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정 선배께서 전화를 주셨다.
"내일은 오전 내내 비가 오고, 오후 늦게나. 갠다는 예보지요?" 남쪽에는 제법 강수량도 많다는데, 우중산행을 할 거요? 나는 내일 아침 날씨를 보고, 산행여부를 결정할 터이니, 못 가더라도 기다리지 말아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지만,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친 모양이다. 마루금 산행의 가장 큰 재미는 조망인데, 비 오는 날에는 그 재미를 볼 수 없으니, 우중산행을 망설이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잘라먹기를 하며 종주산행을 할 경우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를 않고 정해진 일정을 따르게 된다. 결간한 구간을 나중에 땜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1일(화).
우중산행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화요맥"을 따라 수도지맥 마지막 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기미재-솜등산(270.5m)-율원고개-절골봉(302m)-바람재-성산(205.7m)- 청덕교』로 도상거리는 약 15Km 정도다.
마루금은 경남 합천군 쌍계면과 덕곡면, 청덕면의 경계를 따라 동남방향으로 이어져 황강하구로 향한다. 거리는 다소 있지만, 고도는 200m~300m가 고작이다. 비온 뒤에 더욱 청정한 송림 능선이 시원하고, 안부에는 잡목과 넝쿨들이 바쁜 걸음을 방해한다. 철사 줄처럼 강인한 넝쿨에 걸려 몇 차례나 몸의 균형을 잃지만, 스틱에 의지해 겨우 나둥그러지는 것은 면한다. 고도가 낮고, 갈림길이 많아, 등로이탈 가능성이 큰 구간이지만, 의외로 선답자들의 표지기들은 많지가 않다.
34명의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비에 젖은 상행선 도로가 모처럼 깨끗해 보인다. 비는 오지 않지만, 여전히 낮게 드리워진 비구름이 검단산의 허리를 휘감고 있다. 논마다 가득 가득 채워진 물은 보는 이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 때문인가? 신록이 아름다운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다 깜박 잠이 든다. 인삼랜드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11시 41분, 기미재 쉼터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41) 기미재 쉼터-(11:42) 산행시작-(11:48) 강양이씨묘-(11:52) T자, 좌-(12:10) 안부-(12:19) 솜등산-(12:30) 273.5m봉-(12:34) 불탄 가족묘-(12:39) 갈림길, 좌-(12:50) 안부-(12:52) 갈림길, 좌-(12:53) 조망 좋은 무명봉-(12:55) 쇠락한 가족묘-(13:02) 176.8m봉, 우-(13:08) 율원고개-(13:28) 도로 버리고 고랑큰달음산 진입-(13:33~13:50) 고랑큰달음산/중식-(13:59) 능선분기봉, 좌-(14:02) 236m봉/산불감시초소-(14:08) 가족묘-(14:16) 밭-(14:22) 임도-(14:30) 무덤봉-(14:32) 시멘트도로 버리고 왼쪽 숲으로-(14:38) 무명봉-(14:41) 안부-(14;46) T자, 우-(14:54) 절골봉-(15:17) 부수봉 삼거리, 우-(15:22) 삼각점<창녕 320>-(15:29) 필봉-(15:39) 작은 필봉-(15:49) 새로 만든 임도-(15:59) 289m봉-(16;05) 바람재-(16:12) 236m봉-(16:29) 안부-(16:33) 무명봉, 직진-(16:35) 무명봉, 우-(16:36) 안부 사거리, 직진-(16:40) T자, 우-(16:46) 무명봉-(17:06) 성산-(17:13) 144m봉-(17:34) 65m봉-(17:36) 청덕교-(17:45) 버스』중식 17분 포함, 총 6시간 2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907번 지방도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선 후, 표지기들의 안내에 따라 산길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비온 뒤의 푸른 나뭇잎들이 더욱 싱싱하고 야들야들해 보인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지만 비는 더 올 것 같지 않고, 시계(視界)도 양호한 편이라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11시 48분, 강양 이씨(江陽李氏)묘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11시 52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다 무덤가에 핀 아름다운 엉겅퀴 꽃을 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기미재
비온 뒤의 송림 숲
무덤가의 엉겅퀴
12시 10분, 잡목과 넝쿨이 무성한 너른 안부를 지난다. 누런 넝쿨과 새싹이 돋는 잡목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몇 차례나 넝쿨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는 발을 높이 들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한 여름 잡목이 더욱 더 무성할 때 이곳을 통과하려면 진땀 꽤나 흘려야 할 것 같다.
잡목과 넝쿨이 뒤엉킨 너른 안부
12시 19분, 솜등산(270.5m)에 오른다. 잡목이 무성한 정상에는 표지기들이 몇 가닥 걸려 있을 뿐, 별다른 표시는 없다. 솜등산을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12시 30분, 273.5m봉에 오른다. 좌우로 등산로가 보인다. 왼쪽은 경상남북도의 도계를 따라 유천령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이다. 오른쪽 지맥길로 내려서다, 12시 34분, 불탄 흔적이 뚜렷한 여러 기의 무덤가에서서 노구산과 소학산을 바라본다. 아래 위, 좌우로 질서 있게 배치 된 10여기의 무덤, 그리고 스텐으로 만든 상(床)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집안의 묘인 것이 틀림없는데 아마도 최근에 성묘를 왔다가 실수로 불을 낸 모양이다. 혹은 의도된 방화인지도 모르겠다. 주위는 말짱한데, 묘역만 달랑 불에 탄 것이 왠지 수상하다.
불탄 무덤가에서 본 노구산과 소학산
불탄 묘역
12시 39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12시 50분, 억새가 무성한 안부를 지나, 2분 후,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돈다. 12시 53분, 조망이 트인 고도 220m 정도의 봉우리에 올라 주위를 조망한다. 120도 방향으로 다남산, 180도 방향으로 부수봉, 80도 방향으로 소학산이 보인다. 12시 55분, 봉분이 낮게 주저앉은 쇠락한 무덤들이 있는 완만한 사면을 내려서고, 1시 2분, 삼각점이 있는 176.8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다남산
소학산
1시 8분, 율원고개 삼거리에 이른다. 1034번 지방도로와 군도가 지나가는 이 고개는 쌍책면과 덕곡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고개 주변의 조경이 아름답고, 왼쪽으로 보이는 소학산과 덕곡면도 그림 같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군도를 따라 걷는다. 이 도로가 바로 마루금이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먼 산과 사양리가 내려다보인다. 1시 28분, 도로가 왼쪽으로 크게 굽어지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임도로 들어서서, 바로 왼쪽 절개지를 타고 올라, 고랑큰달음산으로 향한다.
율원고개
소학산과 덕곡면
군도를 따라 오르는 대원들
도로를 걷다 오른쪽으로 본 사양리 방향
도로를 버려야 하는 지점- 고랑큰달음산 입구
1시 33분, 밋밋한 능선 위에서 선두그룹이 식사를 하고 있고, 주발대장이 도착하는 우리들을 반가이 맞이한다. 고도 220m 정도의 고랑큰달음산이라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대원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선두는 30분 천천히 걷고, 후미는 10분 서둘러라."라는 "화요맥"의 산행준칙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고랑큰달음산에서 거의 모든 대원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
1시 50분, 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계속한다. 밋밋한 고랑큰달음산에서 자칫하면 직진하여 서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루금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크게 꺾여 내린다. 사면(斜面)같이 널찍한 능선에, 표지기들도 눈에 띄지 않아, 주의하지 않으면 둥로이탈을 하기가 십상인 곳이다. 아마도 주발대장은 이런 점을 감안하여 고랑큰달음산에서 점심상을 차린 모양이다. 내리막을 거쳐, 1시 59분,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2시 2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36m봉에 오른다. 초소에는 아무도 없고, 조망이 일품이다.
산불감시초소
부수봉
다남산
소학산
아름다운 송림 숲 사이로 등산로가 뚜렷이 이어진다. 마을이 가까운지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2시 8분, 가족묘를 지나며 정면으로 부수봉을 보고, 2시 12분, 누렇게 마른 넝쿨더미를 헤집고 올라, 2분 후, 밭에 이른다. 마을과 다남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다시 숲을 통과하여 밭으로 나온다. 이번 밭에는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푸른 작물(作物)이 질서 있게 심어져 있다.
가족묘를 지나며 부수봉을 보고
마른 넝쿨
밭, 골짜기 마을, 다남산
푸른 작물이 자라는 밭둑 지나고
왼쪽으로 부수봉을 보며 밭둑을 따라 걷는다. 2시 22분, 임도로 내려서고, 묘비 4개가 나란히 서있는 특이한 묘를 지나, 2시 30분, 약 220m 정도 되는 무덤봉에 올라, 눈앞의 시멘트 도로를 걷는 대원들을 굽어본다. 2시 32분, 고갯마루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봉우리 두어 개를 지나, 능선에 서니, 시야가 트이며, 절골 마을과 절골 소류지가 내려다보이고, 절골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네 개의 묘비가 나란히 서 있는 무덤
시멘트 도로를 걷는 대원들
절골과 절골 소류지
올려다 본 절골봉
2시 54분, 절골봉을 넘고, 이어 봉 두 개를 넘으면서, 부수봉 정상과 필봉을 조망한다. 3시 17분, 부수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왼쪽으로는 머리가 벗겨진 부수봉(330.6m)을, 오른쪽으로는 성산리와 그 뒤로 황강을 본다. 3시 22분, 능선에 박힌 삼각점<창녕320, 2002 재설>을 지난다. 부수봉에 있어야할 삼각점이 엉뚱한 곳에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진위는 확인할 수가 없다.
묘 자리를 위해 머리가 벗겨진 부수봉
성산리와 그 뒤로 황강
3시 29분, 필봉(326m)에 오른다. 조망이 좋다. 왼쪽으로 작은 필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쌍책면과 청덕면의 경계를 이루는 312m봉이 뾰족한데 그 사이로 화동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필봉에서 본 오른쪽의 뾰족한 312m봉
작은 필봉을 오르는 대원들
3시 39분, 능선 분기봉인 작은 필봉(265.5m)에 오른다. 지맥 마루금은 왼쪽으로 내려서서 동쪽으로 향하지만, 오른쪽은 면 경계를 따라 남진하여 312m봉으로 이어진다. 발걸음이 빠른 몇몇 대원들이 배낭를 내려놓고, 봉 따먹기를 하러 오른쪽으로 향한다.
3시 49분, 새로 임도를 만드느라 어지럽게 벌목한 곳으로 내려서고, 새로 만든 임도를 따라 정면의 봉우리로 향하다, 뒤돌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비가 부실 부실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한 비가 아니라 배낭커버도 씌우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다. 3시 54분, 어린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 후, 3시 59분, 289m봉에 오르고, 이어 왼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서서, 4시 5분, 바람재에 이른다.
새로 만든 임도
지나온 길- 필봉(좌)과 작은 필봉, 그리고 부수봉(우)
바람재
4시 12분, 236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급하게 내려선다. 정면으로 가야할 능선과 오른쪽으로 마을이 보인다. 빗발이 제법 굵어진다. 안부에 내려서서, 배낭커버를 씌우고, 방수 재킷을 꺼내 입으며, 뒤돌아 236m봉을 본다. 236m봉은 능선 분기봉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소례리 쪽의 205m봉으로 이어짐으로, 오른쪽으로 급하게 내려서야 한다. 등로이탈 가능성이 큰 곳이다.
성산 방향의 조망
뒤돌아 본 236m 능선 분기봉
어린 소나무 숲 사이로 등산로가 뚜렷하게 이어진다. 봉우리 두 개를 넘고, 4시 36분, 안부 사거리에 내려서서 직진한다. 4시 40분, T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빗발이 굵어지고, 숲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5시, 삼각점<창녕 450, 1983 재설>이 있는 성산(205m)에 오른다.
성산 오르는 길- 빗발이 굵어지고 안개가 자욱하다
묘가 있는 너른 공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5시 13분, 144m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능선을 따라 전선이 이어진다. 5시 26분, 고도 약 100m 정도의 봉우리를 넘어서자,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황강이 보인다. 어느 사이에 그쳤는지 비도 그치고, 유난히 신록이 아름다운 길을 지나, 5시 34분, 고도 약 65m 정도의 능선을 지나면서 황강과 청덕교를 굽어본다. 다리 아래에 산악회의 붉은 버스가 보인다.
아름다운 신록 사이로 등산로는 이어지고
황강과 청덕교
황강
5시 36분,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선다, 수도지맥 마루금은 이 도로에서 끝난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황강과 낙동강이 합치는 합수지점은 청덕교에서 둑방길을 따라 약 1Km 정도 하류로 더 내려서야 하니, 왕복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하산 후에 쫑파티가 있고, 파티 후에 가야할 길이 천리라 수도지맥 종주는 이곳에서 마감하고, 청덕교를 건너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다리 아래로 향한다.
청덕교 앞교통 표지판
청덕교를 건너고
청덕교 돌표지
5시 45분, 청덕교 아래 정차 해있는 버스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대원들과 막거리 잔을 주고받으며 수도지맥 완주를 자축한다. 강 위원장은 오늘의 쫑파티를 위해 인근에서 구입한 토종닭으로 백숙을 준비하고 있다. 이윽고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고, 양계장의 닭과는 그 맛이 다른 토종닭 백숙을 즐기면서, 한 시간이 넘게 파티는 계속된다.
(200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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