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 본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다락능선에서 본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그리고 포대정상 파노라마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는 “산에 갑시다.”라는 말 대신에, “돈 벌러 갑시다.”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3~4시간씩 산길을 걷다보면, 병원갈 일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뿐인가?
금년 8월 달에는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서울의 경우 한 달 중 22일 동안 비가 내리고, 강수량(354.5mm)도 장마철인 6월, 7월 두 달 사이에 내린 비(336.5mm)보다 많았다고 한다. 비온 날수, 강수량 모두가 기상청 생긴 이후의 신기록이라고 한다. 날씨가 이러니 산엘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8월 18일(수) 정 산악회를 따라 광대산에 간 것이 마지막 산행인 셈이니, 일주일에 두 번은 고사하고, 열흘이 넘게 산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바로 건강에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우선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고 속이 더부룩한 것이 소화도 잘 안 된다. 기온이 떨어진 날,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잠을 자다, 감기몸살에 걸려 꼬박 하루 동안 고생을 한다. (8월 21일, 모처럼의 날씨 좋은 주말을 맞아 토요산악회를 따라 육백산, 이끼폭포를 찾았으나 엉터리 산악회 덕에 산에는 못 가고 바다구경만 한 것은 산행이 아님으로 제외)
8월 마지막 주말에도 거의 전국에 걸쳐 비가 온다고 하고, 이 비는 다음 주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다. 고민이 생긴다. 비를 맞고라도 산엘 가야하나? 다행히 8월 31일(화)에 갈기산을 간다는 산악회가 있고, 그 날의 충청북도 영동의 날씨는 맑겠다는 소식에, 서둘러 산행신청을 하고, 날씨변화를 주시한다.
일요일, 다음 주 날씨를 확인한다. 이게 웬일인가? 갈기산 산행일인 화요일에 영동일대의 한낮 강수확률이 70%에, 강수량은 10미리 정도인데, 비가 온다던 서울 경기지방은 월요일에는 맑겠다는 예보다. 우리나라 기상청예보를 믿을 수는 없지만 다른 대체수단이 없으니 어쩌랴? 기상청 예보에 따라 갈기산 산행을 취소하고, 월요일에 서울근교의 산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2010년 8월 30일(월)
잦은 비 때문에 비를 피하다 보니 월요산행을 다 해보게 된다. 서울근교 산 중에서, 사전준비 없이 언제고 갈 수 있는 가장 만만한 곳이 도봉산이다. 집에서 5분 쯤 걸어, 강남구청역에서 7호선을 타면, 약 1시간 후에 도봉산역에 도착하니 얼마나 편한가? 간단한 행동식과 지도 한 장을 챙기고, 배낭을 메고 나서면 된다.
출근시간이 지난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집을 나선다. 시원하게 냉방이 된 한적한 지하철 안에서 지도를 들여다 보며, 5시간 정도의 코스를 정한다. 다락능선의 스릴 있는 암릉길을 걸으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등 도봉의 멋진 암봉들을 감상하고, 포대정상에 오른 후. 아직 가보지 못한 원도봉계곡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산행코스
도봉산 입구로 들어선다. 버스정류장 뒤로 도봉의 암봉들이 아직 가시지 않은 비구름을 이고 있고, 월요일인데도 도봉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노인들, 아주머니들, 그리고 중장년의 사나이들... 모두 돈 벌러 나온 분들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해병대 동지회에서는 때 마침 입구 쉼터에 6.25사변 사진전을 열어, 북한의 만행과 6.25사변의 비참함을 알리고 있다. 과연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비구름을 이고 있는 선인봉
6.25사변 사진전
10시 26분, 탐방지원센터에 이르지만, 오늘은 시간을 기록할 필요도 없겠다. 구경 할 것 다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가니, 산행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탐방지원센터에 걸린 등산안내도에는 이곳에서 은석암을 거쳐, 다락능선으로 들어서고, 이어 포대정상까지는 도상거리 약 3.7Km에, 1시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적혀있다.
탐방지원센터
광륜사를 지나면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직진하면 도봉서원으로 이어지는 메인 로드이고, 오른쪽이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처음이다. 망월사역에서 다락능선을 타고 포대정상에 오른 적은 여러 차례 있지만,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다락능선으로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메인 로드를 따라 오르고, 여자 등산객 한 사람과 나, 두 사람만이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다락능선 갈림길 이정표
넓은 공터를 지나자, 잘 손질된 돌길이 완만하게 이어지더니, 경사가 급해지며 통나무 계단길로 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훼손이 심한 계단길이다. 등산로 좌우에 로프로 가드레일을 쳐 놓고, 동식물 보호와 생태계 복원을 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걸려 있다. 국립공원답게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락능선 가는 길
통나무 계단길
10시 43분, 이정표가 있는 T자 능선에서 왼쪽을 진행하여 한 동안 넓고 평탄한 능선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비가 와서 계곡물이 많이 불은 모양이다. 왼쪽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중간 중간에 이정표를 세워 놓아 지도를 보지 않아도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좋다. 10시 55분, 연등이 걸려 있는 은석암 입구에 이른다. 암자를 구경하러 들어서려는 데, 암자 쪽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절에 웬 갠가? 신자도 아닌 주제에 암자구경을 하겠다고 들러, 공연히 개만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되돌아 나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T자 능선의 이정표
산책길
은석암 입구
암릉길이 이어진다. 잠시 전망바위에 올라 수락산을 바라보고, 이정표와 우회로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 우회로로 들어선다. 하지만 우회로도 만만한 길이 아니다. 경사가 급한 슬랩에 로프가 드리워져 있고, 앞을 막는 직벽은 용을 써서 기어올라야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닳고 닳은 암릉이 물기를 머금어 미끄럽다.
암릉길
전망바위에서 본 수락산
출입금지 안내판
11시 46분, 원도봉 입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T자 능선에 오른다. 이정표가 있다. (도봉탐방지원센터 2.0Km, 원도봉입구 1.6Km) 왼쪽 부드럽게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걸어,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보라! 도봉의 암봉들이 우쭐우쭐 위용을 뽐내고 있지 않은가? 도봉산에는 도봉의 대표적인 3암봉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View Point)가 여러 곳이 있지만 다락능선에서 보는 것이 가장 가깝고, 가장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선인봉(708m), 만장봉(718m), 자운봉(740m), 그리고 포대정상과 포대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 포대능선 아래로 망월사도 보인다.
이정표
다락능선에서 본, 도봉 3봉과 포대능선
왼쪽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그리고 포대정상
포대능선과 망월사
포대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이 시작된다. 바쁠 것도 없는 길, 잠시 소나무 그늘에 앉아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고, 이어 개구멍 바위를 지나, 전망바위에서 3암봉을 가까이 본다. 실로 장관이다. 12시 53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안부를 지나고, 다락능선의 하이라이트인 급경사 철책 암릉길을 올라, 의정부 시가지와 도봉의 4개 암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개구멍 바위
기암
도봉 3봉
잔교
철책 암릉길
의정부 시가지
도봉 3봉과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오른쪽 신선대
1시 18분, 자운봉 0.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안부에 내려선 후, 마지막 급경사 오르막을 거쳐, 1시 32분, 토치카, 무인산불감시타워, 삼각점 등이 있는 포대정상에 오른다. 이어 강한 햇살이 사정없이 내려 쪼이는 정상을 잠시 둘러보고,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남쪽의 바위덩어리를 카메라에 담고, 북쪽으로 멀리 사패산을 바라본다.
삼거리 안부 이정표
토치카
산불감시타워
삼각점
위태롭게 서 있는 암괴
포대능선과 사패산
점심식사를 할 곳을 찾아 자운봉 쪽으로 잠시 내려선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소나무 아래 조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서, 정상주를 마시고, 가져온 떡으로 식사를 한다. 탁 트인 조망, 이따금 한 두 사람이 지나갈 뿐 한적하고 조용한 암릉, 바람마저 알맞게 불어 시원하다.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따로 없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본 신선대와 뜀바위
서쪽의 오봉능선과 멀리 북한산의 상장능선
식사를 마치고, 이왕 자운봉 쪽으로 내려온 길에 Y자 계곡 앞 전망대까지 가보기로 한다. Y자 계곡을 우회하라는 안내판을 지나, 전망바위에서 Y자 계곡을 굽어보고, 나뭇가지사이로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를 가까이 본 후, 포대정상으로 되돌아선다. 포대정상의 이정표는 사패산 3,3Km, 망월사 1.6Km라고 알려준다. 철책이 처진 급경사 암릉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물에 젖은 암릉이 무척 미끄럽다.
우회하라는 안내판
Y자 계곡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급경사 암릉이 끝나고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돌계단이 끝나는 곳에 Y자 계곡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안내판이 보이고, 계단 끝에 돈 벌러 나온 노인 네 분이 앉아서 쉬고 있다. 한가롭고 여유가 있는 모습들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이어 1분쯤 더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원도봉계곡 갈림길이다. 자운봉에서 0.7Km, 포대정상에서 0.3Km 떨어진 지점이다.
노인 등산객들
원도봉 입구 갈림길 이정표
오른쪽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현위치 다락 3’이라고 표기된 119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니 바로 민초샘이다. 물맛이 좋다. 갈림길에서 20분 쯤 내려선 계곡상류에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 왼쪽 지계곡의 물이 합류하니,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불은 모양이다. 멋진 폭포도 보인다.
119 안내판
민초샘
지계곡이 합쳐지고
멋진 폭포
3시 4분, 이정표가 있는 망월사 갈림길에 내려선다. 이정표는 원도봉 주차장까지 남은 거리가 1.4Km라고 알려준다. 이어 덕재샘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니 등산안내판이 보인다. 하산지점이 가까워진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기 직전, 계곡으로 내려서서, 유명한 용소골이나, 조무락골에 못지않은 멋진 원도봉골에서 땀을 씻고 족욕을 즐긴다.
망월사 갈림길 이정표
다리
등산 안내도
땀을 씻고 족욕을 한 계곡
입구가 가까운데도 상점이나 식당들이 보이지 않고, 유원지로 개방한 흔적이 없다. 조용한 계곡이다. 이어 엄홍길씨가 37년 동안 살았다는 집터를 지나고, ‘점점 건강해지는 원도봉’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국립공원 측에서 원도봉계곡 살리기에 적극 나선 모양이다. 반가운 일이다.
엄홍길 씨 집터
안내판
점점 건강해지는 원도봉
다시 폭포 하나를 지나고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내려서면 쌍룡사다. 입구 매점에서 캔 맥주를 사 마시며 잠시 갈증과 더위를 쫓는다. 하산하여 ‘산악인 엄홍길 전시관’을 둘러본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의정부 시의 배려가 따듯하게 느껴진다.
폭포
쌍룡사
엄홍길 전시관 1
엄홍길 전시관 2
망월사역에서 지하철에 오른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냉방이 잘된 지하철 안이 쾌적하다. 거대한 몸집의 외국인이, 옆자리의 아주머니들 수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있다.
(201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