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반도()

 

 

이베리아반도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교량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 로마는 BC 209경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하여 약 500년 동안 반도를 지배하며, 아프리카로 진출하고, 이베리아반도에 발렌시아, 레온 등 훌륭한 도시를 많이 건설한다. 

세고비아의 수로교()

 

414년 게르만족의 대이동 당시 서고트족이 이베리아반도로 진출, 서고트 왕국(414~711)을 세우면서 로마의 시대는 끝나고, 780년 동안 이슬람 왕국이 스페인 지역을 다스리게 된다.

콜르도바의 모스크()

 

무슬림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킬 자유가 주어졌으나, 12세기에 이르러 종교적 탄압이 시작되자, 북쪽의 기독교 세력들은 13세기 초부터 남진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를 레콘키스타(재정복; 국토 회복 운동)라고 한다.

 

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됐다. 두 사람의 공동 왕국 출범 이후, 스페인은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간의 스페인 내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룬다.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

 

이 시기에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풍부한 지적 유산이 유럽으로 전해져 오고, 무슬림과 유대인 학자들의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스페인의 로마 화된 문화가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와 섞여 스페인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수많은 문화유적들이 전해 내려온다.(이상 위키백과에서 발췌)

 

순례길에서 만난 유산, 유적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노틀담 뒤퐁 성당 (Notre-Dame-du-Bout-du-Pont)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 바욘 대성당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Las Navas de Tolosa) 전투에서 무어인을 격퇴한 기념으로 나바레의 왕, 산초 엘 푸에르테에게 헌정된 성당이다.

 팜플로나 성벽과 프랑스 문

 

16세기의 적들로부터 팜플로나를 지켜주었던 이 성벽은 펠리페 2(1527~1598)가 건설했다. 이 성벽은 1808년 겨울 나폴레옹 군사들의 기지에 의해 단 한 차례 함락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1808218,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자,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꾀를 내어 눈싸움을 하는 척 했고, 이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재미있어 보여, 성벽을 방어하던 스페인 군사들이 이 놀이에 끼기 위해 성문을 연다. 프랑스인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숨겨놓았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 무혈로 성벽을 함락한다.

  팜플로나 대성당

 

대성당의 회랑

 

1397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530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인 이 건축물은 로마네스크식 성당 위에 지어졌는데, 정면은 신고전주의 양식이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회랑이 아름답다. 미술 전문가들에 의하면 팜플로나 대성당의 회랑은 유럽의 고딕 양식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고 한다.

   푸엔테 데 라 레이나 (Puente de Puente la Reina)- 왕비의 다리 1

 

 왕비의 다리 2

 

11세기에 지어진 이 석조 다리는 순례자들이 물살이 거친 아르가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레이나 왕비가 만든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다. 까미노 중에 만나는 수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한다.

 

에스테아(Estella)1090년 산초 라미레스 왕이 에가 강가에 만든 계획도시로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는데, 당시 번성한 상업과 수공업으로 무척 부유한 도시였다고 한다. 에스테야에는 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산 페드로 데 라 루아 성당 (Iglesia de San Pedro de la Rua), 에스테야 중세거리, 그리고 산 마르틴광장을 둘러본다.

  산 페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 de la Rua)

 

산 페드로 성당 건물과 회랑은 12세기 중반 이후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해서 다음 세기까지 계속되고. 이어진 증축과 보수로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성당내부 1

 

 성단내부 2

 

 라 루아 거리

 

 산 마르틴광장

 

라 리오하(La Rioja 주의 주도인 로그로뇨(Logrono)는 품질 좋은 와인과 타파스 요리로 유명하고,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 (Catedral Santa Maria la Redonda), 산티아고 엘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iago el Real), 그리고 산 바르똘로메 성당 (Iglesia de San Bartolome) 등이 유명하다.

   라우렐 골목

 

 중세 분위기의 구시가지

 

 산따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

 

로그로뇨 대성당(La Catedral de Logroño)으로도 불리는 이 성당은 15세기에 지은 르네쌍스식 건물이라고 하는데 곳곳에 고딕 양식도 보이고, 늘씬한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엘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iago el Real),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urus)의 기마상이 있다.

 

  산 바르똘로메 성당

 

로그로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첨두아치의 정문은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고딕양식 건축물에,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물 부분을 재사용했다고 한다.

 

라 리오하 주 터데온 언덕위의 성곽 안에 자리 잡은 나바레떼(Navarrete)는 수많은 중세풍 집들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성모 승천 성당 (Iglesia Asuncion de la Virgen)

 

1553년에 후안 데 바예호와 에르난도 데 미멘사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이후 한참 동안 중지되었다가 1645년에 완공되었다. 내부의 제단화는 리오하 바로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일 뿐만 아니라 17세기 말, 18세기 초 후기 바로크 양식의 모든 경향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영어 안내문(사진 클릭하면 커짐)

 

 성당내부 1

 

 성당내부 2

 

 성당내부 3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Calzada)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갖춰져 있고, 친절한 마을사람들로 인해, 항상 순례자들로 붐비는 마을이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의 아름다운 탑은 카미노의 나침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12세기에 세워져서 13, 15, 18세기에 여러 번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고 한다. 천장을 덮은 궁륭과 성인의 영묘, 주 제단화, 15세기의 기적에서 유래한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는 닭장 등이 유명하다.

  광장

 

 입구

 

 내부 1

 

 내부 2

 

 내부 3

 

 내부 4

 

 내부 5

 

 내부 6

 

 내부 7

 

 내부 8

 

라 리오하에서 제일 놀은 70m탑은 마틴의 작품으로 교황의 명에 의해 건설 되었다. 지금 남은 것은 세 번째 탑인데, 첫 번 째 탑은 번개를 맞아 파괴되었고, 두 번째 탑은 기초에 문제가 있어 철거됐다고 한다. 탑이 성당에서 수 미터 떨어져 지어진 것은 건물기초에 영향을 주는 지하수를 막기 한 것이라고 한다.

   70m

 

안내문

 

15세기에 독일 윈넨뎀 출신의 우고넬이라는 청년이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머물던 여인숙의 딸이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으나, 신앙심이 남달랐던 우고넬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한다. 상심한 처녀는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우고넬의 짐 가방에 몰래 넣고, 그를 도둑으로 고발을 한다. 재판소로 끌려간 우고넬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청년은 유죄 판결을 받고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산띠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음성을 들은 부모가 재판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간다.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비웃으며 말한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먹으려 하고 있었던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나와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 재미있는 전설 덕택에 1993년부터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는 청년 우고넬의 고향인 독일의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게 되고, 산토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우고넬의 결백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성당안의 닭장

 

아헤스(Ages)는 전원 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매력있는 마을이다. 소박한 산타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 (Iglesia de Santa Eulallia de Merida)을 둘러본다.

   산타 에우랄리아 성당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성당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현관이 돋보이며,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유해가 성당의 반석 밑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내부 1

 

 내부 2

 

방어가 용이한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한 부르고스(Burgos)는 중세 때부터 산업이 발전하여 양모 산업을 독점하고, 주교가 상주하는 큰 도시로,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르고스의 구 시가지에서는 흥미로운 유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꼭 들려 볼만한 곳이다.

   산타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

 

부르고스 대성당(Catedral de Burgos)라고도 부르는 이 대성당은 1221년 알폰소 10세와 마우리시오 주교의 후원으로 지은 빼어난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성당의 내부에는 무수한 조각상과 부조, 회화가 소장되어 있다.

 1

 

 내부 2

 

 내부 3

 

 내부 4

 

 내부 5

 

 내부 6

 

 산타 마리아 아치 (Arco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아치는 황제 카를로스 5세를 기리며 16세기에 건설되었다. 성벽을 통해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구로, 이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1943년 스페인의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온타나스(Hontanas), 푸른 밀밭에 둘러싸인 중세풍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전통적이면서도 다양한 옛 건축물 흔적이 남아 있어서 풍성한 역사를 느끼기에 해준다. 성모 승천 성당 (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과 산 안톤 아치 (Arco de San Antón)를 둘러본다.

   성모 승천 성당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산 안톤 아치

 

카스트로헤리스를 향해 가는 까미노에 산 안톤 수도회의 오래된 병원과 수도원 건물의 폐허가 남아있다. 현재는 13~14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들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으며 순례자들은 이 문을 통과한다.

 

중세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카스트로헤리스 (Castrojeriz)에는 오래된 유적과 수도원, 성당, 병원, 저택 등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고. 또한 순례자를 위한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오리온이 있어, 비빕밥 등 한식을 즐길 수 있다.

   (Castillo)과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 (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

 

로마인들이 지었던 성벽 위에 추가로 올린 성으로 스페인의 중요한 중세의 유적 중 하나라고 한다. 산타마리아 부속성당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13세기의 현관, 15세기의 유리 세공품, 13세기의 돌로 만든 채색 성모상 등이 남아 있다.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고딕 스타일의 이 성당은 지금은 13세기의 금은, 상아 세공품과 회화, 조각 작품 그리고 16세기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리온 알베르게

 

중세 순례자 마을인 보아디아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서 성모승천 성당과 심판의 기둥을 둘러본다,

  성모 승천 성당 (Iglesia Nuestra Senora de la Asuncion)

 

16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18세기에 재건축되었다. 르네상스 양식의 봉헌화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이 돋보인다고 한다.

   심판의 기둥 (Rollo Juridiscional)

 

후기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7미터 높이의 기둥이다. 이 기둥은 중세 공개 재판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을 여러 마을로 끌고 다닌 후, 칼을 채워 이 기둥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카미노에 있는 심판의 기둥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다.

 

광활한 밀밭 속에 자리 잡은 프로미스타(Fromista) 마을는 11세기 건축물인 산 마르텐 성당과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산 페드로 성당, 산타 마리아 성당과 성 야고보의 동상 등 종교적인 문화재가 많이 있는 곳이다. 프로미스타가 주요 순례 통과지점이 된 것은 중세에 많은 순례자 병원이 이곳에 건립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스티야 운하 (El Canal de Castilla) 1

 

 카스티야 운하(El Canal de Castilla) 2

 

팔렌시아 평원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스티아 운하는 지금은 관개용수 공급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시작해서 19세기 초반에 끝난 이 운하의 길이는 200Km가 넘는다.

   산 마르틴 성당 (Iglesia de San Martin)

 

11세기에 건립된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성당이다. 늘씬한 탑과 문, 아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당나귀, 음악가, 곡예사, 여러 얼굴 등 각각 다른 장식이 되어 있는 주두와 300개가 넘는 추녀 받침이 독특하다.

 

레온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사이에 있는 만시야 델 라스 무라스(Mansilla de las Mulas)는 중세에는 마을 전체를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쌓아 방어에 주력한 상업도시였다고 한다. 돌로 포장된 거리와 중세풍의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집은 당시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마을 안내도.(사진 클릭하면 커짐)

 

 포소(Pozo)광장

 

 그라시아 성모 성소 (Santuario de la Virgen de Gracia)

 

18세기에 만들어진 성소 건물. 감사의 성모상이 보관되어 있다.

 영문 안내

 

 감사의 성모상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성당과 역사적인 문화유산, 유적들은 빼 놓을 수 없는 아름답고 귀중한 볼거리이다. 하지만 이 방면에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주로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협회의 루트안내를 빌어 유물, 유적의 설명 자료로 사용했음을 밝힌다.

 

앞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하시는 분들께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협회의 루트안내를 적극 권한다. 문장에 다소 세련미가 없어, 읽기에 불편함이 있더라도, 참고 정독하시면 틀림없이 보람을 느끼실 것이다.

 

 

(2018. 9. 2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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