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고궁

Urimahn 2012. 11. 30. 10:48

고궁은 "자금성"으로 더 알려진 왕궁이다.명나라, 청나라의 황궁으로 명나라 영락 4-18년(1406-1420)에 건조했다고 한다. 그 후 수차례 재건, 개수해 왔지만 원래 규모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다. 72헥타르의 부지에, 수십개의 대소 정원, 9,000여칸의방, 10M 높이의 성벽, 50여 미터 너비의 성호, 성벽 네 모퉁이에 각루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고궁의 건축물은 외조, 내정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외조는 태화, 중화, 보화의 3대전이 주축으로 황제의 권력행사와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던 곳이다. 내정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전 등이 주가되며 황제가 정무를 보고, 거주하는 곳이다. 동서 양측의 6궁에는 비빈들이 거처했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한 후 제일 먼저 고궁을 찾는다. 정문쪽이 붐비는지 가이드는 후문으로 안내, 역방향으로 고궁을 관광한다. 고궁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전에는 관광객 대부분이 외국인들이었다.

<후문 쪽의 해자와 각루>

고궁 후문 건너편에 동산이 보이고 그 위에 높다란 전각이 보인다. 북경에는 산이 없다고 했는데웬 산인가 ?이 산은 경산으로 황제의 놀이터로 만들어 놓은 조산이다.

<만든 산인 경산과 그 위의 누각>

고궁의 후문은 신무문이다. 성벽 위에 10m 높이의 문루를 올렸다. 가운데 문 위에 곽말약이 쓴 "고궁박물원" 석조 편액이 걸려있다.

<신무문, 후문이라서인지 많이붐비지는 않는다.>

<신무문을 올려다 보는 일행들>

신무문을 들어서면, 바로 내궁으로 들어가는 순정문이 있다. 이 순정문은 어화원으로 연결된다. 어화원은 7,000 평방미터의 규모로 명나라 때 조성됐다고 한다. 수백년 묵은 노송, 사이프러스(편백) 나무가 심어져 있고, 1538년에 세웠다는 돌로 된 조산이 있다. 이 조산에 동굴, 폭포, 그리고 전각을 배치했다. 고궁에는 이런 특정 지역 외에는 나무나 풀이 없다. 황제의 암살을 막기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어화원의 조산과 전각>

<어화원 정자>

<어화원의 괴석>

<어화원의 사이프러스>

어화원을 지나 곤녕문을 거쳐 곤녕전에 이른다. 이 궁은 1420년 건립되어 명나라 시대에는 황후가 거쳐했다고 한다.

<곤녕문>

곤녕전 앞에는 교태전이 배치돼 있다. 교태전은 1420년 건립되고, 1655년 재건축됐다고 한다.청나라 때 황제들의 생일 축하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교태전>

교태전 앞에 건청궁이 배치돼 있다. 건청궁은 명, 청 시기, 황제의 침실로,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다. 용마루, 추녀가 우리와 비숫하지만 자세하 보면 역시 다르다.

<건청궁 용마루와 현판>

<건청궁 추녀>

관람객들이 많아, 궁 내부를 둘여다 볼 엄두도 못내고 건정건정 넘어간다. 건청궁 앞에는 보화궁이 있다. 1789년 이후 이 궁에서 과거를 보았다 한다.

보화궁 앞에 중화전이 있다 정자식 건축물로, 황제가 태화전에 나가 청정하기 전에 쉬면서 보고를 받던 곳이라 한다.

<중화전>

다음은 태화전이다. 태화전은 황제의 즉위, 대혼, 축수, 중대한 축전, 출정 등의 주요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겹처마에, 황기와, 모두 84개의 기둥이 있는 점잖고도 화려한 궁이다. 고궁의 하이라이트다.

<태화전 전경>

<태화전 현판>

<태화전의 학>

<태화전의 사자>

<양 쪽 계단 가운데에 부조된 용 문양>

<태화전 텃문의 용 문양>

<태화문>

처음 고궁을 보았을 때는 그 규모에 압도 되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고궁을 둘러 본 정치가나 학자들이 중국에 대해 사대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항궁의 구조로는 너무 단순하다. 거대한 직사각형 안에 일자로 궁전을 배치한 단순 구조다. 단순해 좋기는 하지만 무언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건물 , 회랑이나 난간등을 하나하나뜯어 보면 모두가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비빈들이 사는 궁으로 연결되는 회랑과 난간>

<아름다운 지붕>

<태화전의 용마루와 추녀>

<해자>

자 이제 고궁의 정문, 오문으로 가 보자. 오문에는 돈대 위에 승루가 5개 있다해서, "오봉루"라고도 불리운다.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는 황제가 친히 오문까지 행차했다고 한다.

<오문 현판>

<오문의 망루>

합브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인 쉔브른 궁전에 갔을 때, 자금성이 생각났었다. 두 궁전을 비교하며 동서양 왕국의 국력 차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은 고궁에서 쉔브른 궁전을 생각한다. 풀 한포기,나무 한 그루없는 고궁이 한없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고궁 관광을 마친 일행은 천안문 광장으로 나온다. 이제야 후문부터 안내한 이유를 알겠다.동선만을 고려한가이드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