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6) - 실자라인
7월 3일(토) 여행 7일째 날이다.
9시 경 칼스타드를 출발하여, 스톡홀름(Stockholm)으로 향한다. 차창 밖의 풍경이 이제 눈에 익숙하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푸른 목초지, 드믄드믄 보이는 소 떼들. 노란 유채 밭이 지나가고, 호수가 보인다. 12시경 스톡홀름에 도착, 중국 음식으로 점심을 한다.
<스톡홀름으로 가는 E18번 도로 - 유럽도로는 좁다>
스톡홀름은 발틱 해와 말라렌(Malaren)호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구 180만의 큰 도시다.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그래서 "물위의 도시",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내 관광을 시작한다. 차 세우기가 여의치 않아 차를 탄 채 돌아본다. 왕궁도 지나가고, 기사의 성도 보인다. 멀리 시청사가 보이는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여, 시청사를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을 기회를 준다. 하지만 시청사 내부는 구경도 못한다. 북방민족 박물관 맞은 편의 바사(Vasa)박물관을 관람한다.
<스톡홀름 1>
<스톡홀름 2>
<북방민족 박물관>
1625년에 건조, 1628년 8월 10일 처녀 항해 때 돌풍을 만나 침몰한 바사호는 333년이 지난 1961년에 인양된다. 길이 47.7m, 폭 11.7m, 배수량 1,300톤, 대포 64문, 450명을 태울 수 있는 당시 최첨단의 전함이 침몰한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라 한다. 박물관은 7층으로 엘리베타를 타고 오르면서 여러 각도에서 바사호를 볼 수 있게 되 있다. 전함 바사호의 섬세한 조각이 이채롭다.
<바사호 침몰 - 성질 급한 구스타프 2세의 성화로 배 바닥에 돌과 그 위의 술통을 꽉 채우지 못하고 출항한 것이 침몰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시내에서 상점 한 곳도 들르지 못하고, 서둘러 헬싱키 행 실자라인에 탑승하기 위해 선창으로 향한다. 4시경 보안 검색을 마치고, 배에 승선하여 일단 7층에서 모인다. 우리 일행의 선실은 10층, 복도 쪽이다. 선실로 가려면 엘리베터 선택을 잘 해야한다. 우리 경우는 5번 엘리베터를 이용한다. 다른 엘리베터를 타면 숙소를 찾는데 헤매게 된다.
<실자라인 호의 위용>
방을 찾아 들어간다. 좁지만 짜임세가 있다. 침대 하나는 펼쳐 있고, 하나는 접어 벽에 붙여 놔, 좁지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창가로 협탁자가 놓여 있고 옷을 걸 데도 있다. 화장실도 깔끔하다. 협소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실자라인은 길이가 203m, 너비 32m , 13층의 대형 유람선이다. 13층에 카바레, 12층에 전망대, 7층에 상점, 술집. 디스코, 6층에 면세점과 식당이 있다. 식당은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12층 전망대>
12층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를 본다. 스톡홀름 시가 뒤로 보이고, 배는 점점이 떠있는 섬 사이를 지난다. 빨간 지붕이 보이는 사람이 사는 섬, 나무만 무성한 무인도, 다양한 섬들이 빗겨간다. 바람이 시원하다. 배의 이물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다른 유람선 한 척이 하얀 항적을 그리며 저 만큼 앞서 간다. 고물 쪽은 출입을 통제한다.
<앞서 가는 배>
<따라오는 배>
6층으로 식사를 하러 내려온다. 다양한 음식이 차려져 있다. 캐비아, 헤링, 연어 등 생선 류가 푸짐하다. 와인과 맥주는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와인 맛도 괜찮은 편이다. 일행들 중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와인 열 잔씩만 먹자고 농담을 한다.
식사를 하고 이곳 저곳 배 구경을 다닌다. 7층 상점에서 여자들과 헤어진다. 12층 갑판에서 낙조를 구경한 후 여자들을 찾아 다시 7층으로 내려온다. 못 찾겠다. 바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며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을 한다. 갈 데가 없어진 일행들이 한 둘 모인다. 그래도 집사람을 비롯한 한 패의 여성동지들은 보이지 않는다.
<실자라인에서 보는 낙조>
이윽고 디스코가 문을 열었다고 모두들 몰려간다. 풀로어에는 많은 사람들이 몸을 흔들고 있다. 김선인 여사가 눈에 들어온다. 한 패의 여성동지들은 13층 카바레에 있다가 디스코 장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열두시가 가까워지자 음악이 멈추고, 무대를 정리한다. 무대 정리가 끝나자. 남녀 무용수들이 등장, 현란한 춤의 향연을 벌인다. 나는 집사람과 더불어 선실로 돌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구경하러 12층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엄청 세어, 견디지 못하고 돌아와 일찍이 아침식사를 끝낸다. 슬슬 하선 준비를 한다. 초호화 유람선이라 하지만, 호사스러움이 기대만큼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배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동서양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한 번에 이 많은 사람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스톡홀름과 헬싱키 사이를 왕래할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 하겠다. 배가 헬싱키에 접근한다. 아침 햇살 속에 헬싱키가 그림 같다
<실자라인에서 본 헬싱키>
배에서 내리니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페테스브르그에서 담배와 술을 파는 보따리 장수들과 함께 8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잘 사는 나라 핀란드와 못 사는 나라 러시아간에는 술, 담배의 가격차가 커서 보따리 장수가 많다고 한다. 쌍테스부르크 국립음악학교 출신으로 차이코프스키보다 147년 후배란다.
버스와 기사가 바뀌었다. 러시아에서 온 버스와 러시아 기사에 또한 사람의 러시아인 조수가 타고 있다. 러시아로 타고 갈 버스가 엉망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다행이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대형버스로 상태가 양호하다. 뒤쪽으로는 좌석 대신 테이블이 2개나 놓인 장거리용 버스다. 여행 초기에는 앞좌석이 인기이더니 날이 갈수록 뒷좌석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두 좌석을 차지하고, 편히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테이블까지 있으니 완전히 뒷좌석이 상석이 됐다.
10시경부터 헬싱키 관광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간 곳이 원로원 광장이다. 정사각형 광장 중앙에 핀란드를 지배했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역사의 유물이라고 파괴하지 않고 보존한다고 한다. 광장 정면에는 아름다운 대성당이 높직이 서 있다, 마침 미사 중이라 안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다.
<우스펜스키 사원>
광장에서 걸어서 마켓광장으로 간다. 부두광장에 벼룩시장과 유사한 시장이 개설돼 있다. 여러 가지 자잘한 물건들을 판다. 과일과 즉석에서 조리한 음식물도 파는 시장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로크 교회로 간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겉모습만 보고, 내부는 탈린(Tallinn)을 다녀와서 보기로 한다. 탈린 가는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선 점심을 먹고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서 에스토니아 입국 절차를 밟는다. 여권이 없으면 승선이 거부된다. 승선을 완료하고 1시경 배가 출항한다. 탈린까지의 항해 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탈린은 흔히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 운다. 중세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한 탈린은 북유럽의 교역의 중심지이다. 외침이 잦아 도시는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발달하고, 고지대에는 성과 성당이, 저지대에는 광장과 주택이 배치되어 13세기, 14세기의 건물이 고대로 보존된 귀중한 도시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발트해의 진주 탈린 - 전망대에서 본 탈린>
배가 탈린에 도착한 것은 2시 50분 경. 터미널을 나와서 시내 쪽으로 걸어 나온다. 도시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가에서 현지 가이드가 일행에게 당부한다.
"지금이 3시. 배가 4시 15분에 출항하니 3시 45분까지 이곳에 다시 집결해야 합니다. 한 바퀴 돌아보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45분 동안에 구경을 마쳐야 한다.일행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급히 이동한다. 일부는 바로 오른쪽으로 굽어, 도시 중심부로 진입하고, 일부는 길을 따라 올라 간다. 우리가 내려진 곳이 지금 생각하면 고지대인 듯 싶다. 예쁜 돌로 포장된 좁은 길들이 미로와 같이 얽혀 있다. 거리에는 유난히 꽃들이 많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탈린 - 고성>
<탈린 - 꽃의 도시>
나는 처음부터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며, 가르쳐준 방향으로 계속 진행한다. 높은 교회가 있는 광장이 나타난다.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오른 쪽으로 가란다. 급히 걸으면서도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내 뒤를 따른다.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 보니 전망대로 이어지는 듯한 곳에 이른다. 이 때 시간이 3시 20분 경이다. 중론이 전망대에 오를 시간이 없으니 그만 내려가잔다. 아쉽지만 할 수 없이 내려온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전망대 쪽에서 내려오는 층계가 구불구불 보인다. 아까 오르는 길이라고 본 곳의 반대편이다. 전망대에 다녀오더라도 많이 걸려야 십 분이면 될 듯하다. 현재 시간이 3시25분. 십 분을 다녀와도 십 분이 남는다. 만날 장소까지는 거의 다 온 것 같다. 갈등이 생긴다.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여기서 그냥 지나쳐버리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다.
<전망대 위 꽤 넓다. - 양쪽에 국기가 계양된 걸 보면 관청 같기도 하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을 뛰어 오른다. 전망대에 서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말이 전망대지 위는 꽤 넓다. 아쉽지만 전망대를 반만 돌고,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와 일행하고 헤어졌던 장소로 되돌아온다. 3시35분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걷는다. 한참을 올라가도 만날 장소가 보이질 않는다. 만날 장소를 지나쳐 반대 방향으로 온 것이다. 전망대 위치가 벌써 만날 자리를 벗어나 반대 방향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처음 도로를 따라 올라 갔던 것만큼 내려온다고 반대 방향으로 더걸어 온 것이다. 방향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다시 전망대 위치에 왔을 때가 3시 45분이다. 이제는 시간 내에 만날 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헬싱키로 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지금 걷는 방향으로 2 불록 내려가면 터미널이라고 알려준다. 다소 안심이 된다. 배 출항 시간 전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겠다.
4시 5분 경 터미널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아까 내렸던 터미널이 아니다. 인포메이션 부스를 찾아가 묻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배표를 좀 보잔다. 표가 없다고 하니, 어느 회사 배냐고 묻는다. 그 것도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은 배 출항이 4시 15분이란 것뿐이라고 하니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며, 이곳에는 헬싱키로 가는 쾌속선 터미널이 4군데나 있어 회사를 모르면 찾을 수 없단다. 냉정하다. 그 여자와 더 승강이를 하다가는 귀중한 시간만 빼앗길 것 같아 터미널 밖으로 나온다.
<터미널 D>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택시가 줄지어 서 있다. 택시 운전사에게 같은 걸 묻는다. 택시 운전사는 타야할 배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 때야 비로소 선뜻 스치는 생각이 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까지 실자라인으로 왔으니 아마도 실자라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자라인이라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무어라 떠들며 의견을 나눈다. 결론이 난 모양이다. 실자라인이면 터미널 D이고, 여기는 터미널 A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 D에 도착한다. 과연 아까 내렸던 낮 익은 터미널이다. 시간은 이미 4시 30분이다. 맥없이 2층 실자라인 매표구로 가서, 막 의논을 하려는 참인데 뒤에서 인솔자 정수미 양이,
"여기 계셨군요?" 하며 울듯한 얼굴로 반긴다.
이 나이에도 아주 단순한 원칙을 무시하고 빙신같이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단체여행이면 이유 없이 단체 움직임에 따라야 한다. 그게 싫으면 혼자 여행하라.』 여러분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
헬싱키에서 일행과 다시 만나,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을 둘러본 후 7시 25분경 버스는 라판란타(Lappeenranta)를 향해 출발한다.
(2004.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