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4) - 송달(Sogndal)가는 길
현지 가이드 장언미 여사는 노르웨이에 온지 19년이나 된다고 한다. 베르겐에서 우리들을 맞으러 오슬로로 날아왔다. 갸름한 얼굴, 훌쭉하게 큰 키, 중년답지 않게 날렵한 몸매의 분위기가 있는 여자다. 경주 출신으로 1남 4녀 중 장녀. 친척의 중매로 노르웨이 남자와 결혼했단다.
3일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 관광지에 대한 이야기, 노르웨이에서의 생활, 입양된 한국아이들, 멀리 떨어져 살면서 느끼는 가족과 조국에 대한 이야기 등을 마치 동네 아줌마가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술술 풀어낸다. 가이드를 하면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헤어질 때는 섭섭하다는, 꽤나 정감이 있는 여자다. 하지만 오랜 가이드 경력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중년의 뻔뻔스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걸쭉한 이야기도 천연덕스럽게 곧잘 한다. 다만 이럴 때 웃음은 평소의 웃음보다는 한 톤이 높아진다.
장 여사는 오후 내내, 호텔에서 저녁은 뷔페로 준비하면 좋겠다고 되뇐다. 노르웨이의 고유음식을 맛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부라운 치즈, 청어, 연어 등 맛 볼만한 것이 제법 있다고 한다. 술은 40도 짜리 감자 술이 노르웨이의 고유한 술이란다. 고유음식을 맛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 오는 것 같다.
9시가 다 되어 하이 마운틴 호텔 식당에 모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커다란 창문을 통해서, 구름이 가로지른 붉은 하늘, 나지막한 산, 계곡과 들판, 그리고 먼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아름답다. 한 무리의 나이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참이다. 들어오는 동양인 관광객들을 웃음으로 환영한다. 장 여사 기대와는 달리, 저녁식사는 비프 스택이다. 장 여사의 기대는 깨졌지만 고기는 부드럽고 연하다. 훌륭한 식사다.
식사를 마치고 뒤쳐져서 식당을 나오는데, 바에서 이종용 사장이 부른다. 인솔자, 장 여사와 함께 노르웨이 북부지방의 여행계획을 의논하고 있는 중이다. 함께 이야기하며, 노르웨이 감자 술을 맛본다. 술 빛은 다소 탁한 듯하고, 우리나라 안동소주나 중국의 고량주처럼 냄새는 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보드카처럼 뒷맛이 깨끗한 것도 아니다. 밤이 긴 겨울, 북극 지방에서 이런 술마저 없으면 얼마나 삶이 황량할까? 이 술이 과연 명주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오니 가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다시 방으로 올라가 우산을 챙겨 나온다. 현관 앞에 손 교수 부부가 서 있다. 산책길을 따라 함께 걷는다. 먼 산 중턱에 구름이 낮게 걸려 있다. 길가 풀 섶에는 들꽃들이 예쁘다. 들꽃에 조예가 깊은 조항옥 여사가 반색을 한다. 돌 사이로 개울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급류를 이룬다. 방목하는 소들이 개울가 울타리 너머에 모여서 지나가는 이방인들을 보며 음매~ 하고 운다. 언제 보아도 소들의 눈은 순하고 슬프다. 완만하게 경사진 푸른 방목장에서 축사와 건초장의 붉은 색이 옅은 안개 속에서 선명하다.
<하이 마운틴 리조트- 아침 서기속에서 녹색과붉은색이 조화를 이룬다.>
오늘은 플롬에서 산악열차도 타고 송네피요르드를 관광하는 날이다.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의 자연을 구경한다. 7시 45분 경 호텔을 출발한다. 버스에서 장 여사로부터 노르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노르웨이를 관광하기에 제일 좋은 때 왔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지역을 이동하기에 따라서 4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해유전 덕에 노르웨이의 1인당 GNP는 47,000불. 인구는 약 470만이다. 수산업이 성하고, 양모, 목재를 수출한다. 요즈음은 빙하 녹은 물을 판다. 하얀 석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로 생활은 걱정하지 않는다. 80%가 집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별장, 캠핑 카나 왜건을 소유하여, 65세 정년 퇴직 후에는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남자들은 일이 끝나면 바로 귀가하여 가사를 돌보고, 남은 시간은 대체로 정원을 가꾸며 보낸다. 집집마다 정원에 꽃이 많다. 꽃마차가 있는 집도 있다. 정원 가꾸기에 많은 돈을 드린다고 한다.
창 밖의 풍경이 많이 달라 졌다. 나지막한 산에 양이나 염소들을 방목한다. 염소도 양도 귀에 이름표를 달고 있다. 가을에 살이 통통하게 찐 놈들을 이름표대로 모아 털을 깎고, 고기로 판다. 산은 춥고, 아스팔트가 따듯하면 이놈들이 아스팔트를 점령하여 운전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염소는 눈치껏 피해주는 편이지만 양들은 꼼짝 않는단다. 래르달(Lardal)에 가까워지자 산세가 급해지고, 도로변으로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개울을 이루고 흐른다.
<래르달 가는 길 - 산세가 험해지고 빙하 녺은 물이 개울를 이룬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탈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화장실이다. 대체로 2시간 정도 가고, 휴게실에 들러 용무를 보는데, 화장실 규모들이 작아 기다려야한다. 남녀가 공용인 곳은 아주 골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장실은 남녀가 구분된다. 유료화장실이 많지만 휴게실에서 물건을 팔아주면 별도로 화장실 사용료는 받지 않는다. 유료화장실의 경우 사용료는 대체로 1달러, 또는 1유로 정도다.
골을 떠나 2시간쯤 지나자 버스는 휴게소에 정차한다. 나무로 지은 오래된 노르웨이 전통교회가 있고 교회 주위에는 묘지들이 있다. 길을 따라 개울이 흐른다. 아침인데도 산굽이를 돌아 뻗어 나온 길 위로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키고 있다. 그림 같은 경치이다.
<노르웨이 전통 목재 교회>
여기저기 주위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은 후 화장실로 갔더니 남자 화장실은 비어 있는데 여자 화장실 앞에는 일본 할머니들이 줄을 서있다. 화장실에는 변기가 높다랗게 붙어있다. 발 돋음을 하고 일을 본 후, 문을 열고 나오니 할머니 한 분이 빙긋 웃는다. 변기가 높은 걸 아는 모양이다. 놀랐지? 하는 표정이다. 겸연쩍어진 나는 나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드는 시늉을 하면서, 웃으며, "다까 승이네.(たかすぎね)-너무 높네요." 라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반색을 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욘사마, 욘사마....."하며 반긴다. 배용준의 인기가 정말 일본에서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노르웨이에서 본토 발음의 "욘사마" 소리를 들어 본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래르달 터널을 통과한다. 길이가 24.5Km. 차로 20여분을 달린다 중간 중간에 유 턴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거리도 표시돼 있다. 암반을 뚫어 만든 터널이라 한다. 6년이 걸린 공사다. 이 터널이 없었을 때, 산을 넘으면, 1시간 반, 배를 타면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레르달에서 프롬으로 가는 길에 있다. 이 굴 외에도, 5Km, !0Km 등 새끼 굴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굴이건 굴을 나오는 곳은 굽어져서 차들이 자동적으로 속도를 줄이도록 설계된 점이다.
프롬에 도착했다. 산악열차를 타러 각지에서 몰린 사람들로 붐빈다. 아울란츠피요르드(Aurlandsfjord)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아마도 산악열차 타기가 크루즈여행에 포함 된 모양이다.
<프롬 앞 피요르드에 정박한 유람선>
프롬 철도는 프롬에서 미르달(Myrdal)까지 20Km,(고도는 2m에서 866m,)거리를 약1시간에 주행한다. 철도의 80%이상이 경사가 55도 이상이고, 터널이 20개나 있다. 폴름 철도만큼 정상궤도로 이처럼 가파른 협곡을 운행하는 기차는 세계 어디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타고 갈 산악열차>
우리는 11시 기차를 탄다. 기차가 고도를 높이자 방금 기차를 탔던 폴름 역 구내와 아울란츠피요르드가 눈 아래 펼쳐진다. 기차가 방향을 틀자 눈 아래로 프롬스다렌(Flaemsdalen)이 보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역 주변 마을 - 기차에서 본 역 주변 마을>
<기차에서 본 프롬스다렌>
기차가 협곡으로 들어선다. 계곡 쪽으로 가벼운 복장에 배낭을 지고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가슴이 뛴다. '저렇게 걸어야 하는 건데.... ' 기차는 베레크암(Berevam)역에서, 내려오는 기차와 교행하기 위해 멈춰 선다. 내려오는 기차가 지나가자 차창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을 흔들고 웃는다. 차창에 베르린이란 표찰이 붙은 차량이 3개나 지나간다. 베르린에서 대단위 관광객들이 온 모양이다. 기차는 코스 폭포 앞에서 정차한다. 그렇게 높지는 않으나 수량이 풍부하고, 매우 웅장한 폭포다. 기차에서 내려 폭포 쪽으로 다가서니 물보라가 휘몰아친다.
<코스 폭포 - 93m, 높지는 않으나 수량이 풍부해 웅장하다>
폭포 위에는 다음 역에서 볼 수 있는 레이농가 호수가 있다.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멀리 폭포에서 빨간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트롤요정이 나타난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다. 다시 기차는 미르달로 향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계곡이 눈 아래 펼쳐진다. 장관이다.
<까마득한 계곡 - 트래킹 코스가 보인다. 가슴이 뛴다>
미르달에 도착한 기차는 손님들을 다 내리고 새로운 손님을 태운다. 우리는 다시 플롬으로 돌아가야 함으로 제 자리에 앉아 있다. 내려가면서 또 한번 야생의 노르웨이 산악풍광에 매료된다.
프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송네피요르드를 관광하러 구드방겐Gudvangen)으로 향한다. 또 몇 차례 굴을 지나고 구드방겐에 도착. 배에 오른다. 빙산이 산을 깎고 흘러내린 곳을 지금 우리는 같이 흘러간다.
<송네 피요르드 주변 풍경. 1>
산악열차를 타고 핀란드의 산들을 굽어보고, 이제는 배에서 산들을 올려본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먼 산, 가까운 산에서는 산 정상에서부터 하얗게 폭포가 떨어진다. 그 아래 물가에는 붉은 지붕의 자그마한 집이 한 채 덩그마니 서있다. 물가에는 보트가 매어 있고, 마당에는 빨간 봉고 차가 눈에 뜨인다.
<송네 피요르드 주변 풍경. 2>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날아온다. 배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지나온 물길을 따라, 뒤로 하얀 얼음을 이고 있는 산들이 겹쳐 보인다. 날씨도 맑고, 바람도 없어 춥지 않다. 배가 송달(Songdal)에 도착 할 때까지 갑판에서 자리를 뜨지 못한다.
<송네 피요르드 주변 풍경. 3>
<송네 피요르드 주변 풍경. 4>
<송네 피요르드 주변 풍경. 5>
6시경 송네피요르드 호텔에 도착한다. 피요르드 물가에 자리 잡은 아담한 호텔이다. 호텔주변에 꽃이 곱다. 장미송이가 엄청 크다. 7시부터 저녁 식사란다. 집사람 먼저 샤워를 하라하고 혼자 호텔 밖으로 나온다.
<송달 - 아름다운 마을이다>
저 만치 이종용 사장이 마을 쪽으로 혼자 걸어간다. 담배를 사러간다고 한다. 둘이서 마을 쪽으로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산에서 급류가 흘러내리는 개울의 다리를 지나고, 그림같이 늘어선 산 중턱의 집들 보면서 걷는다. 건너편 길가에 편의점 같은 것이 보인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안을 한바퀴 둘러본다. 살만한 것이 없다. 카운터로 가 담배를 달랬더니, 젊은 종업원이 묻는다.
"여기서 300 미터쯤 내려가면 그로서리가 있다. 그 곳에 가면 이 곳보다 담배 값이 15%정도 싸다. 그래도 여기서 사겠느냐?"
담배 2갑을 사들고 나오면서, 이 사장과 나는 묘한 기분이 든다. 저렇게 하는 장사도 있구나. 어디서부터 저런 사고, 저런 관습들이 시작된 건가? 가정인가? 학교인가? 아니면 종교의 영향인가? 이 사장과 나는 마주보고 허허 웃고 만다.
300 미터쯤 내려오니 과연 그로서리가 있다. 안에 들어 가보니 물건들이 많다. 이 사장이 오늘 저녁 파티를 하자고 한다. 자기가 한방 쏘겠단다. 울산 팀과도 술 한잔하고 싶고, 인솔자 생일이 가깝다니 저녁식사 후 물가에 나가 파티를 하잔다. 백야에 피요르드가에서의 파티. - 멋지지 않은가?
맥주, 헤링, 냉동 케이크 , 기타 안주거리를 고르니 한 보따리다.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차례가 되어 계산대의 할머니가 바코드를 긁으며 물건값을 계산한다. 대금을 지불하려는데.크로네가 아니면 계산이 안 된다고 한다. 카드도 안 된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 봉지에 담은 물건을 옆으로 빼놓고, 물러서서 난감해 한다.
젊은 친구가 하나 다가오더니, 멀지 않은 곳에 은행이 있으니,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가지고 오란다. 현금인출기(ATM)가 있단다. 문밖에까지 따라 나와서 은행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 이 사장이 오다가 은행 비슷한 곳을 본 것 같다고 한다. 호텔 쪽으로 반쯤 걸어오자 현금인출기가 있는 박스가 보인다. 또 문제가 생긴다. 이사장이나 나나 현금인출기를 써서 현금을 꺼내 본적이 없는데, 현금인출기 사용법은 노르웨이 말로만 적혀있다. 난감하다. 마침 젊은 주부 한사람 들어오더니 현금을 인출한다. 겨우 사용법을 배워 800 크로네를 인출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로서리로 다시 와 부자 된 기분에 맥주를 더 사 담고 부랴부랴 호텔로 돌아오니. 7시 반이다.
9시경 물가 잔디밭에, 호텔에서 마련한 가든파티 장으로 손님이 한, 둘 나타난다. 인솔자 정수미 양은 전국노래자랑 시상준비를 한다. 인솔자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자신도 와인 4병을 내 놓는다. 현지 가이드, 운전기사까지 참여한 백야의 파티가 흥겹게 진행된다.
<백야의 파티 - 시상도 하고....>
<백야의 파티 - 축하도 한다>
밤은 깊어지는데 해는 질 줄을 모른디.
(2004.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