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기 전 저녁 무렵, 도산공원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강아지 종류도 다양하다. 강아지를 끌고 나온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자기 집 강아지는 이러이러한 버릇이 있는데, 댁의 강아지는 어떠냐? 는 식으로 "개 소리"가 그칠줄 모른다. 군대 다녀 온 사람들이 군대이야기가 시작되면 끝이 없는 것과 흡사하다.
어느 날 도산 공원에 견공 출입금지 패말이 붙었다. 짱아가 만으로 1년도 채 못됐을 때의 일이다. 이래서 짱아의 도산공원 시대가 막을 내린다.
집에서 가까운 동현 아파트 단지가 짱아의 새로운 산책 코스가 된다. 아파트 단지가 크지 않아 단지 안에는 차량 왕래도 많지 않고 비교적 조용하다. 잔디가 깔린 화단도 조성돼 있어 풀 냄새를 좋아하는 짱아에게는 안성마춤의 산책코스다. 뒷문으로 들어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돈 후 다시 뒷문으로 나온다.
강아지는 생후 1년쯤에, 먹성도 좋고 몸을 많이 움직이려든다. 한창 클 때라,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이런 놈을 목줄을 묶고 다니려니 딱한 생각이 든다. 집사람은 반대하지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목줄을 풀어준다.
어느 날 아파트 단지를 돌고 후문 쪽으로 나오는데, 짱아가 보이질 않는다. 집사람과 이야기를 하느라 잠깐 한눈을 판 짧은 순간에 없어진 거다. 집사람에게는 단지 안쪽을 둘러 보라 이르고, 나는 "짱아야, 짱아야 ! "부르며 아파트 단지를 나와 집 쪽으로 뛰어간다.
"강아지 찾으세요?" 지나가던 여학생이 묻는다.
"그래요, 강아지 봤어요?" 하니까,
"조금 전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던데요." 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로 되돌아 뛰어 오니, 짱아가 집사람 발아래 벌러덩 누워 있다. 평소에는 땅에 앉지도 않던 놈이, 땅에 누워서,집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다. 일으켜 안고 보니,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눈 아래 털도 흠뻑 젖어 있다. 아 ! 강아지도 눈물을 흘리는구나.가슴이 찡~해 온다.
재현이가 2년 반만에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귀국한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면서 집사람은 짱아가 제 형을 알아볼지가 무척 궁금하다. 이윽고 재현이가 카터를 밀고 나온다. 체중이 늘었나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 머리는 길게 길러 뒤로 묶은 꽁지 머리다.
짱아를 내려 놓는다. 짱아가 제 형에게 다가가, 냄새를 킁킁 맡는 것 같더니, 발 밑에 벌러덩 눕는다. "짱아야, 잘 있었니?"하고 재현이가 짱아를 들어 올려 안는다. 또 짱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두 번째 보는 짱아의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