

장백산 온천

 

뜨거운 물이 퐁퐁 솟는 지면

 

장백폭포 가는 길

 

장백폭포

 

천지에서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물줄기

 

천지에 오르고

 

천지에서 당겨 찍은 북한의 장군봉(2,749m)

 

이상이 옛 앨범을 뒤적이며, 재생한 백두산 북파관광 기록이다. 이때는 백두산 서파 관광지가 개발되기 전이라 북파관광이 백두산 관광의 전부였다.

 

 

(201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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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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