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터키여행(2) : 이스탄불

Urimahn 2014. 9. 11. 16:17

 

성 소피아성당의 모자이크                                                            * 모든 사진 크릭하면 커짐

 

2014829()

현지 가이드 김현미 양의 예언대로 새벽 4시경에 잠이 깬다. 룸메이트 김박세 씨도 잠이 깬 눈치다. 약사인 부인이 아직 현직에 있어 나처럼 혼자 온 룸메이트는, 나와 나이도 같고, 사는 동네도 같은데, 술 좋아하는 것까지 똑 같다. 우연치고 이런 우연이 있다니...

룸메이트()

 

불도 켜지 않고 40여분 동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화장실을 다녀오자 비로소 모닝콜이 울리고 룸메이트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다시는 이런 패키지여행 안 따라 오겠다고 툴툴거린다. 어제 일정이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방안에 있기가 답답하여 호텔 주변을 산책하러 밖으로 나온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는지 가로등 불빛만 은은한데 바람이 거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따라온다. 개와 고양이가 많고, 순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기분이 나빠져 호텔 안으로 들어와 식당 문 열기를 기다리며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린다. 수영장까지 있는 제법 큰 호텔이다.

호텔 로비에서 본 철갑옷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이스탄불로 향한다. 오늘 일정은 신시가지의 돌마바흐체 궁전(내부)과 구시가지의 성소피아 성당(내부) 그리고 불루 모스크를 둘러 본 후 샤프란볼루를 거쳐 앙카라로 이동을 한다. 하지만 블루 모스크가 금요일에는 신도들의 예배로 출입이 불가능하여, 히포드럼으로 대체하고 블루 모스크는 94일에 방문한다고 한다.

 

버스로 이동 중 현지 가이드 김현미 양이 아나톨리아반도의 역사와 이스탄불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을 해 준다. 복잡한 내용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 나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8년차 베테랑 가이드 이다.

인솔자 김승주 양()와 현지 가이드 김현미 양

 

창밖 풍경 1

 

창밖 풍경 2

 

창밖 풍경 3

 

그리스인 비자스는 텔피의 신전에서, ‘장님들이 사는 곳의 반대편에 도시를 건설하라.’라는 신탁을 받는다. 보스포러스 해협에 이른 비자스는 아시아지역에 살고 있는 칼케돈인들이 반대편의 천연항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들을 눈 뜬 장님으로 해석하여, BC 657, 델피의 신탁대로 지금의 슐탄 아흐메르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이름을 비잔티움이라고 명명한다. 이후 이스탄불은 아래와 같은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BC 657 ~ AD 330 : ‘비자티움시대

330 ~ 1453 : ‘콘스탄티노플시대(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의 수도)

1453 ~ 1922 : ‘이스탄불시대(오스만제국의 수도)

1922 ~ 현재 : 터키공화국의 최대의 도시(이상 터키의 유혹에서 발췌)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지역()과 아시아지역()로 나뉘고 유럽지역은 골든 혼(Golden Horn)을 경계로 다시 둘로 나뉘어, 남쪽이 구시가지’, 북쪽은 신시가지를 이룬다. 터키 공화국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인구 약 1,200만이다. 이스탄불 관광에만 5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5일간 자유여행으로 이스탄불을 둘러보는 한국인 젊은 부부를 만났다.

이스탄불()

 

도시가 가까워진다. 차창 가득히 도시건물들이 다가오고, 버스터미널을 가까이 지난다. 우리들은 예니자미(Yeni Cami)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골목길에서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성 소피아성당으로 향한다.

도시접근

 

 버스터미널

 

 예니 자미

 

블루 모스크

 

성 소피아성당

 

슐탄아하메드 공원 분수

 

영어, 불어, 독일어, 그리고 터키말 아침인사 파넬로 환영하는 아가씨들

 

아래 지도를 보면 슐탄아하메드(Sultanahmet) 지구에 성 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 그리고 히포드롬이 모두 모여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이 지도는 성 소피아성당 앞에 있는 박물관 상점(Museum Shop)에서 거금 $30을 주고 산 이스탄불 가이드 북에서 옮긴 것이다.

슐탄아하메드 지구

 

 Museum Shop

 

 이스탄불 가이드 북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진행하여, 터키 가이드가 준 입장권을 제시하고, 소지품 검사를 받은 후, 사원경내로 들어선다. 사원 입구에 있는 안내문과 배치도를 카메라에 담는다. 현지가이드 김현미 양의 지시에 따라 공립학교(무료 화장실)에 다녀 온 일행들의 인원 점검 책임은 인솔자 김승주 양의 몫이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터키 가이드가 나눠준 수신기를 귀에 꽂고 김현미 양의 뒤를 따른다.

공립학교(무료화장실)를 다녀 온 대원들이 입구에 모였다.

 

배치도

 

터키인 가이드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고,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며,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성 소피아성당은 “916년 동안은 교회로, 481년간은 모스크로 이후는 박물관으로 생명을 이어왔다.”(이상 터키의 추억에서 발췌)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안내문, 하기야는 신성한 예지

 

지금의 하기아 소피아는 같은 장소에, 같은 이름으로 지어진 세 번째 건물이다. 첫 번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337~361)360년에 성당으로 지은 것이다. 기둥이 많은 바실리카 양식에 목조 지붕을 이고 있던 이 건물은 404년에 발생한 폭동으로 불타 버린다.

 

415년 데오도시우스 황제(408~450)는 같은 자리에 두 번째 건물을 지어져 헌정했으나, 532년 니카 폭동(Nike riot) 때 전소된다. 이어 유스티니안 황제(527~565)532년부터 537년까지 5년 동안에 같은 장소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큼 성당을 건설하고, ‘하기아 소피아라고 명명한다. 건축양식은 이제까지의 바실리카 양식이 아닌, 중앙의 거대한 돔을 동서 양쪽의 하프 돔이 지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1453년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토만 슐탄 마호멧 ǁ 는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꾼다. 그 후 아야소피아는 여러 차례 수리되고 보완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된다.

 

기독교와 이스람교 요소의 융합을 상징하는 아야소피아는 터키공화국 내각 의 결정과 무스타마 케말 트루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어, 193521일 일반에 공개된다. (이상 안내문 요약)

 

수신기로 가이드 김현미 양의 설명을 들으며 내외 두 개의 회랑을 지나 본당 출입구 앞에 선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9개나 되지만, 황제와 대주교가 출입하던 제국의 문이 가장 크고, 그 문 위의 모자이크가 유명하다.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오른쪽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중앙의 예수를 모시고 있고, 에수 앞에는 레오 6세 황제 가 엎드려 결혼허가를 구하는 그림이다.

제국의 문 위의 모자이크

 

안쪽 회랑 천정

 

본당 건물 벽의 대리석 파넬

 

본당 안으로 들어선다.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고, 기둥이 없는 넓은 본당은 수많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생각보다 많이 밝다. 높게 걸려 눈길을 끄는 원판의 아랍어는 알라, 선지자 마호멧과 4명의 초기 칼리프의 이름이라고 한다.

 대리석 바닥

 

생각보다 밝은 실내, 오른쪽에 대리석 항아리도 보인다.

 

이슴람 문자와 오스만 터키 때 회로 덮었던 것을 긁어 낸 천정과 벽

 

본당 제일 안쪽에 이슬람 제단인 미흐랍(Mihrab)이 보이고 미흐랍 옆의 계단은 설교단인 밈베르(Mimber)라고 한다. 미흐랍 위의 프레스코 화에서 훼손된 가브리엘 천사를 볼 수 있다고 하며, 중앙의 여러 가지 색깔의 돌이 깔린 둥근 공간은 동로마 황제들이 대관식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중앙 제단과 설교단

 

천사 가브리엘 모자이크

 

대관식 장소

 

안내판

 

아래층을 둘러보고 2층 갤러리로 이어지는 완만한 비탈길을 오른다. ‘천국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여러 점의 모자이크 파넬들을 볼 수 있다.

2층 갤러리 가는 길

 

2층에서 본 아래층

 

모자이크

 

성모 마리아

 

세레 요한

 

13세기 모자이크, 왼쪽에 마리아, 중앙 예수, 오른쪽은 세레 요한

 

12세기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에 성금을 하는 요한 콤네노스 황제와 황후 아레인, 중앙은 아이

를 안고 있는 마리아

 

11세기 모자이크, 옥좌에 앉은 예수와 황제() 및 황후

 

10세기 모자이크, 알렉산더 대왕

 

2층 갤러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소원을 비는 땀 흘리는 기둥이 보이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그냥 지나쳐 밖으로 나오다. 회랑에 놓인 커다란 돌 수반을 카메라에 담는다.

돌 수반

 

밖으로 나와 수신기를 반납한 후, 건너편의 박물관 상점에 들러 기념품들을 구경한다. 이어 일행이 전부 모이자, 또 다시 인원을 점검한 후, 아야 소피아를 뒤로하고, 비잔틴시대에 전차경기를 벌렸다는 히포드롬(Hipodrome)으로 이동한다.

 성 소피아 성당 입구의 우물, 1740년에 만듬

 

39명이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선두에서 현지 가이드 김현미 양이 길을 리드하고, 터키 가이드는 중간에서 이정표가 되며, 인솔자 김승주 양은 후미에서 쳐지는 사람들을 에스코트하며 따라온다. 얼마 걷지 않아 히포드롬에 이르러 저먼 파운틴(German Foutain) 앞에 선다. 이 분수는 1989년 독일 황제 빌헤름 2세가 두 번째의 방문을 기념하여 슐탄 압둘 하밋 2세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저먼 파운틴

 

 안내문(일부)

 

길이 480m, 117m의 이 경기장은 최대 1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벤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전차경주가 주로 벌어졌던 곳이지만, 비자틴제국의 황제나 장군들의 개선식도 이곳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히포드롬 전경

 

저먼 파운틴에서 조금 더 들어서면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만난다. 이집트 룩소의 카르낙 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우스황제가 가져오고,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390년경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 높이는 30m였으나 지금은19.8m만 남았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건립판

 

탑 기단의 조각

 

오벨리스크 남쪽에 뱀 세 마리가 얽힌 모습의 청동 기둥이 있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우스대제가 천도를 기념하기 위해 330년에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뱀의 머리 부분은 잘려나가, 하나는 고고학 박물관에, 다른 하나는 영국에 보관되어 있으나, 나머지 또 하나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머리가 잘려 나간 뱀 기둥

 

뱁 기둥 옆에 높이 32m의 기념탑이 있다. 월드 오벨리스크(Walled Obelisk)라고 불리는 이 탑은 전차경주 시 반환점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탑 기단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 7세가 이탑을 보수하고 청동판을 씌웠다고 하는데, 십자군 전쟁 때 청동판이 벗겨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기념탑

 

청동판을 박았던 흔적

 

건립판

 

히포드롬의 확 트인 넓은 공간이 시원하여,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나무가 없어,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피를 끓게 하던 마차 경기장이 지금은 인근 주민들의 산책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산책객들

 

히포드롬 탐방을 마치고, 바로 코앞에 있는 블루 모스크를 내버려 둔 채, 신도시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가기 위해 버스로 향한다. 블루 모스크가 신도들이 예배를 보는 금요일에는 개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가 갈라타 다리로 골든 혼을 건너고 보스포러스 해협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창밖의 풍경들이 그림 같다.

돌마바흐체 궁전 가는 길

 

보스포러스 해협과 그 건너 아시아 지역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리

 

여객선 선착장과 신시가지

 

갈라타 다리

 

해안도로와 시가지

 

돌마바흐체(Dolmabahce) 궁전에 도착한다. 커다란 시계탑을 지나 소지품 검색을 받고, 첫 번째 문으로 들어선다. 지금 궁전이 있는 이곳은 옛날에는 항구였던 것을, 파티 술탄 마호멧이 바다를 메운 후, 1843년부터 새 궁전을 짓기 시작하여 1956년에 완성되자, 술탄 압둘메짓이 톱가프 궁전에서 이곳으로 옮겨온다. 건축양식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프랑스의 벨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뒤돌아본 시게탑 뒤로 돌마비체 자미의 미나레가 보인다.

 

황제의 문(Imperial Gate)을 들어서면 백조가 조각된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고 그 뒤로 본관이 보이고 정원 잔디밭에는 여기저기 사자상이 눈에 뜨인다. 왼쪽에 보이는 화려한 별관 문은 굳게 닫혀있다.

첫 번째 문과 그 뒤로 보이는 황제의 문

 

  

분수 오른쪽 진입로

 

 분수

 

 암사자상

 

숫사자상

 

별관

 

남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이 궁전은 다른 곳과 달리 국회에서 관리하고, 단체관람만 허용하며,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 입장 전에 덧신을 신고 차례를 기다린다. 보스포러스 해협에 자리한 이궁전은 총길이 600m, 살롱 43, 285, 발코니 6개와 목용탕 6개가 있는데 바닥에는 유명한 헤레케 카페트가 깔려 있고 실내는 각종 크리스탈로 장식되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본관 입장을 기다리다 뒤돌아 본 정원

 

30여분 동안 사진도 찍지 못하고 궁전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까이 바라보고, 정원을 둘러본 후, 점심이 다소 늦을 것이라는 소리에, 간식거리를 사들고 버스로 돌아와 다음 행선지 인 샤프란 블루로 향한다.

보스포러스 해협과 건너편의 아시아지역

 

바다쪽 정원

 

돌마바체 자미

 

간식거리도 사고

 

차창 밖으로 마르마리해 먼 바다가 보인다. 버스는 3시경에 도로변 휴게소에 멈추고 우리들은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샤프란 블루로 출발한다. 차창 밖으로 초원 위의 마을이 아름답고, 점차 고도가 높아지는 지 사막화 되어 가는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버스는 6시경 사프란 블루에 도착한다.

멀리 마르마리해가 보이고

 

초원 위의 마을

 

헐벗은 구릉지대

 

샤프란볼루

 

샤프란볼루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오스만제국시대의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 된 지역이다. 오스만제국 때 실크로드의 중요 통과 지점이었던 이 지역은 대상들의 숙소를 운영하는 등 교역의 요충지로 발전했다. 아직 남아있는 자미와 옛집들은 당시의 교역을 통해 얻은 부의 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자미

 

목욕탕

 

1TL의 유료 화장실, 유료는 사립학교, 무료는 공립학교로 호칭된다.

 

기념품점

 

전통 마을집들

 

옛 대상들의 숙소는 호텔로 변하고

 

골목 골목 집집마다 상점

 

스스럼없이 사진 찍기에 응하는 소녀들

 

유리 공예점의 데먼스트레이션

 

40분 간 머물고 버스는 앙카라로 출발한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의 거리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까닭에, 잠시 쉴 겸해서 들른 모양이다. 좋은 아이디어다. 나는 이곳에서의 자유 시간 덕에, 술파는 곳을 물어, 물어(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는 술파는 집 찾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터기의 술 라크(Laki)와 터키 맥주를 살 수 있어서 더 한층 즐겁다.

라크 백색 투명, 45, 물을 타면 젖빛, 그래서 일명 사자의 젖.(33.5TL)

 

밤늦게 버스는 앙카라시로 진입, 930분경에, Marinem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14시간이 넘는 강행군었다. 내일은 4시 모닝콜, 5시 식사, 6시 출발이라니  갈수록 태산이다.

 

 

(2014.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