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져도 사방은 여전히 훤하다. 하지만기온은 많이 떨어진다. 추위를 느낀 여자들이 먼저 자리를 뜨고, 여전히 남아 있던 사람들도 아쉬움은 남지만 내일의 강행군을 생각하고, 뒷정리를 한 후 자리를 파한다.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이다.


 

7월 1일. 달이 바뀌었다. 아침 산책길에 여러 팀을 만난다. 어제는 모두 잘 주무신 모양이다. 송달의 아침 경치가 아름답다. 어제 가든파티를 즐겼던 자리에 다시 서서, 송달의 풍광을 마음 속에 담아 둔다. 일행은 브릭스달(Briksdal)의 빙하를 보러, 서둘러 7시 50분 경 호텔을 출발한다.

<아침에 다시 찾은 어제 밤파티장>

달리는 버스에서 장 여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르웨이는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민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에 시달리거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그리고 이재민들에게만 이민이 허용된다. 오슬로에서 흑인이나 중동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입양아들은 많다고 한다. 장 여사가 사는 베르겐에도 입양아 협회가 있고, 협회회장은 한국인 남매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고 한다.


 

하루는 장 여사가 협회회장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는다. 입양아들에게 한국을 알려 달라는 부탁이다. 정성껏 자료를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한국을 알려준다. 먼 이역 땅에서 핏줄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한국을 알려하고, 한국을 알려 주려한다. 한국을 알려주는 장 여사의 가슴속이 싸-아 해 온다.

 

입양아 부모들과 모여서 한국의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다. 핏줄은 못 속이나 보다. 아이들이 모두 한국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다. 때로는 입양아 부모들이 그 동안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김치도 담그고 잡채도 만들어 놓고, 장 여사를 초대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입양을 하려면 엄격한 기준의 입양자격을 따야한다고 한다.

 

산으로 접어들면서 창 밖의 경치가 달라진다. 골짜기에 빙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이고, 커다란 호수를 끼고 달릴 때는 하늘과 구름과 눈 덮힌 산들이 호수에 잠겨있다.

<산 중턱에 걸린 빙하>


<호수에 잠긴 하늘과 구름과얼음 쌓인 산>

버스는 2시간쯤 달린 후 휴게소에 머문다. 도로 위로 멀리 얼음에 덮인 큰 산맥이 보인다. 장 여사가 도로 변에 세워진 안내판을 통해 여자들에게 현재 위치와 갈 곳을 설명해준다.

<얼음 덮힌 국립공원이 길 위로 멀리 보인다>


<현재 위치를 설명하는 장 여사>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커다란 호수가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빙하가 호수로 흘러 내리는 것이보인다. 장 여사가 보야(Boya) 빙하라고 귀 뜸해 준다.

<보야 빙하>

 

11시 경 브릭스달에 도착한다. 3면이 절벽이다. 빙하로 가는 길은 왼쪽 계곡으로 오른다. 입구에 "요스테달스브린(Jostedalsbreen) 국립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지도를 보면 이 국립공원이 꽤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걸으니 빙하를 왕복하는 말 마차와, 무개 찝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전에는 마차들만 있었는데, 사고가있은 후부터는 찝차도 운행한다고 한다.

<빙하로 가는 마차>

우리 일행은 찝차를 타고 오른다. 무릎을 덮으라고 담요를 한 장씩 준다. 하지만 담요를 덮어야 할 정도로 춥지는 않다. 차는 계곡을 따라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기어오른다. 빙하에서 흘러 나리는 개울을 건널 때에는 차가운 물보라가 차를 뒤덮는다. 너른 공터가 나타나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야한다.

<마차 종점 - 내려가는 차를 기다리는 일행>

숲 사이를 걸어 골짜기로 깊숙이 들어서니 커다란 빙하가 눈앞을 막아선다. 앞에 보이는 능선 안부에서부터 쏟아져 내린얼음 덩어리가 계곡을 가득 메웠다. 생전 처음 보는 빙하다. 푸른빛이 감돈다. 그 동안 오면서 노르웨이의얼음 덮인 산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기대했던 것만큼 신비롭지는 않다. 빙벽등반 장비를 갖추고 가이드를 따라 빙하를 오르는 사람들이 저 멀리 보인다. 이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브릭스달 빙하>

다시 찝차를 타고 내려와 1시 30분 경 점심식사를 한다. 기념품과 토산품을 파는 업소들에는 한국어로 할인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2시 40분 경 달스니바(Dalsnibba)로 향한다. 달스니바를 일정에 넣은 것은 김선인 여사가 여행사에 강하게 요구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3시를 넘기자 트롤 길로 접어든다고 장 여사가 알려준다. 날씨는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버스는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달려간다. 정말로 금방 트롤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트롤 길>

달스니바로 오르는 길은 비포장 길이다. 길 폭이 좁아 차들이 교행할 때에는 한 쪽은 멈추어 기다려야 한다. 굽이가 많아 버스처럼 큰 차는 노련한 기사만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도로 상태가 이러니 비나 눈이오면 도로가 봉쇄된다. 정상에 올라선다 참았던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고도 1,476m. 주위에는 더 높은 곳이 없다. 게이랑게 피오르드가 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인다. 장남감 같은 차들이 구절양장, 굽이굽이 휘어진 길을 기어간다. 시커먼 바위산들이 얼음을 이고 흉물스럽게 엎드려있다. 어제 파티에서 남은 맥주를 돌려 마신다. 여자 분들도 사양하지 않는다. 똑같은 술인데도, 절경에 취해서인지, 그 맛이 유별나다.

<달스니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게이랑게 피요르드>

<달스니바 전망대 길>

달스니바 전망대를 떠나 돔바스(Dombas)로 향한다. 빙하가 녹은 물이 급류를 이루며 길을 따라온다. 이 급류에서 래프팅을 즐긴다고 한다. 버스는 4시 45분 경 롬(Lom)에 도착, 휴게실에 들른다. 롬에는 천년 전에 지은 목조 교회가 잘 보존돼 있다. 7시경 오따(Otta)를 지난다. 13세기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도시 사람들이 모두 죽고 8명만이 겨우 살아 남았다해서 그 이후 오따라고 불리 운다고 한다. 돔바스까지는 47Km, 산 속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의 풍경이 목가적이다.


 

7시 40분 돔바스에 도착한다. 고도 659m. 주위에 캠핑 장이 많다. 역시 국립공원이다. 도블리 젤(Dovree Jell) 호텔에 여장을 푼다. 이따금씩 빗방울이 후둑거린다. 넓은 식당은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장 여사가 말한 부라운 치즈, 청어, 연어 등이 차려진 현지식 뷔페로 저녁을 마치고, 테라스로 옮겨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긴다.


 

커피를 마시고, 호텔 주변을 산책한다. 정원들이 널찍널찍하다. 울타리도 없는 집이 많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개인집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잔디가 푸른 정원에는 예외 없이 꽃밭이 곱게 가꾸어져 있다. 연 이틀 12시간 이상 강행군을 했으면서도 노르웨이의 자연에 취했는지 일행은 피로한 줄도 모른다.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서는 2인조 밴드가 생음악을 연주한다. 여자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즐긴다. 호텔 사우나 장에 가본다. 시설이 보잘 것 없다. 사우나 실이 달랑 하나, 샤워 꼭지가 몇 개 벽에 붙어 있고, 타월도 방에서 가져와야 한다. 사우나를 마치고 로비로 나오니 김선인 여사와 박정재 여사가 춤을 추고 있다. 집사람은 방에 올라가 쉬는 모양이다.

<돔바스 저녁 산책>

7월 2일.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달스니바로 향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새벽같이 출발한다. 달스니바에 오를 수 있을까? 장 여사가 걱정을 한다. 언젠가는 교회 분들이 단체로 여행을 왔었다고 한다. 아침에 버스에 타면 제일 먼저 날씨 좋게 해달라고 합동으로 정성껏 기도한다. 장 여사도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분들이 노르웨이에 체류하는 동안, 내내 비가 와서 아주 민망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팀은 어떻게 된 게, 줄곧 날씨가 좋은 데다, 비가 오더라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오고, 내려서 관광 할 때는 그치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단다.


 

오늘은 스웨덴 칼스타드(Karlstad)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데도, 9시 30분이 돼서야 느긋하게 출발한다. 버스에서 장 여사 이야기가 계속된다. 첫 아이를 갖고, 입덧할 때, 남편과 같이 시내를 걷는다. 과일을 파는 청과상을 지나친다. 문득 신 것이 먹고싶어, 과일을 사자했지만, 비싼 걸 왜 사냐고 지나치는 남편이 한없이 야속했던 일. 출산을 하고, 병원에서 주는 토스트를 먹는데, 미역국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고, 서럽기는 왜 또 그렇게 서러웠던지.... 이런 일들은 아직까지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고 목소리가 젖어든다.


 

장녀가 되어 외국인과 결혼,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동생들에게 미안하단다. 하지만 형부와 고스톱 한번 못치는 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다가도, 모처럼 마련 해준 선물을 받으며, 다음부터는 현금으로 달랄 때는 얄밉다고도 한다. 봄, 가을이면 고향생각이 더 난다고 한다. 어머니와 동생을 노르웨이로 부르고, 자신도 한국에 자주 나가기 위한 돈은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돈을 번다고 한다.


 

버스는 12 경 리레함메르(Lillehammer)에 도착하여, 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리레함메르는 조그맣고, 조용한 도시다. 이 도시에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할 때 주민들이 자기가 살던 집은 비싼 돈을 받고 민박으로 내주고, 자기들은 숲 속에서 텐트를 치고 지냈다고 한다. 불필요한 투자를 최소화했다는 이야기다. 올림픽이 끝난 후 민박으로 벌은 소득에 대한 과세가 문제가 된다. 소득세율이 50%다. 주민들의 반발과 불필요한 투자를 막았다는 것이 고려되어 결국 과세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레함메르 거리>

점심식사 후 스키 점프대를 구경한다. 간간이 스키 점프를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스키어는 손을 흔들며 다시 점프대로 향한다. 이 곳은 위치가 높아 리레함메르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름다운 도시다.

<리레함메르 스키 점프대 - 풀밭에서 점프하는 사람이 보인다>

장 여사와는 여기서 헤어져야한다. 오슬로를 거쳐 베르겐의 집으로 돌아간다. 짧은 기간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들도 모두 섭섭해한다. 장 여사가 내리고, 버스는 E6번 도로를 따라 남하한다. 크뢰타에서 E6번 도로를 버리고 2번 도로로 들어선다. 6시 경, 에다 그래스브르크(Eda Glassbruk)에서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넘어온다.


 

버스는 7시 경, 칼스타드에 도착, 중앙역 앞에 있는 컴퍼트(Comfort)호텔 에 멈춘다. 지도를 보니 칼스타드는 꽤 큰 도시다. 호텔은 중심가에 있다. 저녁식사 후 거리를 돌아본다. 쇼 윈도우에 걸려 있는 의상들이 고급이다. 중심가가 틀림없다. 그런데도 인적은 없다. 씨네 프라자도 보이고, 큰 슈퍼도 있다. 슈퍼에 들어서니 드믄드믄 사람들이 보인다. 여자들 먹으라고 과일을 산다.

<칼스타드 - 다리 난간을꽃으로 장식했다>

호텔로 돌아와 여자들은 우리 방에, 남자들은 김광현 사장 방에 모여, 과일 파티와술 파티로 여독을 달랜다.


(2004. 7. 2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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