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
아드라아해.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의 내해,
그 옛날 서양사를 배우면서 자주 듣던 이름.
이름이 예뻐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그대는 아는가
"아드리아"(Adria)의 어원을!
<아드리아해 풍광>
이 사장이 인천공항에서 삼목회 회원들을 보고 행한 첫 코멘트는, "빙신들... 공부 하난 잘 해가 지구서는.." 이였다.
이 사장은 42년 생이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 월급쟁이 생활을 했을 뿐 줄곧 자기사업을 해왔다고 한다. 이런 이 사장 눈에는 비록 동년배들이긴 하지만 평생 월급쟁이를 면치 못했던 삼목회 회원들이 "빙신"같이 보였던 것이다.
<달마시안의 도시 자다르 - 이슬람과 캐톨릭이 공존하고 있다.>
<자다르와 아드리아해 - 바로 숲 뒤에 로마시대 고성이 있다>
여행을 시작하고 10일째 되는 날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공원을 보고 달마시안의 도시 자다르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아드리아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것은 잠깐, 시간 단축을 위해 버스는 아드리아 도로를 버리고 새로 개통한 자다르, 스플리트간의 내륙도로를 택한다. 자다르에서 본 내전의 상처들... 파괴된 건물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여기저기서 새롭게 집을 짓는 모습이 보인다. 구 시가지 로마광장도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로마시대 건물은 상당 부분 파괴되고, 남은 부분에도 탄흔이 역력하다. 6. 25를 겪은 우리들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자다르에서 스플리트 가는 길 - 황량하다.>
자다르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길 - 버스차창으로 보이는 풍광은 또 어떤가?
<아드리안 로드가 산 허리를 달린다.>
스플리트가 가까워지자 버스는 다시 아드리아 도로로 접어든다. 이 도로는 이태리 트리에스테에서 시작되는 해안도로로 나폴레옹 때 건설됐다고 한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디나르알프스 산맥은 군데군데 키 작은 관목들이 자랄 뿐, 회색 화강암 덩어리들로 사뭇 을씨년스럽다. 그 중 비에꼬 산은 높이가 1,705m나 된다고 하니 꽤나 큰 산맥이다. 아드리아 도로는 이 암산의 허리를 감돌며 굽이굽이 이어진다. 이 도로의 다른 한쪽이 바로 아드리아해다.
<아드리아해>
해안을 따라 섬들이 잇달아 늘어서 있다. 어떤 섬은 그 길이가 150Km나 된다고 한다. 이들이 훌륭한 방파제가 되어 해안 가는 호수같이 잔잔하다. 코발트색, 에메랄드색, 비취색, 옥색 등 모든 색깔들을 총 동원해도 한가지 색깔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런 색감의 바다가 눈 아래 펼쳐있다.
군데군데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마치 장난감 같은 방파제가 눈에 들어온다. 희게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배들,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살, 푸른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풍광이다. 도로에서 차를 내려 해안가로 나가면 어디서고 수영을 즐길 수 있고. 건너 편 섬에는 여기저기 나체 촌이 있다고 한다. 신은 위대하다. 이런 바다를 배치했으니 산은 당연히 삭막해야 하나보다. 그래서 바다가 더욱 돋보이는 걸까?
<스플리트 전경>
스플리트에 도착해서 문제가 생겼다. 호텔이라고 알고 온 숙소가 스플리트 변두리에 있는 "산 안토니오"라는 펜션으로 해변 가의 민박집 3채에 일행을 분산시킨다. 인솔자 류지원양도 놀란 모양이다. 방 배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배정 받은 방을 가 본 여행객들의 반응이다.
도저히 이런 방에서는 잠 잘 수 없으니 차라리 해변에서 노숙을 하거나 시내로 나가 호텔을 찾아보겠단다. 전화가 있는 방은 하나도 없고, 에어컨이 설치된 방은 절반도 못됐다. 어떤 방은 고약한 냄새로 견딜 수가 없고, 또 다른 방은 창고를 개조해, 겨우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 있다고 했다. 서둘러 여분의 방을 물색해 문제가 심한 방은 바꿔치기를 했으나 결국 미스 류 양은 열쇠도 없는 창고 방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스플리트 팬션 앞 선착장에서 아드리아해에 발 담군다.>
체고, 폴란드,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까지는 현지가이드가 한국인 유학생들이었으나 슬로베니아에서 부터는 현지인 가이드들이 등장한다. 한국 유학생들이 없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까지는 심심찮게 한국 단체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으나 슬로베니아에서 부터는 한 팀도 만나지 못했다. 다른 여행사에 앞서 이 상품을 개발한 KRT가 직접 현지 확인을 하지 않고 아마도 외국인 현지 가이드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모양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언제고 어디서고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식사를 한다. 와인이 평소보다 한 병 더 추가되고, 인천 공항에서 사 들고 나온 위스키 2병이 개봉된다. 그 동안은 여행지의 좋은 맥주나, 와인을 즐기느라 마실 기회가 없어 여기까지 들고 온 위스키다. 식사가 끝나 부인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술자리는 계속된다. 웨이터가 뻔질나게 드나들며 빈 그릇을 치워도 좋으냐고 묻는다. 눈치가 뻔해,
“열한시 반이요.”
열한시 반이 되자 남은 술병을 들고 해변가로 나왔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삼목회에서 3인, 소수민족 동맹에서는 신 원장과 이 사장. 이렇게 5명이 바닷가 나룻 터에 모여 앉아, 김광현 사장이 들고 나온 와인 잔을 돌림 잔으로 하여 남은 위스키를 비운다.
"명길아, 노래 하나 해라." 그래서 노래도 부르고,
"여기 위도는 얼마쯤 될까?"
"드브로브니크면 한 38도쯤 되는 것 같던데."
"하지만 북두칠성 자리가 다른데..."
그래서 모두 하늘을 보고, 별을 센다. 환갑, 진갑이 다 지난 나이에 마음은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아드리아해 선착장에서 자정을 넘기고, 새벽을 맞는다. 이 동심의 파티는 낭군이 그리워 밤 마중 나온 김석근 회장의 어부인 박옥주 여사, 이종용 사장의 어부인 박정령 여사, 두 박 여사님들 덕에 아쉽지만 막을 내린다.
2003년 7월 5일 토요일.
또 새벽같이 일어나 중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이라고 불리 우는 스플리트 관광 길에 나선다.디오클레티아누스궁은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라 한다. 라이선스를 목에 건 현지 전문가이드의 지루한 설명을 들으며, 로마시대의 궁을 둘러본다.
<스플리트 디오크레티아니스 궁>
"숙소 문제를 본사에 보고했더니 본사도 무척 놀라, 여러분들께 사과 말씀드립니다. 현장 확인을 소홀히 한 결과로 생긴 일이니 너그럽게 양해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아울러 여러분들께 사과하는 뜻으로 남은 여정 중에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것들을 충분히 반영해 드리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재량권을 부여받은 류 양의 표정도 한결 밝고, 자신에 찬 모습이다.
"오늘 점심은 스톤이란 곳에서 해물 요리로 하겠습니다. 식당은 이 나라에서 베스트 텐에 드는 일급 식당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을 위하여 오늘밤은 드브로브니크 재즈 바에서 제가 한 방 쏘겠습니다, 내일 점심도 업그레이드 하구요." 버스 안에서 박수 소리가 터지고,
"안 형! 이 거 다 받아도 되는 거요? 스톤에서 로제 3 병이 곁들여진 거한 점심을 대접받고 다시 드브로브니크로 향한다. 이 사장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손 교수님 ! 오늘도 우리 허름한 방에서 잡시다."
버스 안은 다시 웃음 바다가 된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오른 쪽으로 끼고, 굽이굽이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드브로브니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뜨거운 한낮의 햇볕을 피해,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4시부터 관광을 시작한다.
<드브로니크 성안 - 금발의 전문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드브로브니크에서도 라이선스를 목에 건 여성 전문가이드가 몇 세기, 몇 세기를 주워 섬기면서 유적에 대해 자세히도 설명한다. 이런 설명이 끝없이 계속되자 관객은 하나 둘 빠져나가 급기야는 인솔대장, 현지가이드, 전문가이드만 남게 될 위기에 처한다. 사태를 눈치챈 전문 가이드가 2시간만에 겨우 해설을 마친다.
<스트라툰 광장>
"그 사람은 여길 3차례나 다녀갔으니 걱정할 꺼 없어요." 김 사장은 뭔가 대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다.
여행 안내서에도 드브로브니크에 가면 이 성벽 길은 꼭 걸어 봐야 한다고 써있다. 로크롬 인가하는 섬으로 가는 유람선에서 다시 합류한 김 여사는 발을 동동 구른다.
"꼭, 봐야 되는데... 꼭, 봐야 되는데... 언제 여길 다시 올 거라고..."
"7시 30이 넘으면 입장이 안 되는데..."
혼자 보고 온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그 좋은 경관을 꼭 낭군 님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김 여사가 배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로크롬 섬 풍경>
"묶었어야 하는 건데..., 묶었었야 하는 건데.... "
김 여사만 남아 김 사장을 찾기로 하고, 나머지는 뛰듯이 성벽 위로 오른다. 시간이 30분밖에 없음으로 바다 쪽으로 면한 성벽 길을 택해 반만 돌기로 했다. 걸어보니 왜 김 여사가 발을 동동 굴렀는지 이해가 간다. 이 곳에 오르지 못 했다면 드브로브니크를 봤다고 말하지도 못 할 뻔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뒤 김 여사가 뒤 따라 온다.
<성벽 위에서 본 드드로니크>
<성벽 위에서 본 로마산성>
“김 사장 와요?”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하다.
“빙신!”
얼마나 속이 타면 대답이 저럴까? 이제 김 사장은 죽었구나 싶었다. 저녁을 마치고 몸은 피곤하지만 인솔대장이 쏘는 파티에 참석키 위해 다시 스투라툰 중앙 광장으로 나왔다. 조명이 비치는 광장의 모습은 낮과는 딴 판으로 화려하고 번화하다. 바람도 시원하다.
진짜 팔등신 아가씨들이 배꼽을 내놓고 활보한다. 여기저기 카페에서는 생 음악이 흐르고, 분위기가 죽여준다. 재즈 바에서는 할머니가 피아노를 치고, 할아버지가 고성으로 노래를 한다. 아직 재즈는 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여 석은 넘어 보이는 좌석이 거의 만원이다. 우리 일행은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자는 500cc, 여자는 300cc, 생맥주를,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주스를 시킨다. 김 여사가 가만히 탄식한다.
"바이런이 드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의 진주라 했다더니, 와 보니 정말이네........"
<드브로브니크 전경>
아드리아의 진주 !
드브로브니크의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우리의 여행은 이제 추억 속에 묻히려 한다. 손 교수 어부인 조항옥 여사는 이번 여행을 "꿈같은 13일"이였다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또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200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