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2005년 6월25일(토).
오늘은 금남호남정맥 제5구간을 산행한다. 참여한 대원수가 30명이 넘어, 모처럼 버스 안이 그득한 느낌이다. 지난번 2구간을 잇달아 산행하여, 이번에 결간한 대원들을 감안하면, 적은 수는 아니다. 고래 대장이 부인과 처제를 모시고 나와 전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3차 대원 중에는 목련 대원이 오랜만에 참여하여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심천 대원은 발목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인 최 원장을 대동하고 참여하는 투혼을 보여 박수를 받는다. 체중을 더 줄였는지, 눈이 떼군해 보이는 드니로 대원은 더위를 무릅쓰고, 솔밭 대원과 함께 두 구간을 이어 달리는 저력을 보인다.

 

무척 덥다. 아직은 이렇게 더울 때가 아닌데, 장마를 코앞에 두어서인지, 습도도 높고, 꽤나 무덥다. 지난 밤, 더위에 잠을 설쳐, 달리는 버스에서 졸며, 깨며 상념에 잠긴다. 「6. 25 사변」이 터졌던, 55년 전의 일요일은 요즘처럼 이렇게 심하게 덥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구가 온난화 된다더니 그 영향인가?

 

1950년 6월 25일(일). 앞 집 친구가 이화동에 있는 자기 친척집에 가면 만화가 많으니, 함께 가자고 꼬신다. 친척집에는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만화가 많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침을 먹자 바로 따라나선다. 친구 덕에, 신경을 써서 차려준 점심 대접도 잘 받고, 만화도 보다보니, 3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한다.

 

원남동 로터리에 도착해서, 쇠줄로 된 가드 레일에 앉아, 흔들흔들 그네를 타면서, 전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선로에 못을 얹어 놓고, 전차가 지나가면, 납작하게 눌린 못에 자성이 생긴다, 이 못을 땅에 대고 문지르면, 쇳조각이 까맣게 붙어 나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몇 차례고 반복한다.

 

갑자기 국군 장병들은 귀대하라는 방송을 하며 차가 지나간다. 영문을 모르니 별로 관심도 없다. 흔들흔들, 다시 전차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들이 줄지어, 창경원 쪽으로 달린다. 트럭 위에는 철모에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꽂고, 총을 멘 군인 아저씨들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다. 신기하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돈화문 앞까지 오니, 길가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 난리가 났다는데, 아침에 나간 아이는 들어오지 않자, 애가 탄 어머니는 무조건 이화동쪽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요즈음은 「6. 25 사변」이라고 하면 촌스럽다고 한다. 새벽밥을 먹으면서 본 신문의 한 칼럼에서 칼럼니스트가 한 말이다. 「한국전쟁(Korean War)」이라고 해야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TV뉴스를 보니, 아나운서도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이러다가는 「6. 25 사변」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설도 있지만, 「6. 25사변」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 정권이 선전포고도 없이, 남으로 밀고 내려 온, 침략 전쟁이라는 것이 이제는 정설인 듯 싶다.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말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계의 학자들이 2차대전 후 팽배해진 동서세력이 한반도에서 충돌했다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북한에서는 성스러운 「민족 해방전쟁」이라고도 칭하지 않았던가? 선전포고도 없이 행한 진주만 기습을 일본에서는「태평양전쟁」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단순히 「상기하라 진주만 (Remember Pearl Harbor)」일뿐이다.

 

경제학에서는 공산주의를 후진국 경제개발론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다. 경제적으로 뒤진 후진국들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소득을 높이려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계획이 수립되면, 100%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계획 수행에 일직선으로 매진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계획 수행에 장애요소가 있으면 우회가 불가피해 진다. 따라서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성장 속도가 공산주의 국가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인, 1961년 북한의 총 GNP 규모는 남한의 4배였다.

 

이제 나이가 들고, 퇴직을 한 후, 백두대간도 하고, 정맥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새삼 「6.25 사변」에서 나라를 지켜, 이 나라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덕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질없는 상념이 길어진다. 버스는 논산 천안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양쪽 산 사면이 모두 밤나무다. 하얀 밤나무 꽃이 온 산에 가득하다. 독특한 밤꽃 냄새가 차안에까지 스미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오늘의 산행코스는『30번 국도(360m/1.8Km)-은수사(약400m/0.2Km)-암마이산(686m/1Km)-봉두봉(540m/0.5Km)-532봉(2.5Km)-강정골재(340m)』이다. 도상거리 약 6Km, 산악회에서 보는 산행소요시간은 약 4시간이다.

<산행지도>

실제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10) 30번 국도-(11:44) 숫마이산 하단부-(11:51, 12:01) 은수사-(12:06, 12:20) 탑사-(12:30) 천황문-(13:00, 13:30) 삼거리에서 중식-(13:47) 제2쉼터-(13:57) 3갈래 갈림길, 알바-(14:05) 4거리 도착, 3갈래 갈림길로 되돌아 감-(14:23, 14:28) 전망대-(14;50) 안부, 벌목지대-(15: 26) 강정골재』총 산행시간 4시간 16분, 중식 30분, 마루금 3시간 46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11시 10분 경 버스는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30번 국도에 도착한다. 코앞에 마이산이 웅장하다. 등산로는 밭둑 길을 조금 지나 왼쪽 숲으로 이어진다. 그늘진 완만한 소나무 숲길이 아직은 시원하다. 싱그러운 송림 사이를 산책하듯 여유 있게 걷는다. 이윽고 첫 번째 무덤이 나타나고, 나뭇가지 위로 숫마이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곧 이어 두 번째 무덤을 지나고, 다시 세 번째 무덤을 지난다. 등산로는 경사가 급해지며 땀이 솟기 시작한다. 허위허위 올라, 11시 44분 경 숫마이산 아랫자락에 도착한다. 가까이서 보니 바위가 아니라 시멘트 덩어리 같아 보인다.

<들머리에서 본 마이산>

<세번째 무덤과 숫마이산>

<시멘트 덩어리 같은 숫마이산 밑동과 등산로>

진안군청 홈페이지에서 마이산의 생성과 지형을 소개하는 내용을 퍼다 옮긴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 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 시, 모래, 자갈 등이 밀려 호수는 메워지고, 물의 압력 의하여 수성암 생긴다. 약 6-7천만 전 지각 변동에 의하여 이 수성암이 융기되어 마이산을 이루었다. 지금도 이 산에서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된다. "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내어 만들어 진 지형이다. 즉 타포니 지형이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등산로는 숫마이산 밑동을 오른쪽으로 끼고, 잔돌이 많은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져 은수사에 이른다. 정면에 암마이산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산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곰보자국들이 많이 보인다 소위 타포니 지형이란 것이다.

<은수사에서 본 암마이산의 타포니 지형>


 

은수사(隱壽寺) 무량광전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섬진강 발원지라는 샘이 2개가 나란히 이웃해 있고, 샘 앞에는 거대한 청실 배나무가 아름다운 모양을 뽐내며 서 있다. 사진도 찍고, 물을 마시며 쉰 후 탑사로 향한다. 토요일이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생각보다 일반 관광객들은 많지가 않다. 5분도 채 안 되어 탑사에 도착한다.

<운수사 무량광전>

<약수터- 이곳도 섬진강 발원지라고 한다.>

<운수사에서 본 숫마이봉>


 

탑사(塔寺)는 석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탑사 안내판 등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수도한 이갑룡(李甲龍, 1860-1957)처사가 30여 년 동안 쌓았다. 당시에는 120개의 탑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80기만 남아 있다. 대부분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았지만 천지탑 등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에서 가져온 돌들이 한 두개씩은 들어가 있어 심오한 정기를 담고 있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 북으로 축조되어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진 탑들은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진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 .월광탑이라 한다. 마이산 탑들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산 탑사>

<탑사 대웅전과 주위의석탑들>


 

약 15분 간 탑사를 둘러보고, 천황문으로 향하는 긴 계단길을 오른다. 천황문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의 가운데 안부다. 숫마이산 쪽으로 화엄굴이 있고, 암마이산으로 이어지는 철계단 길에는 등산로 폐쇄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암마이봉은 2004년 10월부터 10년 간 휴식년제를 실시하여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공고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도상거리 6Km 밖에 안 되는 짧은 코스인데, 암마이산도 못 오른다고 하니 대원들이 무척 아쉬워한다.

<천황문>

대원들은 화엄굴 가는 걸 생략하기로 한 후 , 천황문에서 얼쩡거리지 않고, 고래 대장의 진두지휘 하에, 막아 놓은 철 계단을 넘어 후닥닥 튄다. 암마이봉 정상 0.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비록 불가피하게 범법은 했지만 휴식년제를 시행하는 취지에 호응하여 대부분의 대원들은 암마이봉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봉우리 사면을 타고 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사면에서 보는 숫마이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등산로는 암마이산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트래버스하더니 급경사 내리막으로 떨어진다. 1시경, 반대편에 세워진 경고판을 넘어, 삼거리 안부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탑사 0.3Km, 광대봉 4.9Km> 암마이산을 거치지 않고 탑사에서 바로 이 곳으로 왔으면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20명에 가까운 대원들이 삼거리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푼다.

<암마이산 사면에서 본 숫마이산>

<봉두봉과 532m봉>

<삼거리 이정표>


 

1시 30분 경, 점심을 마친 대원들이 급경사 오름 길을 오른다. 봉두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급사면에는 폐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고무판이 깔려 있다. 앞선 대원들을 따라 무심코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산사면 길을 걷는다. 뒤에서 고래 대장이 되 돌아오라고 소리 친다. 하지만 앞선 대원들은 능선에서 두 길이 만난다고 그대로 진행한다. 오늘의 알바 시작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힘들지는 않지만, 샛길이 많아 자칫 알바를 하기 쉬운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갈림길에서는 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면을 타고 주능선에 오르니, 왼쪽으로는 봉두봉에서 내려오는 길이고, 오른쪽은 벤치가 놓인 제2 쉼터다. 헬기장이 있고, 이갑룡 처사의 묘도 있어 전망이 좋다는 봉두봉으로 다시 오르려니, 은근히 꾀가 난다. 여기 제2 쉼터에서의 전망도 좋은데, 점심식사 후에 땀을 빼며, 다시 봉두봉 오르기가 싫어진다. 포기하고 쉼터에서 주위의 조망을 즐긴다. 암마이산이 가까이에서 몸 전체를 드러내 놓고 있다. 서쪽으로는 광대산에서 비룡대로 이어지는 긴 능선이 아련히 흐른다. 이 능선 길은 봉두봉을 거쳐, 암마이산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산행시간 5-6시간이 걸리는, 마이산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등산코스라고 한다.

<온 몸을 드러낸 암마이산>

<제2쉼터에서 본 북서쪽 조망>


고래 대장과 몇몇 대원들을 봉두봉에 남겨둔 채, 우리는 쉼터를 내려서서 비탈길을 달린다. 갈림길에 이르고,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 방향, 북부주차장 0.8Km, 왼쪽 방향, 광대치/ 남부주차장 2.5Km> 좌측 길 쪽으로 산악회 표지리본이 걸려있다. 대원들은 서슴지 않고 왼쪽 비탈길을 내려선다. 넓은 비탈길에는 역시 폐타이어를 잘라 만든 고무판이 깔려 있다. 이윽고 사거리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있다.<탑사 1.4Km, 남부주차장 2.2Km, 부부시비 0.8Km>

<알바한 곳의 이정표>


 

어디로 가나? 광대산이나 남부 주차장 쪽이 아니 것은 확실하다. 오른쪽 길은 방향은 맞는데, 능선을 타지 않고, 길이 골짜기로 내려서는 것이 수상하다. 대원 한 사람이 후미 고래 대장에게 전화를 한다. 길을 잘 못 들은 것은 확인이 되는 모양인데, 갈 길에 대하여는 서로 동문 서답을 하는 듯 것 같다.

 

앞서 지나친 이정표 부근에서 알바를 한 것 같으니, 그곳까지 원대복귀 하자는 의견과, 어차피 하산하는 길인데 방향만 맞는다면, 골짜기로 내려서더라도, 도로에 이를 것이라는 의견으로 양분되고, 대원들이 둘로 나뉜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골짜기 길을 택하고, 조총 대원과 SK 대원, 그리고 늙은이 세 사람만 원점회귀를 위해, 300여 미터의 가파른 길을 허위허위 오른다. 젊은 조총 대원이 앞장서 달리더니, 원점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오른 쪽 길을 택해, 북부 주차장 방향으로 내 닫는다.

 

원점에 회귀한 심산(深山) 대원이 산악회 표지리본의 위치를 유심히 살핀다. 리본이 걸린, 정면사면으로 무덤이 3기 나란히 누어 있고, 잔디 위로 어렴풋이 사람들이 지나친 흔적이 보인다. 능선 꼭대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니, 바로 고래 대장의 응답이 온다. 오른쪽 북부 주차장 쪽으로 내달린 조총 대원을 소리쳐 부르고, 비탈길을 타고 오른다. 이윽고 암릉이 앞을 막는다. 532m봉이다, 암릉 위에는 고래 대장과 후미로 쳐졌던 대원들이 우뚝우뚝 서있다.

<조망에 취한 대원들>


 

이 전망대가 오늘 산행의 하이 라이트라는 말에 이견을 다는 대원이 아무도 없다. 사방이 확 트였다. 걸어온 방향으로 정면에 암마이산이, 그 뒤로 수줍게 반만 몸을 내민 숫마이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광대봉에서 비룡대로 이어지는 능선이 더욱 가깝다. 북서쪽 발 아래로 26번 국도가 시원하게 달린다. 사진을 찍고 조망을 즐긴다. 후미로 쳐져, 아쉬움을 남기고 전망대를 뒤로한다.

<전망대에서 본 마이산>

<파노라마 - 광대봉, 비룡대가 보인다>


 

내리막길은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 길로 이어지고 평평해진 능선 길은 오른 쪽으로 달린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길이 나있고, 이 길은 또 다른 바위 전망대로 우리들을 유도한다. 어느덧 시간이 2시 반을 넘어, 태양도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전망대 위에 선 대원들의 실루엣이 역광 속에서 아름답게 부각된다.

<사진 찍기에열중하는 대원>

<또 다른 전망대에서 본 기암>

< 비룡대>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작은 돌들이 깔린 비탈길은 미끄러워 앞선 대원들이 자주 엉덩방아를 찧는다. 나도 본능적으로 몸의 중심이 뒤로 빠진 모양이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왼편 팔꿈치가 땅에 부딪친다. 팔꿈치가 쓰리다. 상처가 난 모양이다.

 

등산로는 나무를 베어낸 안부를 지난다. 햇볕이 뜨겁다. 임도로 내려선 등산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 쪽 잡목 숲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잡목이 배낭을 당긴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속도를 내어 달린다. 내 뒤로는 SK 대원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른다. 내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 그도 역시 속도를 죽이고, 내가 내 달리면 금방 따라 붙는다. 부담을 주지 않고 최종 후미를 보려는 배려가 역력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체를 위해 최종 후미에서 기여하려는 자세가 아름답다.

 

잡목 숲을 벗어나, 시야가 트인다. 앞에는 가족묘인지 8기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있다. 여자 대원 한 분이 농담을 한다.

 

"뒤의 묘는 아빠 묘 같고, 앞에 나란히 놓인 묘는 7 자녀들 묘 같은데, 이 분들이 지금 뭐 하는지 맞춰 보세요."


"고 스톱 치겠죠."

 

"고 스톱 치기에는 사람 수가 많은데..."

 

이런 천진스러운 산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묘에 누운 사자(死者)들은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사자와 생자(生者)가 공존하는 정맥길이 더욱 더 정겹게 느껴진다.

 

이제는 마이산이 꽤 멀어졌다. 마이산 아랫도리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말귀만 두개가 쫑긋 솟아 있다. 귀엽다. 대원들이 이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물을 마시며 쉰다. 이제는 강정골재가 코앞이다.

<강정골재 다 와서 본 가족 묘>

<가족 묘에서 본 마이산 - 바니 걸의 귀같이 귀엽다>

 

다시 울창한 잡목 길을 달린다. 고래 대장의 부인과 처제가 앞서가는데, 주력이 보통을 넘는 실력들이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심천 대원도 완전치 못한 다리를 끌고, 무사히 완주를 한다. 26번 국도가 내려다보이는 수로(水路)에서 고래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심천 대원이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친다.

 

"후미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3시 26분 경,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26번 국도로 내려선다. 땀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버스에 오른다. 3시 40분 경 버스는 진안 읍으로 향한다. 진안읍에서, 앞서 하산한 대원들을 태우고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7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양재역으로 접근한다. 옆에 앉은 잭 울프 대원이 드니로 대원과 통화를 한다. 드니로 대원은 솔밭대원과 함께 오룡동 고개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한다.

 

 

(2005. 6. 26.)

1 [和峰 / 2005-06-27,12:25:39]

55주년 6.25 사변 날 큰 일 하셨습니다.모처럼 많은 대원들로 기분

좋으셨습니다. 정맥은 한번 빠지면 한달이라서 아득 하네요.

다음에는 곡 참석토록 할께요.중간에 한번 봐야지요? [삭제]

2 [드니로 / 2005-06-27,20:49:35]

언제나 우림선배님의 후기로 산행을 마감합니다.

더군다나 경황없이 2구간 연속타기를 하였더니 더더욱 선배님의 후기가 기다려지더군요.

제가 무슨 일을 한건지, 제가 어느 구간을 한건지 선배님의 후기를 통해 정체를 확인합니다.


늘, 나침바늘처럼 돌이켜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모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디카에서 마음에 와닿는 시가 있어 옮겨봅니다.



전략

...


물듦`과 `물들임`이 만나면

물들다가 물들이고

물들이다가 물들게 되는가 봅니다.


때론 개운함으로 물들고,

어쩌다 찜찜함으로 물들이는 때 있나 봅니다.


간혹 물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들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는,

`물들고 싶은 생각`을 만나서는,

`물들고 싶은 자연`을 만나서는,


그 사람이 피운 삶의 향기에,

그 생각이 달군 삶의 보람에,

그 자연이 펼친 삶의 여백에

[눈독들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눕혀놓은 어둠에만 물들고

심지 없는 나섬에만 물들고

나뒹구는 허공에만 물들고

물들고, 물들고......


물들기 쉬운 세상입니다.

물들이는 사람은 오간 데 없고

물든 사람만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오늘은 그 누구의 행실에

생각을 세우고는

매화에 물들고,

산수유에 물들고,

오래 오래 [꽃 들고] 싶습니다.


그럼,

날 꽃물들일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 사람에 가서는

살포시 [눈독]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포 영흥고등학교 한 국어 선생님의 글이랍니다] [삭제]

3 [잭울프 / 2005-06-27,21:14:31]

우림님! 세간에 잊혀져가는 동족상잔의 그날

상념이 깊으셨던 하루이셨군요. 저희도 그만 깜빡잊었드랬습니다.

아마도 반가운님들 만나는 기쁨에 다른것들은 염두에 없었나봅니다.

모처럼 손님들이 많았던 관계로 우림님과 함께 앉아 여행을 했지요.

홀로 불암~수락을 다시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저희 못잖은 그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제가 훗날 우림님의 연세가 되어서도 그처럼 하고자하는 일들에 열정을 가질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알바했던 곳에서 정맥금까지 20분이 채 안걸리셨다니 그냥 알바인줄 알고도 저희는 정맥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일견 부끄럽기도 하군요. 대간까지 마친 입장에서 더욱 그렇지요.

담부턴 정신 바짝차리고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봉님!

못뵌지 꽤 되는것 같습니다. 친구분들은 나오셨던데요.

바쁘시더라도 가끔씩은 함께 하는 기쁨을 주시길 바랍니다.

참 우림님 그날 드니로와 솔밭은 오룡동고개를 지나 남은구간까지 완주를 했답니다.

드니로님이 인용한 싯귀처럼 "물듦과 물들임"

서로에게 그런 존재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렵니다. [삭제]

4 [우림 / 2005-06-28,09:20:28]

화봉(和峰) 님 !

불가피했던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이제는 주말 산행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빠뜨리면 허전하게 느껴지는군요.


금주는 홀수 주말이니,

틈새산행 계획을 기대합시다.


드니로 님 !

"때론 개운함으로 물들고,

어쩌다 찜찜함으로 물들이는 때 있나 봅니다."


시어(詩語)가 생경하고 투박해도

직설적인 표현이 좋군요.


전문을 메일로 부탁합니다.


잭 울프 님 !

이번 주말 틈새산행 계획 짜야겠네요.

미리 혼자 답사하지 않더라도,

익히 잘 알고, 가고 싶은 곳

그 좋은 곳을 소개해야겠네요. [삭제]

5 [우정 / 2005-06-29,07:32:08]

625사변때 서울 인천에 살던 친척들이

안산<현재 경기도 시흥군 수암동>에살던 우리집으로 피난을 왔고,그로인해 인민군 주둔지로 오인을 받고 아군에게 폭격을

당하여 집이 전소되는 비극을 맞았지요,

그때 내나이 우리나이로 두살~ 물론 기억이 없지요.

허지만 전쟁 피해로 궁핍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던

세대 입니다.

벌써 55주년~ 각 나라마다 625를 지칭하는 뉴앙스가 그렇게 다르군요, 뉴스에서 조차 "한국전쟁"으로만 표현하다니,,,,,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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