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봉에서 영봉으로 이어지는 상장능선


지난번 한북정맥 산행 시, 노고산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대원들은 아름다운 북한산 조망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휴식을 취한다. 이 때 잭 대장의 제의로, 다음 번 산행은 3월 1일(수)에 하기로 하고, 이 때 천하의 명소인 상장능선에서, 이사회(二四會) 시산제를 갖기로 의견을 모은다.


2006년 3월 1일(수).

어제부터 서울지역에는 봄비가 오락가락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비가 눈으로 변하여, 앞집의 지붕과 도로변의 자동차들이 하얗게 눈을 이고 있다. 대문을 나설 때는 눈은 그쳐 있지만,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어, 포근한 날씨에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걱정이다.


하지만 8시 45분 경, 약속 장소인 연신내 지하철역 3번 출구를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많이 걷히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아니다. 이사회 시산제에 참여하려고 모처럼 많은 대원들이 나오기로 한 날인데, 비라도 주룩주룩 내리면, 스산한 시산제가 될까 걱정이 많았었는데, 참으로 다행이다.


오늘 산행에는 모두 22명의 대원들이 참여한다. 적지 않은 인원이다. 도착이 늦어지는 대원들도 있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어, 예정시간 보다 다소 늦게, 일행은 송추 행 버스 오른다. 버스가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 길로 접어들자, 도로변의 나무들이 하얀 눈을 소복이 이고 있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설경이 아름답다. 이곳에는 밤사이에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는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고, 많은 등산객들이 내린다. 눈앞에 눈 덮인 뾰죽한 의상봉이 커다란 모습으로 검은 구름을 이고 우뚝 솟아 있고, 그 왼쪽으로 원효봉이 부드럽게 누워있어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가히 명산의 영기(靈氣)가 듬뿍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이다.


9시 5분 경 버스는 솔고개에 도착하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일시에 함께 하차한다. 우리 일행은 들머리 너른 공지에 모여,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스틱을 펼치는 등 산행 준비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산행 준비를 한 산행 들머리 공지의 풍광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50) 솔고개 도착, 산행준비-(9:55) 산행시작-(10:14) 325m봉-(10:26) 바위 전망대-(10:46) 상장봉 도착, 시산제 준비-(11:10~12:55) 시산제 및 중식-(13:30) 565m봉-(14:05)-우이령 갈림길-(14:34) 계곡-(14:47) 우이령 도로-(14 :52~14:55) 부대 앞 -(15:40~16:02) 4거리 안부-(16:06) 542m봉-(16:08) 계단 길-(16:11) 도봉 매표소 갈림길-(17:20) 도봉산 매표소』 마루금 약 4시간 20분, 시산제 및 중식 약 2시간, 날머리 약 1시간 10분, 총 7시간 30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상장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은 온통 하얀 눈꽃 길이다. 아마도 올 겨울 마지막으로 즐기는 설경이겠다. 지난해 말 영봉 구간의 휴식년제가 종료되어서인지, 상장능선을 찾는 등산객들이 부쩍 늘어, 상장봉으로 이어지는 등산객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설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등산로에서 벗어나면, 순식간에 등산객들 뒤로 밀려버려, 우리 일행과의 거리가 생기고, 일행을 따라 잡기위해, 앞에 늘어선 등산객들을 추월하기가 무척 신경이 쓰인다.

눈꽃 길에 줄을 이은 등산객 행렬


10시 14분 폐타이어 봉으로 알려진 325m봉에 오른다. 좁은 공간은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눈 덮인 아름다운 소나무 몇 그루를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자리를 떠서, 앞선 일행을 뒤 쫒는다. 이윽고 바위 전망대 위에 선다. 하늘은 맑게 개어, 멀리 노고산이 뚜렷하지만, 눈앞의 북한산에는 심술궂은 구름 한 덩이가 인수봉과 백운대 정상 부근에 걸려 있어 조망을 방해한다.

눈꽃 핀 소나무

폐타이어 봉에서 본 푸른 하늘과 눈 쌓인 청솔

전망바위에서 본 노고산

10시 46분 경, 상장봉(上長峰) 너른 공지에 이르니,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시산제 현수막을 거는 등, 시산제 준비에 분주하다. 돗자리가 깔리고, 산제(山祭)행사에 익숙한 무구(無垢) 대원이 제물을 진설한다. 대원들이 분담해서 가져온 삶은 돼지고기, 시루떡, 홍어회, 각종 과일과 포 등 정성이 깃든 제물들이다.

시산제 준비

상장봉에서 본 북한산


나에게는 제물을 분담시키는 대신, 축문을 준비해오라는 주문이다. 시산제 축문은 한문식, 국문과 한문의 혼용식, 그리고 국문식의 3가지 유형으로 틀이 잡혀, 이미 명문(名文)들이 소개돼 있어, 따로 작성할 필요는 없고, 알맞은 것을 선택하면 된다. 한문식은 이제는 통용이 되지 않는 시대이니 이를 제쳐놓고, 국문식으로는 산정산악회 정기원 대장님이 홈 페이지에 소개한 명문을 선택하고, 혼용식에서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 우리 상황에 맞게 부분 수정을 가한다.


시산제 축문 절차에서는 축문의 내용보다도 축문의 낭독이 보다 더 중요하다. 산신님의 감응을 불러올 수 있게, 뚜렷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낭독을 해야 한다. 축문 준비에는 이런 낭독자 선정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멋대로 확대해석을 한 나는, 우리 대원들 중에서, 그럴 듯한 낭독자를 물색해 본다. 오래 찾을 것도 없다. 꾀리의 원조, 우정 대원이 적임자다.


우정 대원에게 2가지 원고를 메일로 보내고, 전화를 한다. 낭독하기 편한 축문을 선택하여, 읽기 연습을 하라고 부탁한다. 즉각 답신 메일이 들어온다. 국문식이 마음에 드니, 달걀 한 판을 먹으며 목소리를 다듬어 연습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퉁"치니, "땅"하는 반응이 좋다.


11시 10분 경, 사회자 지헌(芝軒) 대원이 개회를 선언하고, 조난 산악인에 대한 묵념, 그리고 산악인 선서를 낭독한 후, 제주 신근철 회장남이 강신을 위한 잔을 올리자, 한 줄기 강한 바람이 일어 눈가루를 흩날린다. 이어서 신 회장님은 엎드려 배하고, 우정 대원이 웅혼한 목소리에 바이브레이션까지 섞어서 호소력 있게 축문을 낭독한다. 이렇게 엄숙하게 진행된 오늘의 시산제는, 신 회장님의 회원들에 대한 인사 말씀에 이은, 사회자의 폐회 선언으로 막을 내린다.

시산제를 마치고 1

시한제를 마치고 2


그 많아 보이던 제물과 술이 바닥이 나고, 라면까지 끓여 포식을 한 대원들이 상장봉을 말끔하게 정돈한 후, 1시 50분 경,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이제는 시간이 꽤 경과한 후라, 등산객들도 뜸하다. 우리 일행은 눈 덮인 암릉길을 포기하고, 우회로를 택한다. 눈 쌓인 우회로는 맑은 날의 암릉길보다 훨씬 더 힘이 든다. 4봉까지 우회하는 험한 길, 곳곳에서 아름다운 북한산과 멀리 도봉산을 조망한다

전망바위에서 멀리본 도봉산

전망바위에서 본 제 2봉

전망바위에서 본 북한산


1시 30분 경, 제 5봉(565m)에 오른다. 뒤 돌아보면, 상장봉에서 4봉까지 이어지는 상장능선의 연봉들이 아름답고, 왼쪽으로 멀리 사패산, 도봉산의 여성봉, 오봉, 그리고 여타 주요 봉우리들이 가까워 보인다. 남쪽으로 상장능선의 제 9봉이 올돌하고, 오른쪽으로 영봉, 그리고 웅장한 북한산이 이어진다.

5봉 오르다 본 2봉, 3봉, 4봉

5봉에서 본 6봉


2시 5분, 우이령 갈림길, 군사지역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 앞에 대원들이 모두 모인다. 대원들이 다 모이자, 잭 대장을 선두로, 팻말 옆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가파른 내리막을 조용히 내려선다. 아마도 정맥 마루금은 능선을 따라, 부대를 거쳐 우이령 마루턱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길의 통과가 불가능해 지자, 정맥꾼들이 개척한 등산로는 이처럼 골짜기로 떨어져, 부대를 우회하는 모양이다. 눈 쌓인 가파른 내리막이 미끄럽기는 하지만, 등산로는 뚜렷하게 이어진다.

우이령으로 내려서는 대원들


골짜기로 내려서면서 오른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상장능선 제 9봉을 조망하고, 그 옆으로 눈 덮인 제 8봉의 암릉에 모여 있는 등산객들을 올려다본다. 2시 34분 등산로는 오른쪽 계곡으로 굽어지더니 얼어붙은 개울을 따라 이어진다. 두텁게 얼은 얼음위에 눈이 덮여 무척 미끄러운 길이지만, 두꺼운 얼음을 뚫고, 군데군데 맑게 흐르는 물이 보여, 이미 이 계곡에도 봄이 와 있음을 실감한다.

제 9봉

제 8봉

계곡의 봄


2시 47분, 도봉산 오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우이령 도로에 대원들이 재집결한 후,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부대 앞에 이른다. 잭 대장이 앞서 나가, 초소를 지키는 순경들에게 경위를 설명한다. 초소 경관은 잭 대장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우이령 마루턱은 통행이 불가능하니, 부대 앞 사면을 올라, 우이암으로 빠지거나, 송추로 내려가는 길 뿐이라고 설명한다. 부대 안에서 누런 개, 한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우리들을 반긴다.

우이령 도로에서 본 도봉산 오봉

도로 변 주위의 사방사업 기념비

도로를 따라 부대 초소로 접근하는 대원들


우리들은 초병들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조용히 우이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길가 나뭇가지에는 오래되지 않은 산행리본이 몇 가닥 걸려 있어, 정맥꾼들이 수시로 지나는 길임을 알 수 있겠다. 우이암으로 향하는 길이 가팔라진다. 시야가 트이는 산 사면에서 뒤를 돌아본다. 북한산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지나온 상장능선은 5봉에서 8봉까지 선명한데, 영봉이 황혼 속에 평화롭다. 가히 한 폭의 그림이다.

우이암으로 오르는 길

뒤돌아본 상장능선 - 왼쪽이 제 8봉

석양 속의 영봉


한 겨울 동안, 산행을 쉬다가, 모처럼 따라 나선 여자 대원들이 힘들어 하고, 후미 팀의 발 걸음이 점차 늦어진다. 3시 40분 경,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곳을 지나 안부에 내려선다. 건너편 542m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우정 대원이 기다리고 있다. 잭 대장은 542m봉으로 오르고, 북한산을 잘 아는 화봉 대원이 이끄는 선두 구릅은 왼쪽 우회로를 택해 진행했으니, 후미 팀을 기다렸다가 왼쪽 우회로를 거쳐, 도봉산 매표소로 하산하라고 지시한 후, 우정 대원은 곧바로 542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달려가 버린다.

출입금지 팻말

542m봉 왼쪽 우회로


할 일 없이 4거리 안부에서 후미를 기다린다. 지도를 꺼내보니, 오른 쪽은 우이동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약 10분 후, 고봉 대원이 오솔길 대원과 함께 안부로 내려선다. 왼쪽 우회로를 통해, 일행을 뒤 쫓으라고 일러주고, 다시 후미 팀을 기다린다. 다시 10여 분이 지나자, 신 회장이 7~8명의 후미 팀을 이끌고 나타난다. 후미를 챙기는 모습이 역시 회장답다.

 

상황을 설명하고, 한북정맥을 하는 대원들은 마루금인 542m봉으로 오르고, 그렇지 않은 대원들은 왼쪽 우회로를 택하자고 제안을 한다. 심천대장, 지헌부부, 백마 탄 왕자, 그리고 나는 마루금 길을 택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우회로로 접어든다. 4시 6분 542m봉에 올라 우이암을 카메라에 담고, 계단길을 내려서며, 지나 온 상장능선을 뒤 돌아 보고, 눈앞에 전개되는 아름다운 도봉산 연봉들을 조망한다.

 

우이암

가까이 보이는 도봉산

도봉 매표소 갈림길 이정표


4시 11분, 도봉산 매표소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 선다. 이로서 오늘 한북정맥 마루금 산행은 끝난 셈이다. 이윽고 왼쪽으로 우회 했던 대원들이 도착하여 합류하자, 모두 함께 보문능선을 거쳐, 하산을 시작한다. 5시 20분 경, 일행은 도봉산 매표소를 지나서, 뒤풀이 장소인 오리고기 전문점으로 향한다.

 

 


(2006. 3.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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